지난 28일 오후 서울 마포 중동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차고지에 노란색 ‘쿱택시’들 사이로 한국택시협동조합 조합원인 택시기사들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맨 위 작은 사진은 박계동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이 조합원들이 가입된 ‘밴드’에 띄운 주간보고. 지난 한 주 동안 날짜별 가동률과 입금액, 전체 근무자 수(176명)를 훌쩍 웃도는 조합 가입 신청자 수(422명)등이 나와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협동조합 택시의 실험
협동조합 택시의 실험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빚에 허덕이다 빈곤계층으로 전락했다. 양극화와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가 떠올랐지만 아직 구실이 미미하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중 ‘스타 기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만 있을 뿐, 정작 스타 기업을 만들어내려는 사회적 노력은 부족하다. 최근 택시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한국택시협동조합을 찾아가 봤다. 한때 스타 정치인이었던 박계동 조합 이사장의 실험이 한창이었다. 쿱택시는 한국 협동조합의 스타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26일 드디어 10억원이 입금됐다. 서울시의 사회투자기금을 운용하는 한국사회투자재단이 한국택시협동조합에 빌려준 돈이다. 담보가 없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 일반 은행에선 빌릴 수 없는 돈이다. 정식 융자 약정식은 11월3일 열린다. 박계동(63)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은 곧바로 주간보고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재대출 자금 마련!’
8등급 이하 저신용자이거나 신용불량자인 예비 조합원 37명이 이 돈으로 조합 출자금을 낼 수 있게 됐다.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은행은 물론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리기 어려웠던 이들이다. 택시가 아니면 생계를 잇기 쉽지 않은 이들에게 조합과 재단이 기회를 준 것이다.
조합은 재단으로부터 받은 10억원을 다시 개인당 2500만원씩 재대출해주는 형식을 빌려 출자금을 받았다. 돈을 빌린 조합원들은 6개월 거치 뒤 4년6개월 동안 다달이 받는 월급에서 대출 원리금을 갚아 나간다. 한달에 40여만원꼴이다. 월수입이 조금 줄지만 출자금은 나중에 조합을 탈퇴할 때 가져갈 수 있다. 그만큼 부담이 적다. 게다가 이곳은 협동조합이다. 사장이 따로 없는, 조합원 모두가 동등한 권한을 갖는 회사다. 각자의 명함 이름 앞엔 ‘우리사주’라 쓰여 있다. 12만~14만원씩 매일 메워야 할 사납금이 없고 발생한 이익은 모두 우리사주들이 나눠 갖는다.
실제 한국택시협동조합은 조합이 출범한 지난 7월 이후 석달 동안 월평균 60만원씩을 조합원들에게 배당했다. 배당금은 매달 조금씩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시가 255개 법인택시업체의 임금을 분석한 결과, 법인택시 기사들은 월평균 정액급여 141만4000원에 사납금을 제외한 초과 운송수입 75만4000원을 합해 약 217만원을 벌었다. 한국택시협동조합 조합원들의 배당금을 합한 지난달 평균 수입은 이보다 많은 224만원이었다. 기본급 130만원에 배당금이 63만원이었으니 운송수입은 31만원이었던 셈이다. 초과 운송수입을 벌기 위한 노력을 일반 법인택시의 절반만 하고도 급여가 더 많았다. 사장이 있는 회사였다면 회사가 가져갔을 돈을 조합원들이 나눠 가진 결과다. 조합원들의 적정소득을 보장하겠다는 설립 취지가 조금씩 실현되는 것이다.
법인택시 무리하며 217만원 벌 때
‘쿱택시’ 지난달 224만원 받았다
“평생직장 생각하고 다닌다”는
사납금에서 해방된 우리사주들
택시업계 불어온 ‘샛노란 바람’ 은퇴한 정치인 박계동이 주도
집 팔고 사채 얻어 회사 인수
희망없이 짜증내던 이들 달라져
내년엔 1000대 규모로 확장
“기업형 협동조합 활성화해야” “다른 일을 찾을 필요가 없다” 박 이사장이 공언했던 협동조합의 모습이 조금씩 현실이 돼 가면서, 미심쩍어하던 조합원들도 마음을 열고 있다.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여기는 이들도 생겨났다. 외부의 관심도 늘었다. 최근엔 대만과 일본의 택시회사에서도 이들을 찾았다. 다른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협동조합(cooperative)의 앞글자를 딴 노란색 ‘쿱(coop)택시’를 세워놓고 있으면 다가와 “정말 좋더냐”, “월급이 정말 그렇게 나오냐”고 묻는다. 비슷한 질문이 쏟아져 응대하기가 버거울 정도다. 지난달 월수입이 300만원 가까이 됐다는 조합원 남창식(56)씨는 29일 “김포공항 같은 곳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면 주변에서 (기사들이) 몰려와 꼬치꼬치 캐묻는다. 전단이라도 가지고 다녀야 할 판”이라며 웃었다. 외국에서 오래 사업을 하다 4년 전 귀국해 택시를 시작했다는 그는 “전엔 노는 날 없이 일해도 한달에 150만~160만원밖에 벌지 못했다. 힘들어서 중간에 다른 일도 했지만 이젠 다른 일을 찾을 필요가 전혀 없다.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이 있는 마포지역에선 기사들이 집단으로 퇴사해 협동조합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조합 소속 기사들과의 수입 격차를 해소하려고 사납금을 낮춘 회사도 나왔다. 오랫동안 회사의 횡포와 저임금에 시달려온 기사들에게 쿱택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였다. 이제 막 100일을 넘긴 한국택시협동조합이 택시업계에서 일으킨 바람이 심상치 않다. 택시회사의 매출은 보유 차량 수와 가동률에 좌우된다. 차량을 놀리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통상 12시간씩 2교대를 하는 택시의 특성상 보유 차량 수에 견줘 갑절 이상의 기사들이 안정적으로 일하는 게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가동률은 곧 기사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같다. 이직률이 높은 택시업계에선 처우가 좋은 회사가 가동률도 좋다. 서울 관악구 ㅎ운수 등 노조가 탄탄한 회사의 가동률이 거의 100%에 이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70여대의 차량을 보유한 한국택시협동조합도 가동률이 93~95%에 이른다. 출범 직후 60~70% 수준이었으나 조합원이 충원된 9월 이후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손님이 적은 휴일엔 가동률이 조금 떨어지지만 평일엔 노는 택시가 거의 없다. 조합원이 늘면서 가동률이 높아졌고, 가동률이 높아지자 매출액이 늘었다. 출범 후 650만원이었던 하루 매출액은 이제 꾸준히 2000만원 이상을 기록한다. 애초 54억원이었던 연매출 예상액도 최근 72억원으로 수정됐다. 늘어난 매출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간다. 업계 평균을 훨씬 넘는 급여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다시 조합원이 는다. 지난 26일 기준 조합 가입 신청자(422명)는 현재 근무자 수(176명)를 훌쩍 웃돈다. 행복한 선순환이다. 두 차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던 박 이사장은 2000년 11개월 동안 택시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이후 17대 국회에서 다시 의원이 된 그는 택시에 부과하던 특별소비세 폐지 법안을 내는 등 택시업계와 친숙했다. 2010년 국회 사무총장 일을 끝으로 정치를 그만둔 박 이사장은 그동안 ‘자본이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협동조합 운동에 끌려 “남은 인생에 보람이 될 만한 의미있는 일로 생각하고 준비해왔다”고 했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 중동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차고지 사무실에서 만난 박 이사장은 “택시기사들이 사업주의 선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납금제’에서 해방되기만 한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막장 노동처럼 인식되고 있는 택시기사라는 직업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 런던(영국), 뉴욕(미국), 마드리드(스페인), 오클랜드(뉴질랜드), 토론토(캐나다) 등 외국 주요 도시에서 협동조합 택시들이 운행중인 것도 성공을 자신하게 했다. 하지만 택시협동조합 설립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채에 의존한 택시회사 인수
협동조합 운동에 관심을 가진 지인들과 함께 ‘한국협동조합연대’를 꾸린 박 이사장은 장례, 청소, 화물업 등을 검토한 뒤 택시협동조합을 하기로 결론짓고 적당한 회사 물색에 나섰다. 기사들을 모아 새로 회사를 차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라, 기존 회사를 인수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마침 지난해 11월 법정관리 중인 ‘서기운수’에 대한 법원의 매각공고가 났다. 문제는 돈이었다. 계약금 4억10만원을 선예치한 뒤 두달 안에 잔금 36억원을 마련해야 했다. 살고 있던 서울 잠실 시영아파트를 팔고 흑석동의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협동조합연대 이사들도 조금씩 도움을 줬다. 계약금은 겨우 해결했지만 잔금을 조달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국내 거의 모든 금융권을 찾아다녔다. 은행은 담보 없인 절대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박 이사장은 “금융권에서 가장 고급인력이 모여 있는 은행이 산업적 기능은 외면한 채 그야말로 대부업만 하고 있는 꼴이었다”고 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겠다’던 대부업체들도 쉽지 않았다. 자기자본이 적어도 20~30%가 있어야 했고, 그나마도 이를 담보로 하는 조건이었다. 결국 인수자금 상당액을 사채시장에 의존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협동조합연대는 올해 1월7일 서기운수를 인수했다. 살인적인 이자 탓에 이후론 출자금을 분담할 조합원들을 최단시간에 모집하는 게 관건이었다. 박 이사장은 전단지를 들고 기사들이 모인 곳을 찾아다녔다. 서울역과 김포공항, 가스충전소 등을 다니며 전단을 나눠주고 설명회를 열고 회사별 방문 간담회를 열었다. 기사들은 택시운전 경험이 있던 박 이사장을 신뢰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열흘 만에 157명이 조합원 가입 신청서를 썼다. 서기운수 인수자금 40여억원을 조합원 머릿수로 나눠 최소 출자금을 2500만원씩으로 잡았다. 한데 또 문제가 생겼다. 택시기사들의 경제적 여건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2500만원을 현금으로 출자할 수 있는 이가 10명도 되지 않았다. 신용대출로 1000만원가량을 빌릴 수 있는 신용등급 5등급 이상인 이가 30%, 나머지는 그 이하의 저신용자들이었다.
박 이사장은 서울보증보험을 찾아가 기사들의 보증을 부탁했다. 서기운수가 법정관리 상태에서도 40%대의 가동률로 흑자를 냈고, 이들이 빌린 출자금은 조합이 관리하기 때문에 원리금 상환에도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20여일에 걸쳐 설득했다. 처음엔 택시회사나 택시기사들에게 보증을 해준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던 서울보증보험이 결국 손을 들었고, 한국택시협동조합과 서울보증보험, 하나은행의 3자 협약이 성사돼 신용등급 7등급 이상인 조합원 모두 대출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문제가 남았다. 8등급 이하인 조합원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중소기업공단의 중소기업지원자금을 신청해봤지만 협동조합에는 5천만원밖에 지원이 안 된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박 이사장은 협동조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서울시를 찾았다. “이들을 우리가 내치는 건 의사가 돈이 없다고 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면 국가가 기초생활비를 지원해봐야 살아날 수 없다. 우리 조합원으로 있으면 아무런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했다. 조합 출범 이후 꾸준히 담당 부서인 사회적경제과와 택시물류과 등을 통해 조합을 모니터링한 서울시는 사회투자재단을 통해 최종 지원결정을 했다. 그 돈이 지난 26일 입금된 것이다. 조합원들의 출자금은 그렇게 해소됐고 박 이사장이 끌어다 쓴 사채도 완전히 갚을 수 있게 됐다.
쿱택시가 가져다준 변화
협동조합 택시는 기사들에게 많은 변화를 줬다. 쌈짓돈을 써가며 매일 메워야 하는 사납금이 사라지고 기준금 제도가 도입됐다. 기준금을 채우고 한달 25일을 근무하면 130만원의 기본급이 지급된다. 하루 수입이 기준금에 모자란 날이 있어도 사납금을 채우듯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 눈 밖에 날 일도 없고 다른 날 더 열심히 일하면 그뿐이다. 기준금이 모자라면 월급이 줄 뿐이다. 기준금을 넘는 초과수익은 일반 택시회사처럼 회사와 나누지 않고 모두 해당 기사의 몫이다. 매일 기사들이 벌어온 돈에서 조합의 공통비용과 경비를 제외한 수익 역시 고스란히 배당의 형식으로 나눠 갖는다. 배당만으로 소득이 보전되니 자연스레 무리한 운행을 하지 않게 됐다. 회사택시 시절 한달에 7~10건씩 일어나던 교통사고가 조합 출범 뒤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절감한 보험료만 1억원이 넘는다. 이 역시 조합원들의 수익으로 돌아갔다. 사고가 나면 수리비나 보험료 인상액을 기사들에게 전가하던 회사의 횡포도 없었다.
물론 한달 동안 기준금을 다 못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의 보육을 책임져야 하거나 아픈 가족의 간병 등으로 시간을 충분히 내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일반 택시회사라면 바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지만, 모두가 주인인 협동조합에선 줄어든 소득을 감수하고 다른 조합원들의 이해를 구하기만 하면 됐다. 박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효과 중 가장 큰 것은 소득 증대다. 지난달 조합원 중에선 200만원 이상의 초과수익을 올린 사람이 2~3명, 100만원 이상의 초과수익을 올린 사람이 22명이나 나왔다. 연소득 1500만원 이하였던 사람이 3000만원을 벌게 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희망 없고 쉽게 짜증만 내던 사람이 계획적으로 변한다. 술도 줄이고 부부싸움도 준다. 조합원들 얼굴이나 표정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한국협동조합연대는 올해 안에 75대 규모의 서울 회사 한 곳과 부산, 인천 등지에서 택시회사를 인수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100일 동안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운영 성과를 본 금융권에서 이번엔 계약금을 제외한 인수자금 전체를 3개월짜리 브리지론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3개월이면 인수한 회사의 출자금을 납부할 조합원들을 충분히 모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협동조합 택시는 올해 안에 200~250대까지, 내년엔 1000대까지 늘어나게 된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쿱택시는 향후 규모가 확장되는 대로 조합 차원에서 가스충전소나 기사식당, 정비소 등을 직접 운영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거리에 즐비한 꽃담황색 택시들이 샛노란 쿱택시들로 바뀔 날이 머지않은지도 모른다. 박 이사장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사회적 문제 해소책으로 협동조합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본법이 만들어졌지만 규모가 작은 가계형 협동조합만 양산되고 있다. 관련 금융제도 등이 개선돼야 쿱택시 같은 기업형 협동조합들이 활성화될 수 있고 그래야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협동조합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쿱택시’ 지난달 224만원 받았다
“평생직장 생각하고 다닌다”는
사납금에서 해방된 우리사주들
택시업계 불어온 ‘샛노란 바람’ 은퇴한 정치인 박계동이 주도
집 팔고 사채 얻어 회사 인수
희망없이 짜증내던 이들 달라져
내년엔 1000대 규모로 확장
“기업형 협동조합 활성화해야” “다른 일을 찾을 필요가 없다” 박 이사장이 공언했던 협동조합의 모습이 조금씩 현실이 돼 가면서, 미심쩍어하던 조합원들도 마음을 열고 있다.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여기는 이들도 생겨났다. 외부의 관심도 늘었다. 최근엔 대만과 일본의 택시회사에서도 이들을 찾았다. 다른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협동조합(cooperative)의 앞글자를 딴 노란색 ‘쿱(coop)택시’를 세워놓고 있으면 다가와 “정말 좋더냐”, “월급이 정말 그렇게 나오냐”고 묻는다. 비슷한 질문이 쏟아져 응대하기가 버거울 정도다. 지난달 월수입이 300만원 가까이 됐다는 조합원 남창식(56)씨는 29일 “김포공항 같은 곳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면 주변에서 (기사들이) 몰려와 꼬치꼬치 캐묻는다. 전단이라도 가지고 다녀야 할 판”이라며 웃었다. 외국에서 오래 사업을 하다 4년 전 귀국해 택시를 시작했다는 그는 “전엔 노는 날 없이 일해도 한달에 150만~160만원밖에 벌지 못했다. 힘들어서 중간에 다른 일도 했지만 이젠 다른 일을 찾을 필요가 전혀 없다.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이 있는 마포지역에선 기사들이 집단으로 퇴사해 협동조합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조합 소속 기사들과의 수입 격차를 해소하려고 사납금을 낮춘 회사도 나왔다. 오랫동안 회사의 횡포와 저임금에 시달려온 기사들에게 쿱택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였다. 이제 막 100일을 넘긴 한국택시협동조합이 택시업계에서 일으킨 바람이 심상치 않다. 택시회사의 매출은 보유 차량 수와 가동률에 좌우된다. 차량을 놀리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통상 12시간씩 2교대를 하는 택시의 특성상 보유 차량 수에 견줘 갑절 이상의 기사들이 안정적으로 일하는 게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가동률은 곧 기사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같다. 이직률이 높은 택시업계에선 처우가 좋은 회사가 가동률도 좋다. 서울 관악구 ㅎ운수 등 노조가 탄탄한 회사의 가동률이 거의 100%에 이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70여대의 차량을 보유한 한국택시협동조합도 가동률이 93~95%에 이른다. 출범 직후 60~70% 수준이었으나 조합원이 충원된 9월 이후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손님이 적은 휴일엔 가동률이 조금 떨어지지만 평일엔 노는 택시가 거의 없다. 조합원이 늘면서 가동률이 높아졌고, 가동률이 높아지자 매출액이 늘었다. 출범 후 650만원이었던 하루 매출액은 이제 꾸준히 2000만원 이상을 기록한다. 애초 54억원이었던 연매출 예상액도 최근 72억원으로 수정됐다. 늘어난 매출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간다. 업계 평균을 훨씬 넘는 급여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다시 조합원이 는다. 지난 26일 기준 조합 가입 신청자(422명)는 현재 근무자 수(176명)를 훌쩍 웃돈다. 행복한 선순환이다. 두 차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던 박 이사장은 2000년 11개월 동안 택시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이후 17대 국회에서 다시 의원이 된 그는 택시에 부과하던 특별소비세 폐지 법안을 내는 등 택시업계와 친숙했다. 2010년 국회 사무총장 일을 끝으로 정치를 그만둔 박 이사장은 그동안 ‘자본이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협동조합 운동에 끌려 “남은 인생에 보람이 될 만한 의미있는 일로 생각하고 준비해왔다”고 했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 중동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차고지 사무실에서 만난 박 이사장은 “택시기사들이 사업주의 선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납금제’에서 해방되기만 한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막장 노동처럼 인식되고 있는 택시기사라는 직업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 런던(영국), 뉴욕(미국), 마드리드(스페인), 오클랜드(뉴질랜드), 토론토(캐나다) 등 외국 주요 도시에서 협동조합 택시들이 운행중인 것도 성공을 자신하게 했다. 하지만 택시협동조합 설립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 27일 교대시간을 이용해 차고지 한켠 교육장에서 협동조합 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한국택시협동조합 조합원들. 뒷모습을 보이며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이가 박계동 이사장이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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