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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출근하자마자 ‘4대보험 가입 연기서’ 들이댄 파견업체

등록 2015-11-11 19:52수정 2015-11-12 10:25

지난 5일 파견노동자 이영숙씨가 경기도 안산에 있는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앞에서 불법파견 근절과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지난 5일 파견노동자 이영숙씨가 경기도 안산에 있는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앞에서 불법파견 근절과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국민연금 사각지대 (상)
비정규직 이영숙씨, 국민연금 수난사
이영숙(29)씨는 올해 2월 한 파견업체를 통해 경기도 안산반월공단의 ㅅ제약회사에 입사했다. 그가 맡은 일은 링거주사제 등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날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8시간씩 일을 했고, 물량이 많을 때는 특근도 해야 했다. 이렇게 일하고 그는 한 달 120만원을 받았다. 이씨에게는 4대 보험 가입도 힘겨운 일이었다. 법에 규정된 당연한 권리인 4대 보험 가입이 그에게는 한 번도 ‘당연한’ 적이 없었다.

출근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난 어느 날, 그가 출근체크를 하러 들어간 ㅅ제약회사 회사 경비실에는 파견업체가 놔두고 간 ‘4대 보험 가입 연기 신청서’가 쌓여 있었다. 신청서에는 ‘ㅅ제약에 파견되어 근무함에 있어, 개인 사정에 의하여 4대 보험 가입을 연기 또는 비희망함을 확인합니다’라고 쓰여 있고, 주민등록번호·이름을 쓴 뒤 서명을 해서 제출하도록 돼 있었다. 그는 “(파견회사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신청서 뭉치만 던져놓고 갔다. 다른 파견사원들은 동의서를 냈지만 나는 끝까지 버텼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사업주든 노동자든 국민연금(4대 보험) 가입 연기 신청을 할 수 있는 근거조항은 없다.

파견노동자 이영숙씨의 국민연금 가입 수난사
파견노동자 이영숙씨의 국민연금 가입 수난사
이 회사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블랙박스 조립업체에서 일할 때는 입사 전에 파견업체 인사담당자가 “4대 보험에 들 거면 (회사를) 나가라”고 말했다. 그 전에 소속됐던 또다른 파견업체에선 “4대 보험에 가입할지 말지 선택하라”고 했다. 사실상 선택하지 말라는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이씨는 “2년여 동안 반월공단에 있으면서 파견업체도 여러 번 바뀌고 실제 일하는 곳도 여러 군데를 거쳤지만 한 번도 4대 보험 가입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업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대부분 ‘가입 말라’ 은근히 압박
어떤곳은 ‘가입연기 신청서’ 종용

이씨, 6년여 비정규직 일할동안
국민연금 3년8개월치밖에 못내
20년 내도 수령액 고작 32만원

노후소득의 근간이 되는 국민연금은 만 18~59살 인구 가운데 전업주부 등을 제외한 2095만명이 가입 대상이다. 임금노동자의 경우, 1인 이상 사업장에서 월 60시간 이상 일을 했다면 직장가입 대상이 된다. 하지만 가입 요건을 갖췄더라도 사업주가 노동비용을 줄이려고 일부러 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올해 3월 기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 분석(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를 보면, 전체 임금노동자(1880만1000명) 가운데 국민연금 미가입률은 25.2%에 이른다. 정규직(1040만9000명) 가운데선 3%밖에 안 되지만, 비정규직(838만9000명) 중에선 52.8%나 된다.

고용형태별 국민연금 미가입률
고용형태별 국민연금 미가입률

ㅅ제약회사 같은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 파견직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씨의 경우 ‘불법파견’ 소지가 크다. 이씨는 지난 8월말 ㅅ제약회사로부터 경영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현재 이씨는 ㅅ제약회사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실직 상태인 이씨에게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지역가입자 전환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통보서가 왔다. 직장가입자는 연금보험료(월 소득의 9%) 가운데 회사가 절반(4.5%)을 부담하지만 지역가입자는 모두 본인이 내야 한다. 이씨가 소득이 없어 보험료를 못 내면 ‘납부예외자’가 된다. 국민연금 가입 상태는 유지되지만 가입 기간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번처럼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없거나 사업주가 국민연금 가입 신고를 누락할 때마다 이씨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됐다.

이씨가 받은 통보서에는 “매달 9만원씩 20년간 납부하면 매달 약 32만원씩을 평생 받게 된다”는 안내문이 딸려 왔다. 100만원 안팎인 이씨의 월 소득 수준이 앞으로 계속되면 노후에 받게 되는 수령액이 고작 30만원대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도 20년 납부 기간을 채워야 받을 수 있다. 2009년부터 6년 넘게 임시·계약직, 파견직 등으로 일해온 이씨가 그동안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기간은 44개월(3년8개월분)뿐이다. 이씨의 ‘청년시절 빈곤’은 고스란히 ‘노후 빈곤’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대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은 원래 노후, 실업, 빈곤 등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데,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어 이런 위험에 더 노출된 집단일수록 가입률이 낮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 연금제도연구실장은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정책의 초점은 사업주가 임의로 누락한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장가입자로 끌어들이는 데 있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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