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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는 공장독재 국가에 살고 있다

등록 2015-11-20 21:19수정 2015-11-21 09:18

18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 자택에서 주민 김의균(53)씨가 마당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김씨가 걸어나오는 모습을 투명천막 안에서 촬영했다. 인근 공장에서 날아온 분진에 더럽혀진 천막이 카메라 렌즈를 가려 김씨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18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 자택에서 주민 김의균(53)씨가 마당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김씨가 걸어나오는 모습을 투명천막 안에서 촬영했다. 인근 공장에서 날아온 분진에 더럽혀진 천막이 카메라 렌즈를 가려 김씨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김포 거물대리 김의균의 투쟁

국제사회에 호소한 죽음의 마을
김포주민 김의균의 좌절과 투쟁
18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 자택에서 주민 김의균(53)씨가 마당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김씨가 걸어나오는 모습을 투명천막 안에서 촬영했다. 인근 공장에서 날아온 분진에 더럽혀진 천막이 카메라 렌즈를 가려 김씨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김포시 거물대리 마을은 막개발로 각종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들이 들어서 많은 주민들이 암으로 숨지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환경오염이 일어나는데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적절한 통제를 못 해왔다. 거물대리 토박이인 김의균씨는 1990년대부터 농촌마을이 어떻게 공장단지처럼 변해가는지 목격하고 환경오염에 맞서 싸웠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정부와 지자체는 번번이 김씨를 좌절하게 했고, 주민들 사이에서 되레 김씨는 ‘지역발전 방해자’로 낙인찍혔다. 김씨는 유엔 누리집에 직접 ‘헬프 미, 헬프 김포 거물대리’라고 글을 써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유엔 특별인권보고관이 지난달 김포시를 다녀갔다. 정부와 지자체, 공장들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면 개인은 무슨 일을 겪게 될까.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과 맞물려 김포 거물대리 인근은 공장의 천국이 되어갔다. 주민들에겐 지옥처럼 변했다.

“헬프 거물대리”

▶ 김포 거물대리 마을의 환경오염을 고발하는 보도는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100건이 넘는 보도가 이어지는 동안 이곳의 환경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기형 개구리가 나오고 사람들이 암으로 죽어갔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왜 해결이 안 되는 것일까.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이 문제에 맞서온 거물대리 주민 김의균씨를 만나 개발지상주의의 덫에 빠진 한 농촌도시 마을의 이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을에 한쪽 눈동자가 사라진 개구리가 발견됐다. 하천에서 노닐던 왜가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유독물질인 불산 등이 섞인 폐수가 하천에 방류됐다. 논에 모를 심으면 마치 타들어가는 듯 말라 죽어갔다. 주민들이 하나둘 암으로 죽어갔다. 마을에 재앙이라도 닥친 것일까. ‘죽음의 마을’로 불리는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의 이야기다. 언론의 보도도 수없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곳의 재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거물대리 옆마을 초원지리에서 지난달 또 한 주민이 갑작스런 암 발병으로 숨졌다.

언론의 보도가 이어진 이 마을에선 그러나 언론을 더 필요로 했다. 환경 문제 고발이 아니라 환경 문제의 원인과 비리를 생산하는 지역 사회의 총체적 구조를 파헤쳐 달라는 요청이었다. 거물대리에선 주민 김의균(53)씨가 이 문제에 맞서 오랜 싸움을 이어오고 있었다. 지난달 28일 그의 집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곳곳에 공장들이 보였다. 농촌 마을이라기보다는 흡사 산업단지의 입구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산업단지 한복판 같은 곳에 2층짜리 단독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들이 덮쳤다. 김씨는 청주김씨 21대손으로 김포에서 살아왔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곳에서 평생 살 집을 지었다고 했다. 기자를 건물 2층 거실로 안내했다.

주민 150명, 공장 153개

김포시 공장입지 분포도
김포시 공장입지 분포도
“여기가 도로가도 아닌데 무슨 먼지가 이렇게 많지요?” 바닥은 시커먼 먼지로 가득했다. 사람이 한동안 살지 않은 듯 보였다. 김씨가 자석 하나를 가져왔다. 먼지에 자석을 대어보라고 했다. 바닥 위 먼지가 자석에 척 하고 달라붙었다. “집으로 날아든 먼지에 철 성분이 있는 거예요. 이 주변 공장들에서 날아온 게 틀림없어요. 2층에 세입자를 두었는데 도저히 못 살겠다고 나가 버렸어요.”

김씨는 건물 1층에서 거주한다. 거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목소리가 칼칼하다. “2012년 1월 두통이 오고 갑자기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가래침을 뱉으면 노란 가래가 나오는 게 아니라 무슨 선지 덩어리 같은 게 나왔어요.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집 주변에 대체 뭐가 있느냐고 물어요. 공장에서 뭔가 이상한 게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고 설명했더니 의사가 혹시 거기에 주물공장 같은 게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시티(CT) 촬영을 해보니 폐 속에서 이물질이 발견됐고 천식과 기관지염 진단을 받았어요.”

김포시 거물대리 마을을 언론이 본격적으로 주목한 건 2012년부터다. 지역 언론이 이곳에서 암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최근까지 100건을 웃도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김포시의 환경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져 갔다.

환경부 중앙기동단속반은 지난 2월 김포시 거물대리 일대 공장을 집중단속했다. 주물, 도장, 금속 가공, 접착제 제조 등 86개 사업장 중 62곳에서 환경법(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 등)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무려 72%에 이르는 공장이 김포시에서 법을 위반해가며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환경부는 지난 3월 지방자치단체 단속반의 평균 적발률이 7%라고 발표했다. 환경부 특별단속반이 뜨자 10배 넘게 단속률이 증가한 것이다. 발암물질인 벤젠 등 특정 대기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

김포시는 2013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1차 역학조사를 벌였다. 주물공장 등 유해물질 배출시설 주변 13곳 토양 중 일부에서 비소·구리·니켈·아연이 환경부에서 정한 토양오염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 주민 39명을 대상으로 한 혈액·소변 검사에서는 망간 18건, 니켈 3건, 코발트 5건 등 기준을 초과한 결과가 나타났다. 2004~12년 이 지역 암 사망자는 다른 지역의 3배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환경오염과 사망률의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150여명이 사는 거물대리 마을에는 주민 수보다 많은 153개 공장이 입주해 있다. 공장 근로자 등을 제외한 순수 마을 주민은 70명 남짓이라고 김의균씨는 설명했다.

김씨 집 약 20m 앞에도 2011년 10월부터 ㄷ기공이라는 공장이 들어섰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뒤 공장 입구에는 ‘박근혜 대통령 힘내세요. 창조경제를 적극 지지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박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 내걸렸다. 공장주는 김씨를 찾아와 스테인리스 특수강을 다루는 업체라고만 소개했을 뿐 주물공장(금속을 녹여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라고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도 설마 위험한 대기오염물질을 내뿜는 공장이 주거지 옆에 허가받고 들어올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폐에서 이물질이 검출되자 김씨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김씨가 집 앞의 ㄷ기공이 주물공장임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는 농촌 마을에 어떻게 독성물질을 내뿜는 공장이 들어설 수 있을까. 공장이 들어섰다 하더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관리 감독을 받을 텐데….’ 김씨는 이해가 안 됐다.

개구리의 한쪽 눈동자가 사라지고
하천 왜가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논의 모도, 사람도 하나둘 죽었다
수없는 언론 고발에도 현재진행형
원인과 비리의 사슬 추적할 때다

유엔 누리집에 50차례 글 올려
“국제사회가 도와주세요” 호소
정말로 유엔조사관이 올 줄이야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못 들은 이야기를 그들이 해줬다

 18일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 석정천에서 한 주민이 천을 휘저어 기름띠를 살펴보고 있다. 이 천에서 얼마 전 죽은 왜가리가 발견됐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18일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 석정천에서 한 주민이 천을 휘저어 기름띠를 살펴보고 있다. 이 천에서 얼마 전 죽은 왜가리가 발견됐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산업단지가 된 마을들

김포시 공무원이 업자들을 봐주어 불법으로 허가를 내주었다고 김씨는 생각했지만 실제 공장 인허가 과정을 살펴보니 합법적이었다. 2004년 당시 산업자원부가 고시했던 ‘산업입지의 개발에 관한 통합지침’ 5조 ‘환경오염 등을 일으킬 수 있는 공장의 입지 제한’ 규정은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조처에 따라 2008년 이후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여전히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 11조 등에 의해 특정 대기유해물질 배출 시설이 김씨가 살고 있는 계획관리지역(국토계획법상 농촌과 도시의 중간 단계로 구분된 지역)에 들어서려면 관계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정 대기유해물질이란 사람과 동식물에 직간접적으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수은·비소 등 법으로 정해진 35개 물질을 말한다. ㄷ기공은 김포시에 오염물질 배출이 없는 공장으로 신고했고 김포시는 인허가를 내주었다.

공장들은 산업단지보다 마을 주변에 들어서는 것을 좋아한다. 산업단지 입주비용은 3.3㎡당 200만~300만원이지만 마을 주변은 3.3㎡당 70만~80만원이면 된다. 산업단지에 비해 관리감독도 허술하다. 2009년 12월 말 3984개였던 김포시내 공장은 올해 10월 말까지 5488개로 늘었다. 산업단지에 입주한 공장은 785개에 불과하다.

김포시 태반의 공장들이 지자체의 부실한 검증 과정을 통해 허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과 엉성한 환경 관련법, 김포시청의 관리감독 소홀, 공장주들의 비윤리적 경영, 경제발전 논리에 매몰된 지역민의 이해관계 등이 총체적으로 얽혀 벌어진 일이다. 김포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장들이 규제를 피해 대도시 인근 중소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죽음의 거물대리 사건’은 환경단체들 사이에서 규제 완화의 폐해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사건으로 부상했다. 환경부는 최근 오염물질 배출 우려가 큰 공장들의 계획관리지역 입주를 더 쉽게 하는 법안을 발의해 환경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김씨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ㄷ기공이 입주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니 불법은 아니던데요.

“공장이 김포시에 낸 시험성적서가 있었어요. 그걸 구해서 살펴보니 각종 중금속이 모두 불검출로 되어 있더군요. 시험성적서 발급한 곳에 전화해 물어보니 그냥 물질 전기용해 할 때 그거 측정해준 것일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원래 조사 제대로 하면 굴뚝(공장 배기시설)에서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엉터리 서류를 갖고 김포시가 허가를 내줬더라고요.”

-환경 문제가 발생했을 때 김포시가 조사를 안 나왔어요?

“나왔지요. 근데 그러면 공장이 가동을 멈춰요. 공무원은 ‘공장이 가동을 안 하던데요’ 하고 그냥 돌아가요. 제가 그 공장 전기 사용내역을 뽑아다 주면서 이래도 공장이 가동 안 한 거냐고 따지니까 하는 말이 ‘거기 정식으로 허가받은 공장이에요’ 하고 말아요. 주물공장이 문 다 열어놓고 대형 선풍기 열대씩이나 돌리고 있는데 그 분진이 어디로 가겠어요.”

-공장 쪽에선 뭐라던가요?

“술만 먹으면 거기 공장 직원들이 우리 집에 무단침입해서 돌을 던져요. 그러면 꽝꽝 소리가 나고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한테 ‘한번만 더 김포시 공무원 오게 하면 죽여버릴 거야’라고 협박하고.”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지난해 11월 김씨가 제기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서 ㄷ기공 사장 등 3명에게 ‘김의균씨에게 입힌 정신적 피해 보상 등으로 100만~150만원씩을 각각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의균씨는 2013년 2월 자비를 들여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의뢰해 자신의 집에 쌓이고 있는 먼지에 대한 중금속 포함 여부를 분석했다. 알루미늄·카드뮴·납·아연 등이 무더기로 검출됐다. 서울의 지하철 터널 내 먼지보다 중금속 함량이 더 높은 수준이었다. 김포시도 조사를 했는데 김씨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통보했다. 김씨는 김포시 공무원이 공장들을 감싸고돈다는 의심을 굳혀갔다.

김의균씨의 오해일 수도 있고 또는 김포시의 부정확한 해명 탓이기도 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관계자는 <한겨레>에 “김포시가 시행한 것은 ㄷ기공이 배출한 폐기물이 지정폐기물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는 용출시험을 한 것이고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진행한 것은 토양 등의 중금속 함량을 확인하기 위한 전함량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김의균씨의 의심과 불신은 좀 과해 보이기도 한다. 사법·행정 당국이 모두 공장주들의 편에 서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환경 문제를 고발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법·행정 당국이 명확한 증거에 기반해 처분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이다. 의심만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

다만 김씨가 억울하고 불합리한 상황들에 둘러싸였을 때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장치나 행정 당국의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억울함이 반복되면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경기주물공장협회는 김포복지재단(이사장 유영록 김포시장)에 명절 때마다 저소득층을 돕기 위한 쌀을 기증하고 있다. 김의균씨 눈에는 모든 것들이 의심스럽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에 있는 김의균씨 집 안으로 날아와 쌓여 있던 먼지에 자석을 갖다 대자 먼지가 자석에 착 달라붙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에 있는 김의균씨 집 안으로 날아와 쌓여 있던 먼지에 자석을 갖다 대자 먼지가 자석에 착 달라붙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엔 특별보고관이 알려준 것

-김포시 말고 다른 곳에 도움을 빌려보지 그랬어요.

“맨날 청와대에도 전화해 아침저녁으로 울면서 호소했어요. 저는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이에요. 내 적은 김일성인데 지금 내 주적이 김포시청이 되어 있다고 제발 좀 도와달라고. 청와대에서는 국민권익위원회로 사건을 이첩했대요. 근데 조사 나온 공무원이 ‘공장 지붕에 천막 씌우면 되겠네요’ 그러고 말아요. 천막이 바람에 찢어지면 어째요? 홍철호 국회의원(지역구 김포)도 찾아가봤는데 환경 문제는 자기 분야가 아니라고 그래버리고. 시의원 한 사람은 오히려 내가 하도 민원제기 해서 공무원이 스트레스 받아서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식으로 말하고. 제가 그래서 결국 유엔 누리집에다 글을 올리기로 했어요. ‘헬프미 김포 시티. 헬프미 코리아. 김포시청이 불법으로 농경지에 공장 인허가 해주고 있다. 국제사회가 도와주세요’라고 썼어요. 구글 영어번역기 활용해서 한 50차례 올렸어요.”

유엔 특별보고관은 거물대리 등 공장 인근 주민들의 피해를 살펴보러 정말 찾아왔다. 환경단체가 김씨와 상의한 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유해물질 및 폐기물 피해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러 한국에 오는 유엔 보고관의 거물대리 방문을 추진한 것이었다. 바슈쿠트 툰자크 유엔 유해물질·폐기물 특별보고관은 지난달 18일 주민들을 만났다.

-유엔 특별보고관이 와서 뭐라던가요?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게 뭐냐니까 ‘집 옆에 어떤 공장이 들어서고 무슨 물질을 사용하는지 정부나 지자체에서 알려줘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그런 거 몰랐다고 하니까 보고관은 놀라는 표정으로 매우 잘못된 거라고 했어요. 한국은 유엔인권협약 가입국이라서 그런 걸 지켜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우리가 유엔인권협약(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구속력 있게 만들기 위해 1966년 유엔이 채택한 국제협약. 우리나라는 1990년 가입) 가입국이란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내가 아무리 청와대에 전화하고 국민권익위에서 조사도 나왔었는데, 한번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유엔 조사관한테 듣다니….”

바슈쿠트 툰자크 보고관은 지난달 23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에게 당국이 공장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영상은 김포시에서 활동하는 독립언론인 민찬홍씨(KYG 방송 취재본부장)가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김의균씨가 기자와 대화를 나눌 때 민씨가 김씨 집을 방문했다. 민씨에게 김포시 공무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공무원은 민씨에게 하소연했다. ‘김포시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것이니 동영상 좀 잘 처리해달라’고.

김씨 집 앞의 주물공장은 2013년 6월 크롬 등 특정 대기유해물질 배출이 확인되어 김포시로부터 폐쇄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김포시의 행정처분에 불복해 ㄷ기공은 지난해 10월까지 계속 가동됐다. ㄷ공장은 올해 9월 공장폐쇄처분 취소 소송에서 패소해 결국 철수했다. 김씨는 유영록 김포시장 등 공장 인허가 부서 관련 공무원 5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다.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수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김포시 환경 문제를 언론이 100차례 이상 보도했어요. 근데 왜 문제가 해결 안 되는 거죠?

“이상할 정도로 김포시청이 이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아요. 언론에 보도가 되어도 그다음날이면 또 공장들은 계속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중앙 언론사 기자들이 잠깐씩은 왔다 가는데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언론들도 있잖아요?

“거기도 다 한통속인데 뭘 보도해요.”

김포 지역 언론인들을 통해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김포의 지역기자 ㄱ씨는 “김포는 타지역에 비해 현지 토박이들이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비율이 높다. 60~70%가 그런 것 같다. 서로 동네 형 아우 관계이거나 학연 지연으로 얽혀 있다. 비리를 보고도 눈감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지역 언론인들도 김포시청과 광고 문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 ㄴ씨로부터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몇년 전에 김포시장 비판 보도를 하니까 시청에서 ‘딜’(거래)이 들어왔어요. 한 200만원 광고 준다면서. 김포시내 공장들에 명함을 뿌리면 사장들이 기름값 등으로 돈을 줘요. 그런 거 받아서 언론사들이 경영을 하는 거예요. 당신도 명함 하나 파서 공장들 돌아다녀봐요. 사장들이 아마 밥 먹자고 할걸요? 여기는 이장들이 공장주들과 한통속인 경우가 많아요. 동네행사 할 때 공장들이 내놓는 돈이 많거든. 얼마 전에는 어떤 이장이 나한테 돈을 주려고 하더라고. 기자한테 이장이 왜 돈을 주려고 하겠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김의균씨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기 전 기구를 이용해 옷의 먼지 등을 털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김의균씨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기 전 기구를 이용해 옷의 먼지 등을 털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집에서 20m 앞에 공장이 생긴 뒤
두통·숨막힘에 폐에서 이물질까지
주물공장으로 밝혀진 그 공장을
소송 끝에 폐쇄시켰지만 끝 아냐
김포 시내 공장은 5488개로 늘었다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인 김포시청
주민들 중 일부는 쌀값·아파트값
떨어진다며 오히려 김씨를 원망
2차 환경역학조사 진행중인데
석연찮은 압력 정황도 드러나

인터뷰를 거절한 제보자

김의균씨는 자신에게 도착한 문자메시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한 주민이 “인간사 과유불급이고 흐르는 장강의 물을 어찌 막으려고 그러는지 그래서 동네가 발전이 되겠느냐?”라고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이런 주민들이 원망스럽다.

“나 때문에 김포시 쌀이 안 팔린다고 원망해요. 이런 게 어디 있어요. 김포시 토양을 오염시키는 공장을 원망해야죠. 마을회관에는 이전에 공장들이 갖다놓은 라면 박스들이 있었어요. 이젠 나 때문에 그거 안 갖다준다고 노인들이 화를 내요. 그거 먹고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촌로들은 그렇다 쳐도 젊은 사람들은 좀 낫겠거니 하고 김포 한강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람들도 찾아가서 같이 싸우자고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환경 문제 불거져봤자 아파트값 떨어지니 좋을 게 없다는 거죠. 심지어는 나더러 빨갱이라 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같이 국가관 투철한 사람한테. 허허허. 내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껴요.”

다만 김의균씨만 홀로 싸우고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주민들이 또한 김씨를 응원하기도 한다. 김씨에게 몰래 환경오염 제보도 해온다. 하지만 나서지는 못한다. 거물대리의 한 주민은 “대체로 조그만 사업을 벌이고 있는 주민들이 많은데 함부로 나섰다가 김포시의 보복성 행정단속에 걸릴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20대 중반까지 평범한 농민이었다. 이후 작은 개인사업을 해왔다. 지금은 컨테이너 대여업을 하고 있다.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이지만 그는 불의를 그냥 넘기는 성격이 못 된다.

지난 2일 김의균씨는 김포시 곳곳의 오염 현장들을 살펴봤다. 김씨와 함께 김포 월곶면 고양리 석정천을 찾았다. 개천 바로 옆에는 커다란 공장 담벼락이 마주하고 있었다. 개천으로 물이 유입되고 있었는데 표면에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석정천 양옆으로 너른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고양리의 한 주민은 “이 논밭에서 자라는 작물은 공장에서 유입된 하천물로 재배된다”고 말헀다. 김씨는 올봄 이 논에 심은 모가 말라서 죽어버렸다고 전했다.

“석정천 옆에 있는 공장 노동자가 암으로 죽었어요. 그 동료가 저와 아는 사이라 알려준 건데 숨겨둔 정화조가 있었대요. 공무원이 단속 나오면 멀쩡한 정화조 보여주고 다른 정화조로 질산을 배출했다고 해요.” 석정천에서는 왜가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그전에 폐수를 배출했다는 게 김씨에게 도착한 제보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제보자는 1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나도 이제 사업을 해야 한다.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김포시 통진읍의 한 공장지대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계획관리지역이라 주거지와 공장들이 혼재돼 있었다. 공장 굴뚝에서는 알 수 없는 연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공장 문은 활짝 열려 있고 흡사 용광로 같은 것에서 뿜어내는 불이 멀리서 보였다. 공장 옆의 야트막한 야산에 있는 나무의 잎들을 살펴보니 은색 먼지 따위가 잎사귀마다 묻어 있었다. 산에서는 나무 냄새 대신 악취가 진동했다. 한 지역 주민은 “공장들이 집진시설 용량을 벗어나는 수준으로 가동해서 오염물질이 계속 배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장 옆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김의균씨가 말을 이었다.

“군부대에서도 나한테 도와달라고 연락을 해와요. 자기들이 오염 때문에 죽겠다고. 대체 공장에서 무슨 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건지 김포시에 물어봐도 안 알려준다고 하소연하는 거예요. 대체 공장들 뒤를 누가 봐주고 있길래 군도 꼼짝 못하는 거죠?”

알 권리의 박탈. 김포시에서 공장과 관련한 정보는 주민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대곶면 쇄암리를 방문했다. 역시 셀 수 없는 많은 공장들이 도처에 있었고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공장들 한가운데 생뚱맞게 전원주택 한 채가 있었다. 신아무개(45)씨의 집이었다. 신씨는 두 아이들과 함께 시골에서 살고 싶어 수년 전 이곳에 집을 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가로운 농촌 마을이었는데 집 주변으로 하나둘 공장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마치 산업단지처럼 변해버렸다. 신씨는 김포시에 환경오염 신고를 수차례 했지만 김포시는 신씨에게 점검 일정 등을 통보하지 않았다. “정보공개 청구를 해보았지만 공개할 수 없다는 안내문만 받을 뿐이에요. 김포시가 주민 편에 서 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중립적인 기관이 맞는 건지 알고 싶어요.”

왜 같은 시료인데 두배 차이 나나

기자가 직접 신고를 해봐도 비슷했다. 17일 오전 김포시 양촌읍의 한 금속공장의 열린 문 쪽에서 환풍기가 강한 바람과 함께 먼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포시청에 신고를 했다. 김포시청은 오후에 단속을 나와 조처를 마쳤다고 연락을 해왔다. 시청 관계자는 해당 공장이 환경 관련 법을 위반했다는 것은 확인해주었지만, 영업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김포 거물대리 옆 초원지리 마을에서는 지난달 65살 주민이 암으로 숨졌다. 이 마을에서만 최근 5년간 8명이 암으로 죽고 4명이 심장질환 등으로 숨졌다. 18일 오후 숨진 주민이 살던 집을 찾았다. 집 주변으로 불과 100m 근방에 공장 세 동이 입주해 있었다. 낡은 건물의 굴뚝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를 뿜어냈다. 고인의 아들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라 했다.

“건강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지난 5월 갑자기 쓰러져서 담도암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가 암의 원인은 워낙 다양하다고 해서 속단할 순 없지만 저는 공장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화학약품 냄새가 진동을 했어요. 공장이 밤 11시 넘게까지 가동됐어요. 정화시설이 안 되어 있다고 김포시청의 단속에 걸려서 벌금도 맞았지만 공장 운영은 계속됐어요. 단속 나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또 그때는 공장 가동을 안 해요.”

김포시 주민들은 김포시가 진행하고 있는 2차 환경역학조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9월 토양과 대기 등에 대한 시료 채취를 마쳤는데 아직까지 김포시는 발표를 미루고 있다. 확인 결과, 김포시가 역학조사를 의뢰한 인하대 연구팀에 최종 조사 결과 산정을 앞두고 석연찮은 압력을 넣은 정황이 드러났다.

김포시는 인하대 연구팀과 별도로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도 분석을 맡겼다. 같은 샘플을 두고 교차분석을 해야 한다는 게 김포시의 논리였다. 인하대 연구팀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분석 결과 양쪽은 열배에 가까운 중금속 오염수치 차이가 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쪽의 분석 결과는 거물대리 일대 토양이 매우 깨끗한 것으로 나왔고 인하대 연구팀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같은 시료를 놓고 분석했는데 상식 밖의 다른 결과가 나와 인하대 연구팀은 전문가 분석을 한번 더 갖자고 김포시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김포시 공문과 김포시청 및 주민 등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김포시는 ‘양쪽 데이터의 평균값을 산출해 결과를 발표하라’고 연구팀에 요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용역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인하대 연구팀은 ‘과학적인 영역에 지자체가 개입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의균씨는 김포시청 앞에서 1인시위에 돌입했다. 초원지리 등에서 나온 주민 서넛이 함께했다. 17일 만난 김씨가 말했다. “어떻게 같은 토양 시료를 분석한 건데 두 기관에서 중금속 분석 차이가 열배에 이를 수 있지요? 누군가 시료를 바꿔치기한 게 아니라면.”

김포시청 환경관리팀 관계자는 19일 <한겨레>에 “양쪽 기관이 분석한 데이터에서 평균값을 내어 발표하는 건 전문가들끼리 합의한 것이다. 평균을 내더라도 양쪽 데이터 모두 공개할 것이다. 용역 계약 취소를 압박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공무원과 공장 업자들의 유착관계는 없다. 김포시가 산업단지를 제외한 개별 입지 공장 수로는 전국에서 두번째로 많은 시다. 공무원 인력에 비해 공장 수가 많아 관리 감독이 힘든 측면이 있었다. 지난 9월 환경관리사업소를 별도로 만들어 감독 강화에 나섰다”고 말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다. “당연히 산업발전도 필요하겠죠. 그런데 왜 집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게 하냐고요.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거기서 발전시켜야죠. 왜 정부가 주민들 대신 공장 편에만 서나요. 지금도 우리나라는 독재국가예요. 군인이 독재하는 게 아니라 공장들이 독재를 해요.”

김포/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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