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11일 장 마감 직전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우는 방식으로 주가를 폭락시켜 ‘옵션쇼크’를 일으킨 도이치증권과 도이치은행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재판장 오영준)는 26일 국민은행이 도이치증권과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7억18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같은 날 배아무개씨와 정아무개씨 등 개인투자자 2명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각각 12억2300여만원, 2억95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5년 전 주식시장을 뒤흔든 ‘옵션쇼크’를 기획한 것은 도이치은행 홍콩지점이다. 이 지점의 차익거래팀(ASG) 외국인 임원 3명이 일을 주도했고, 한국에선 도이치증권 박아무개 상무가 가담했다. 이들은 옵션 만기일이었던 2010년 11월11일 주가가 떨어지면 이익을 보는 ‘코스피 200지수’ 풋옵션 상품을 16억원어치 사들인 뒤,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웠다. 당시 이들이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매도 주문을 낸 현물 주식은 2조4400억원치다. 이들은 주가 하락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 순서로 거래되는 제한이 사라지는 동시호가 시간(오후 2시50분∼3시)을 노려 직전 가격 대비 4.5∼10% 낮은 가격에 매도 주문을 냈다. 이로 인해 도이치는 448억여원의 시세 차익을 거뒀다.
재판부는 “이들의 행위는 구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는 시세조종 행위에 해당하고, 이들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옵션거래는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대신 높은 위험성을 동반하는 투자로 투자자는 언제든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도이치 쪽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임직원이 고의로 저지른 시세조종행위로 인해 주가가 급락하면서 기관투자자들도 예측하기 어려운 손실이 발생하게 된 점, 동시호가 시간대에 프로그램 매매호가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장 종료 15분 전인 오후 2시45분까지 한국거래소에 주식 종목명과 호가수량을 사전보고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이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도이치 쪽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이 재판부는 도이치은행과 도이치증권이 케이비(KB)손해보험 등 피해 금융사 5곳에 옵션 쇼크로 인한 피해액의 80%인 280억원 상당을 배상하라는 화해권고 결정도 지난 21일 확정한 바 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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