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공사 취소되며 극심한 생활고
외제차 탄 여성 상대로 강도 미수
법원 “사정 알겠지만” 징역형 선고
외제차 탄 여성 상대로 강도 미수
법원 “사정 알겠지만” 징역형 선고
경기도에서 학교 건축자재 납품업체를 운영하던 이아무개(52)씨는 관련 특허권을 40여개 가지고 있을 정도로 능력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여파로 학교 관련 사업이 무더기로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집을 팔고 3.3㎡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재기를 모색했다. 부인과 이혼했지만 두 자녀를 위한 생활비를 꾸준히 보내줬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와 백혈병에 걸린 형의 병원 치료비도 그의 몫이었다. 그래도 이씨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겠다는 이씨의 바람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앞에 완전히 꺾였다. 많은 학교가 휴업에 들어가면서 공사가 연기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착실했던 50대 가장은 극심한 생활고 앞에서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지난 7월5일 저녁 8시30분 서울 강남구의 한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조아무개(61·여)씨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혼자 벤츠에 타는 걸 발견하고, 조수석에 따라 탔다. 그는 피해자를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빼앗으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운전석 문으로 뛰쳐나가 주변에 살려달라고 요청하면서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그는 5일 뒤 컨테이너에서 체포됐다. 이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실패하자 ‘부자들에게 하소연해서 돈을 좀 빌려보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강남으로 갔다고 진술했다. 범행 당일 백화점 개장 시간에 맞춰 매장 안으로 들어가 손님 2~3명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500만원만 빌려주면 꼭 갚겠다”고 애걸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심규홍)는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범행 당시 차량의 경적을 울려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큰 피해로 연결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으로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어려운 사정이 인정되기는 하나 이씨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상처가 크지 않고 일주일 내에 치유된 점 등을 고려해 강도상해죄가 아닌 특수강도미수죄를 적용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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