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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르신, 매일 드리던 우유 이제 끊깁니다…정부지침 때문에

등록 2015-11-30 20:15수정 2015-12-01 10:59

지자체 복지에 ‘가위’ 든 정부
최근 서울시와 성남시가 추진하는 이른바 ‘청년 사회참여활동비’ ‘청년배당’ 정책에 사회보장위원회(사보위)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보위는 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복지사업을 추진할 때는 사보위와 보건복지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법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사보위는 이미 지자체가 시행중인 복지사업을 구조조정하는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도 추진중이다. 지자체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선 “지자체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낙후된 복지 수준을 더욱 낮출 것”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지자체 복지사업을 둘러싼 논란을 집중점검해본다.

정부 “유사·중복 복지 정비” 내세워
지자체 1496개 사업 없애라 통보
노인·빈곤아동 등 645만명 타격

“정부의 찔끔복지, 지자체가 보충”
“유사·중복 아니라 누락 없나 살펴야”
“지자체 통제하나” 등 비판 일어

사회보장위원회(사보위)와 보건복지부가 이른바 ‘지자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을 통해 정리해야 할 복지사업 목록을 전국 지자체에 통보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대상 사업은 모두 1496개, 예산 규모는 9997억원이다. 정부가 파악하는 전체 지자체 복지사업 5991개의 25.4%에 해당한다. 예산 규모로 보면 전체 6조5천억원의 15.4%다. 사업 대상자들은 주로 노인, 장애인, 빈곤아동 등 지역의 취약계층인데, 645만명이 영향권에 있다.

사보위와 정부는 이 사업을 추진하는 취지에 대해, “복지사업의 균형발전과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비스의 중복·누락·편중을 제거해 사회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사회보장 혜택을 균형있게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 및 사회복지학계 등은 이 정책이 지역복지사업들을 위축 또는 축소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정비 대상 사업 대부분이 노인·장애인·빈곤아동 등 취약계층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쥐꼬리만한 혜택조차 줬다 뺏는 격”으로 이들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일부 지자체들의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추가지원 사업의 경우, 대체로 보험료 월 1만원 이하의 차상위 노인들이 대상이다. 이들 저소득 노인층에는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이 소액이지만 상당히 부담스러운 액수다. 그간 지자체 지원으로 인해 그나마 병원 문턱을 넘었는데, 사업이 폐지되면 치료를 포기할 노인들이 생겨날 수 있다. 관련 예산은 600만원(구리시)에서 6500만원(군산시) 정도로 크지 않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는 “유사·중복 사업으로 규정된 사업들 대부분이 중앙정부의 제도만으로는 취약계층의 복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보충 혹은 보완하는 성격”이라며 “사업 정비로 ‘효율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정부 인식은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는 “정부가 진정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싶다면 유사·중복이 아니라 누락의 문제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추진 과정 역시 “사회적 논의나 지자체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이고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정책 용역 보고서(‘지방자치단체-중앙정부 복지사업의 유사·중복 실태 분석 및 조정방안 연구’)를 발간했고, 사보위는 이를 근거로 지난 8월 ‘정비방안’을 의결했다. 복지부는 같은 달 곧바로 세부 지침을 마련해 지자체에 내년 1월15일까지 정비 결과를 제출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600만명이 넘는 취약계층과 관련한 사업들을 5~6개월 만에 속전속결 처리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중앙과 지방 사업의 같고 다른 것들을 일일이 살펴야 하기에 이렇게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추진 주체와 관련해서도 “실제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정부 쪽 관계자는 “(정비사업 강행은) 경제 쪽이나 윗선에서 드라이브를 건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쪽은 기획재정부를, ‘윗선’이란 대통령과 청와대 경제라인을 가리킨다. 이 관계자는 “사보위가 유사·중복이라고 제시한 사업들을 모조리 폐지해도 절감 재정이 1조원도 안 되는데도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복지 지출을 구조조정했다는 ‘액션’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발 복지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11일 사보위 회의에 처음 참석한 바 있다.

이 사업이 ‘지자체 통제’의 일환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재완 공주대 교수는 “중앙정부의 하향식 통제는 그동안 발전해온 지역복지의 구조와 내용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헌법과 지방자치법에 기초해 주민의 복지증진 사무를 수행하는 지방자치의 근본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월 성남시 등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26개 지자체들은 “지방자치권과 자율권을 침해한다”면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70개가 넘는 단체들은 ‘전국복지수호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사회복지사 단체에서는 반대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사회보장위원회(사보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인 2011년 발의해 2013년 통과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에 의해 출범한 사회보장정책에 관한 최고 심의 조정기구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해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등 15개 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정부 쪽 당연직 위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정부출연기관장과 학계 인사를 포함한 민간위원 13명 등 모두 28명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 “유사·중복 아니다”…대구시도 “지침 못 지키겠다”

지자체 복지에 ‘가위’ 든 정부

곤혹스러운 지자체들

울산시 울주군에 사는 저소득 독거노인들은 내년부터는 군에서 지급받던 우유를 더는 지급받지 못한다. 일주일에 여섯차례 700가구에 하루 1개씩 우유를 배달하는 ‘독거노인우유배달사업’이 내년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울주군 사회복지과 담당자는 “시와 군이 각기 50%씩 부담했던 사업인데, 정부의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에 따라 시가 내년부터 폐지를 결정하면서 없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울산시는 이 사업이 독거노인 식사배달이나 재가노인돌보미사업과 중복된다고 판단했다.

내년 1월15일까지 결과 제출해야
“지자체 평가에 반영될것 뻔해”
전남도는 93개 사업 없애기로

정부는 지난 8월 지자체별로 없애야 할 복지사업을 명시한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을 17개 시·도에 내려보냈다. 지자체들은 이 지침에 따른 정비 결과를 내년 1월15일까지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일부 지자체는 “폐지 사업 선정이 일방적이다” “정비할 것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고, 일부는 “어쩔 수 없다”며 지침을 따르는 모양새다.

서울시의 경우, 유사·중복 사업으로 통보받은 복지사업은 모두 124건으로, 이 중 118건은 25개 자치구의 것이고 서울시 자체 건은 6건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체 점검 결과, 시 차원의 6개 사업 중 단 한 건도 유사·중복 사업이 아니다”라며 정부 지침에 따르지 않을 방침임을 시사했다. 경남의 경우에는 도내 사업 41건을 포함해 169건의 사업을 정비하라고 권고받았다. 경남도 관계자는 “도내 사업의 경우에는 당장 폐기할 사업은 없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수혜 대상자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6개 사업을 통보받은 대구시도 “지침을 지키지 못하겠다. 56개 가운데 3~4개 정도 정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2일 이미 정비계획을 제출한 전북 관계자는 “91개 사업이 포함돼 있는데, 대부분 유사·중복이 아니다. 정부의 분류는 엉터리 집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울산시는 독거노인우유배달사업은 폐지하기로 했지만, 정부가 폐지를 권고한 저소득층건강보험료지원사업은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울산시의 김문걸 복지인구정책과장은 “정부는 해당 사업이 건강보험공단의 보험료 감면제도와 중복된다며 조정을 요구했는데, 감면된 보험료조차 납부할 능력이 안 되는 빈곤층에 대한 보충 사업이다. 더욱이 시 조례에 따른 사업이어서 폐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도내 사업 23개를 포함해 모두 132개를 지적받은 강원도는 내부 검토를 걸쳐 도내 사업 23개 중 ‘무주택 서민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 12개는 정비하되, 독거중증장애인활동보조지원 등 11개는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전남도는 정부 지침에 적극 따를 방침이다. 전남도는 128개 대상 사업 중 93개를 정비해 91억원을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정비 결과가 행정자치부의 지자체 평가 등에 반영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에서 정비하는 사업을 보면, 노인인공관절시술지원·노숙인복지시설김장지원 등으로 취약계층한테 절실한 복지사업들이 적지 않다. 전남도의회는 지난 10월 “지역복지사업은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은 취약계층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반인권적인 처사”라며 정부 지침 이행의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창곤 박임근 송인걸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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