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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서울대 총학생회장, 커밍아웃 왜 했냐고요?

등록 2015-11-25 11:41수정 2015-11-25 11:45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김태형 기자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김태형 기자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등장인물>

*사실 저 이렇게 각잡고 인터뷰 하는 걸 안좋아하는데^.^ (김미향 기자)
*저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죠? ㅎㅎ (조소영 한겨레TV PD)
*제가 편하게 할게요ㅋㅋ (김보미 서울대 제58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평범한 질문부터 시작해보죠. 앞으로 1년간 잘 시간도 부족하게 뛰어야 할텐데, 포부가 어떻게 되시는지?

=지금까지 해왔듯, 제가 소비자아동학부를 시작으로 생활대 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까지 대학에 와서 무엇을 했나 생각해보면 다 학생회였어요. 갑자기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지’보다 지금까지 해온 그 자세, 변함없이 초심 잃지 않고 계속 고민하다보면 현명한 답이 나올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임해야겠다 싶어요.

-앞으로 1년동안 이 학생회의 명운을 걸고 ‘이것만큼은 성공시키겠다’ 하는 정책이 있다면?

=해야할 것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해야할 것은 학생자치나 거버넌스에 관한 공약들에 대해 꼭 해야겠다 싶고요. 꼭 해내고 싶은 공약은 다양성 분야에 있어서예요. 인권 가이드라인 등은 하고 싶고, 해내고 싶어요.

-뜨거운 열기로 투표가 성사됐는데, 찬성 86%면 굉장히 높다고 봐요. 이렇게 뜨거운 성원을 학생들이 보내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57대 총학생회에서 부총학생회장을 하면서 저희끼리 약속했던 것은 총학생회가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존재로 인식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학생회가 있어 삶이 달라지는구나’ 느끼게끔 정책을 세우고 제대로 실천을 하자는 거였어요. 빠르게 대응해서 학생들과 소통이 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된 것 같아요. 사건 사고가 터졌을 때 바로 대응했고,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봐주신 것 같아요. 이번에 단대 학생회 투표를 하려던 사람들이 총학생회 투표도 같이 하는 식으로 했어요. 온라인 투표도 자리를 잡았고요. 또 이슈가 많이 됐죠. ‘커밍아웃’과 ‘(종교)전도 제재’ 공약에 대한 노이즈 효과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석 달 가까이 고민했죠, 할지 말지…
사실 암묵화하는 분위기에 산통 깬 거죠
저항이다, 금기를 깼다 이런걸 떠나
좀 더 편안해졌으면 좋겠어요
내 자신을 드러내도 문제되지 않는…

-커밍아웃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정책간담회 때 화제가 됐는데, 미리 의도한 것인지 우발적으로 말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요.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 앞으로 변화할 내 삶에 대해 많은 부분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것이라서 우발적으로 하긴 그렇고, 석 달 가까이 고민을 한 것 같아요. 할지, 말지, 할지, 말지…. ‘그래, 하자!’라고 했을 때 언제할지, 투표 전에 할지 후에 할지는 계속 고민을 했죠. 의도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제가 알기로 커밍아웃은, 그것을 금기시하고, 터부시하고 ‘굳이 그걸 알려야해?’라는 시선에 저항하는 행동이고요. 혹자는 이걸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선거 일정이나 투표 상황에서 하는 것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박근혜 대통령님이 시장에 가서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정치적인 행동이고요.

-의도된 것이고, 정치적인 것이고, 계획적으로 했고, 그런 것도 일종의 저항의 표현이다?

=(커밍아웃을) 암묵화시키는 분위기에 산통을 깬 거죠 사실.

-저는 공감했어요. 아무리 저항의 표현이라고 해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네 맞아요. 예상은 했지만 가족들과의 갈등도 있었고 제가 혼자서 단념해야 될 순간들이 있었어요.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분들도 많지만 그것과 별개로 저 혼자 온전히 해나가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없진 않았죠. 이걸 하면서 단지 ‘저항의 표현이다’, ‘금기를 깨는 표현이다’ 이걸 떠나서 좀더 편안해졌으면 좋겠어요. 학교라는 공간이 내 자신을 드러내도 어떤 문제가 되지 않는 공간, 커밍아웃이든 뭐든. 예를 들어, 신체적인 불편함을 가진 장애인인데 ‘저에게 베리어 프리한 공간을 달라. 문턱을 없애달라’이런 이야기를 하고 요구하는 것이 전혀 불합리한 요구가 아니에요. 항상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내가 내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요. (커밍아웃도) 그런 맥락이에요.

-커밍아웃 전과 후를 기점으로 가장 달라진 점은 뭐예요?

=제 자신이 많이 편해졌어요. 좀더 자신감 있어지고. 이것에 대해 악플을 다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 댓글 한번 봤다가 ‘아이~ 다신 안봐야지’ 하고 안봐요ㅎㅎ.

-저는 커밍아웃하고 더 불편해졌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인터넷 공간에서 계속 비판글이 올라오고 하니까요.

=친구들이 다 캡쳐해놨다고, 저한테는 보지 말라고 하고ㅎㅎ . 유명한 일베 사이트나 기독교 사이트나 그런 곳에서 있었던 것들…. 그냥 웃으면서 넘겨요. ‘그래, 그럴 수 있지~.’

악플 등 반응은 예상했기 때문에
더 상처 받고 그런건 없고
무덤덤하게 있으려고 해요
부모님도 많이 놀라셨는데
형제들이 많이 도와줬죠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도 하더라

=네. 그것도 이야기 들었어요. 고생하시는 거죠.

-그런데도 마음이 편해질 수가 있어요?

=예상을 했기 때문에 갑자기 더 상처를 받고 그런건 없고 무덤덤하게 있으려고 해요. 그분들에게 굉장히 큰 신념이고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신념이니까요. 그냥 막 쓴 악성댓글을 보면 좀 그렇다. 굳이 이걸 내가 다 상대하면서 상처받을 필요 있나 싶어요.

-부모님과의 관계는요?

=처음에 많이 놀라셨죠. 걱정을 좀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얘가 이제 23살인데 ‘이 세상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 본인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이게 어떻게 비추어질까 하는 걱정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다양한 맥락에서 많이 놀라셨을 거예요.

-그동안 부모님은 모르셨어요?

=제가 목요일 커밍아웃을 했는데 일요일에 부모님한테 편지를 4장 드리고 왔어요. 그냥 집에 두고 왔어요 엄마 아빠 드리고. 근데 그 자체에 대해서는 자책도 좀 하셨던 것 같아요. ‘내가 좋은 부모가 아니었나’ 그러면서도 동시에 “같이 생각해나가보자. 언제든 엄마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 하렴” 그렇게 이야기 하셨고. 제가 커밍아웃을 한 것에 대해 “너는 왜 너 혼자, 너만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니”그렇게 하셨다가도…. 형제들이 많이 도와줬죠.

-커밍아웃하기 전에 성소수자란 사실을 언니랑 남동생은 알고 있었어요? 언제 처음 알렸어요?

=네네. 남동생은 고등학교 때, 언니한테는 대학와서요. 동아리에 들어가고 자기 긍정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요.

-반응이 어땠어요?

=남동생은 “사귀는 사람 있어?”라고 물어서 “응”하니까 “예뻐?ㅎ” 막 그랬고요. 언니 같은 경우는 “보미야, 너가 어떤 삶을 살아도 언니는 지지해줄 거고 너의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 보고 싶다” 그랬어요.

-평소에 나를 아껴주던 정말 친한 친구가 커밍아웃 뒤에 돌아서거나 깜짝 놀라서 멀어지거나 그런 경우는 없었나요?

=평소에 친한 친구들은 제가 다 해놨어요. 그런 친구들은 “수고했다” 이렇게 해주고요. 멀어질 친구였으면 제가 미리 떠봤죠. 떠봤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물어봤고요. 정말 기독교 신실한 친구들은 “음, 글쎄 잘 모르겠지만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야지” 이런 식의 반응을 해줬어요. 그런 친구들은 그러려니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인연이겠거니 하고 넘기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갑자기 저에게 막 욕설하거나 그런 친구들은 없었어요.

-적극적으로 나서서 안티 댓글 다는 분들에게 반론 댓글 단다든지 그렇게 할 생각은 없나요?

=저는 아예 댓글 안봐요. 기사도 딱 기사까지만 보고, 어떻게 나가는지만 확인하는 정도예요. 친구들이 하도 보지 말라고 해서 안보고요. 한번은 너무 궁금해서 봤다가 ‘에라이~’ 안봐요.ㅎㅎ

-사실 저차원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성소수자로서 대학에서의 삶은 어떤지 궁금해요. 일상에서 내가 어떻게 다르다고 느껴지나요?

=커밍아웃을 하기 전까지 미팅에서 땜빵을 다 제가 나갔어요. 저는 만년 솔로니까. 어쩔 땐 ‘저 어닌 왜 연애도 안해?’ ‘언니 솔로지?’ ‘나 이번에 갑자기 소개팅이 잘 되어서 미팅 못나가게 됐는데 나갈 수 있어?’ 이런 것들…. 이성애자가 전제가 되어 있기에 나오는 상황들, 평소에 일상적으로 그런 것들 있었어요. 큰 차별이 있거나 제 앞에서 욕설을 하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우리 학교 인에서만 생활을 하기 때문에. 서울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생각이 많이 개방적인 것 같아요. 존중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편이어서 많이 불편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마주쳐야 하는 불편한 상황들이 있었어요. 이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못 견디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못 견디겠다는 축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연애하고 게세요?

=…으하하하. 네, 하하하하하.

-궁금해서요. ㅎㅎ 사춘기 때는 어땠어요?

=좀 다르다고 생각은 했었어요. 이성친구에게는 딱히 관심이 가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동성)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가 하고 싶다는 것 다 해주고요. 그 당시에는 그 감정이 그냥 우정이겠거니 했는데, 2차 성징이 일어나면서 성적으로 타인을 보게 되잖아요. 그랬을 때 조금씩 내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생각이나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서울대학교 제58대 총학생회에 단독 출마한 김보미(23)씨. 사진 서울대 선거운동본부 제공
서울대학교 제58대 총학생회에 단독 출마한 김보미(23)씨. 사진 서울대 선거운동본부 제공
-그걸 ‘나는 동성애자구나’ 이렇게 스스로 자리매김한 게 언제예요?

=대학 와서요. 그 전까지도 연애는 했었거든요. 연애를 했을 때도 동성애란 무엇인가 막 찾아보진 않았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있고, 이 (동성)친구한테 다른 남자애가 만지면 화가 나고, 그렇다고 ‘이건 동성연애야’ 막 이런 식으로 생각하진 않고 좀 혼란스러웠죠. 대학 입학하면서 사귀었던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그냥 미안하다고 했어요. 나는 이 관계를 더이상 지속할 수 없다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나서 (퀴어)동아리에 들어갔어요. 그 전에 시민단체 인턴(군인권센터)으로 활동할 당시 만났던 동성애자분들이 있었고 “너는 짝사랑이 취미냐, 특기냐?” 묻는 거예요. 일상 속에서 만나고 쫓아다니고 상처받고 거절당하고 그러다보니까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처음 커밍아웃을 한거죠. 그 때 “너 학교 안 동아리 한번 들어가봐라”라고 이야기해줬고, 그래서 제가 동아리 들어가게 된 거예요. 동아리에 들어간 것은 대학 2학년 때요. 많이 알게 되고 스스로를 긍정하게 됐어요.

-지난해 서울대 제56대 총학생회장도 소수자였잖아요. 3급 장애인이었는데 그 분은 선거 때 장애인이란 정체성이 그렇게 이슈가 되지 않았어요. 이번엔 후보자가 성소수자인게 굉장히 이슈가 됐어요. 같은 소수자임에도 성소수자는 왜 이렇게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인지요?

=가시화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 같아요. 장애인은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일상에서 익숙해질 수 있고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학습할 기회가 있는데, 성소수자는 ‘이런 사람이 있다더라’, ‘내 주변에도 혹시 있나?’ 생각하죠. 실존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낯선 존재이고, 익숙지 않은 존재이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런 고민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것이 차이를 불러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그 분(56대 총학생회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는데….

=제가 사실 가장 우려하는 건 그런 거예요. 사람들의 그런 기대요. 사람들은 계속 엮죠. 최초의 장애인 총학생회장인데, 이 사람이 공약을 잘했으면 ‘장애인 총학생회장이 공약을 잘했다’, ‘장애인 총학생회장인데 임기를 못 채웠다’…. 사실 제가 성소수자로서 커밍아웃하면서 ‘이것은 아무 일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그런 부분이 조금씩 어려운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과제죠. 아쉬움은 있어요. 조금 더 멋있게 (임기를 완수해줬으면 어땠을까) 했는데 그도 똑같은 인간이예요.

-그쵸. 총학생회장이 임기 채우지 못한 전례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56대 총학생회장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부각된 면이 있죠.

=아직은 우리 사회가 (소수자에 대해) 많이 배려하고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못 하다는 방증인거죠.

-사실 커밍아웃했을 때 이런 부분도 고민을 했을 거라 생각해요. 만약에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건데 꼭 이게 성소수자랑 연관이 되어서 전체적인 평판에 안좋은 영향을 줄까봐요.

=그래서 오기가 조금 더 생겨요. 제가 자존심이 되게 센데, 제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김보미라는 인간이 일을 잘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스스로 자존심이 깎이는지를 아니까 더 잘하고 싶어요.

-잘 하실 것 같아요. 다음 달부터 구체적인 계획이 뭐예요? 난 이것부터 첫걸음~

=타임라인을 잘 짜야죠. 저희가 내년 11월 임기를 마치는 순간까지 어떤 정책들을 먼저 공약들 중에서도 이행해야 하는지 순서를 정하고요. 집행부 꾸리고 할 거예요.

-제일 먼저 추진하고 싶은 공약이 있다면요?

=흡연부스요. 그리고 조만간 서울대기독교연합이랑 미팅 자리를 가질 예정이에요. (한 판 붙나?) 아뇨. 붙는 게 아니라요. 학내에서 기독교가 긍정적 인식을 줄 수 있도록 방안을 함께 마련해보자, 전도 제재 공약이 어떤 맥락인지 아시죠?

기독교 전도 제재 공약을 냈는데
너무 과하지 않게 전도하자는 취지고
오랜 시간 대화통해 해결해야죠…
정치할 생각? 닫아놓고 싶진 않지만
지금은 나중에 정치해야지 생각안해

-네. 그걸로 동아리연합회 종교분과와 질의응답도 하셨는데, 그 쪽에서는 비판하던데 어떻게 끌어안고 가실 것인지?

=정말 신실한 기독교인인 저희 부총학생회장 당선자가 낸 공약이고, 왜 이런 공약을 내게 된 거냐면 매년 ‘스누라이프’(서울대 학생 커뮤니티)에서 순환떡밥으로 나오는 이야기처럼 저희가 들었던 증언 중 하나는, 외부 단체에서 봉고차를 끌고 학내 기숙사에 들어와서 기숙사 입주철에 문이 오픈되어 있으면 안으로 들어와 전도를 한다고 해요. 근데 그건 아니거든요. 외부에서 하시던가 그러셔야 하는데. 그리고 학내에서도 ‘내가 선배인데’ 하면서 항상 하시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하면 그만 해야되는데 계속 쫓아와서 말을 거시면 학생들에게는 괴로운 상황이 되다보니까 너무 과하지 않게 전도하자는 캠페인을 원래 하려고 한 거였어요. 그런 맥락으로 시작된 거고 오해가 쌓인만큼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해요. 그리고 혜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새맞이/학기초 전도제재 공약이) 다수의 학생들이 공감을 하는 공약임에도 일부가 안티로 돌아설 수 있는 공약이잖아요. 이분들을 안고 가면서도 어떻게 설득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학생들이랑 계속 커뮤니케이션 해야 돼요. 저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려야지 피드백 받을 수 있고 서울대 기독교 동아리나 개신교 분들과고 계속 설득의 과정인데, 원래 기독교라는 것은 사랑과 품어안고, 그런 것을 기초로 하는 종교잖아요. 학생들이 왜 이렇게까지 인식이 나빠졌나 사례를 접수받을 예정이에요. 표본을 가지고 거기에서 문제점이 무엇인지, 과한 것이 문제인지, 특정 장소가 문제인지 파악해야한다. 대안으로 ‘전도부스’를 운영해서 원하는 학생들이 갈 수 있게끔 한다거나 학생들이 거절할 경우 더이상 무리하지 않는다든지 다양한 솔루션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걸 통해서 기독교단체도 만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핍박받고 있다’ ‘교회가 탄압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들지 않도록 알리고 서로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가족들은 이런 보미씨의 사회활동에 대해 지지해주는 편이에요?

=네네. 지지해주는 편이세요. 물론 엄마는 “보미 제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시는데, 그러시면서도 제가 뭘 한다고 하면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지지도 많이 해주시는 편이에요.

-총학생회 활동을 1학년 때부터 계속 하게 된 인연이 있나요?

=처음에는 목소리 커서 과대표가 됐다가 집행부가 됐고요. 학생회장 후보군을 계속 내는데 사람들이 ‘보미 한번 해봐라. 생활대 학생회장’ 이렇게 말씀해주셔서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인상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무열 현 학생회장이 부총 같이 나가보자 (지난해) 제안을 했고요. 이번에는 제가 직접 해보고 싶어서 출마를 했어요.

-부총학생회장으로서 지난 57대 총학생회 활동을 평가하자면?

=저희가 복지정책을 많이 해서 학생들이 학생회의 정책을 많이 경험해야 학생회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에는 그게 맞았어요. 그러다보니까 학생 자치나 사회적 의제에 대해 참여를 해야 한다는 것에 주저한 면도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젠 이 정도 투표율이 나와서 투표가 성사가 될 정도로 학생들이 학생회의 필요성에 공감해준다면 그 다음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보미씨는 최종 꿈이 뭐예요?

=제 삶의 목적은 이 사회가 제가 태어나기 전보다 좀더 나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거고요. 목표는 그걸 이뤄나가는 단계인거 같아요. 이번에 커밍아웃한 것도 그 목표 중에 하나였던 거고, 앞으로는 연구를 하거나 사실 로스쿨도 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임기가 다 끝나면 공부를 조금씩 더 해보면서 길을 좁혀 나가는 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나중에 정치 꿈도 있어요?

=아뇨ㅎㅎㅎ. 전혀 생각을 안 했었어요. 출마 때 애들끼리 장난으로 “보미 나중에 정치인 되는거 아니야?” 막 그랬는데…. 음, 닫아놓고 싶진 않아요. 뭐든, 어떤 직업이나 직군이나 어떤 분야든 언젠가 제가 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용기가 생길 수도 있고. 다만 지금은 나중에 정치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진 않아요. 나중에 하고 싶어지면 그 때 생각해보려고요.

-나중에 법조인이 꿈이에요?

=법조인이거나 아니면 연구를 계속할 수도 있고요. 제가 아동가족학 전공이잖아요. 원래는 여성의 일·가정 양립 공부하고 싶어서 아동가족학과 사회학 복수전공을 하고 있는데, 이미 이쪽은 연구가 많이 됐더라고요. 졸업논문을 이혼가정 쪽으로 쓰고 싶어요. 성소수자나 이 분야의 연구도 한국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그 쪽으로 연구하는 일도 관심이 있어요. 예전에 썼던 논문이 성소수자의 부모자녀와의 관계였어요. 부모의 성소수자 자녀 지지도가 자녀의 심리적 안정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를 친구들과 같이 논문 써서 발표한 적 있거든요. 가족학 안에서도 성소수자가 꾸리는 가정이 있고 원가정이 있잖아요. 이 안에서 재밌는 걸 제 전공으로 살리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오늘 인터뷰에서 제가 뽑고 싶은 제목은 “저 지금 연애 중”이에요ㅎㅎ.

=하하하ㅎㅎ. 저 지금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와 연애 중이죠 ㅋㅋ. 만나고 있는 친구가 있고 사실 그 친구가 없었으면 이번에 결심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많이 지지해주고 있어요. 이번에 커밍아웃을 할 때도 많이 지지를 해줬죠.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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