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20일 오후 서울 태평로1가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촉구하는 ‘전교조 연가투쟁 전국교사결의대회’를 열어 ‘국정화 반대’ 함성을 지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민적 반대 여론이 높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고시를 강행한 정부와 여당이 20일 노동계가 반대하는 ‘노동 관련 5개 법안’을 정기국회에서 일괄 처리하기로 했다.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을 재편하고 방송사·포털사이트 등 언론 길들이기를 계속해온 박근혜 정부가, 집권 4년차와 총선을 앞두고 국정 전반에 일방주의적 강경 드라이브를 일상화하면서 ‘민주주의 총퇴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이날 근로기준법, 산재보험법 등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안 처리”로 못박은 ‘노동 관련 5개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한묶음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특히 노사정 합의가 어려운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은 ‘공익 의견’을 토대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17년 만의 역사적인 노사정 대타협으로 노동개혁의 첫발을 떼었다”고 했지만, 이날 당정의 결정으로 스스로 합의안을 깨버렸다. ‘9월15일 노사정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법안까지 강행 처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노총은 “역사적 대타협이라고 정부·여당 스스로 평가하던 합의정신을 깔아뭉개고 있다”며 노사정위원회 탈퇴 가능성을 내비치며 반발했다. 야당은 관련 법안 심사를 거부했다.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한 사안은 고시나 시행령으로 우회하거나 법으로 정한 절차·제도마저 무시해온 박근혜 정부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비민주적 상명하달식 국정운영을 가속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새누리당은 이날 여야 동수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동 관련 법안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여당 위원을 한 명 증원하는 ‘꼼수’까지 동원하려 했다. 앞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고시’로 확정한 교육부는 국정화 방침을 밝히기 전부터 공무원을 동원해 비밀 태스크포스를 운영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정치적 반대 진영에 대한 공안몰이는 이미 브레이크가 풀린 상태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시위에 대해 법무부와 검찰, 경찰은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를 겨냥한 대대적인 ‘맞춤 수사’를 벌이고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와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인 농민 백남기씨를 집회 참가자가 폭행했을 수 있다는 여당의 억지 주장까지 “조사해보겠다”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경찰은 경찰력 1200여명을 투입해 민주노총 지도부와 노조원, 46개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체포·압수수색·소환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경찰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준비중이다.
언론 길들이기도 심각하다. 고대영 <한국방송> 사장 선출 과정에 청와대 개입설이 한국방송 내부자를 통해 불거졌고, <교육방송> 사장에는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이명희 공주대 교수를 청와대가 내정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정부는 최근 ‘시행령’을 바꿔 인터넷언론의 등록 요건도 강화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박 대통령의 통치는 주권자의 여론을 따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으로 나뉜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민주주의를 파기하고 있다”고 했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같은 ‘우파 일방주의’일지라도 이명박 대통령의 독단은 실용주의적인 측면이라도 있었다. 반면 박 대통령은 독선과 신념, 옳고 그름의 차원이다. 이건 정치의 영역이 아닌 윤리·종교의 영역”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도 이런 식의 국정운영이 계속된다면 야당 협조는 불가능해지고 여야 모두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그 끝은 국론 분열”이라고 경고했다.
김남일 전종휘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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