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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타락한 대학 밖에서 ‘코뮌주의’로 대안 찾아보겠다”

등록 2015-12-15 20:56수정 2015-12-15 21:57

[짬] 중앙대 정년퇴임 앞둔 강내희 교수
“정년까지 마쳐서 홀가분하지만, 남은 이들에게 미안한 느낌도 있지요. 처음 교수가 됐을 때는 대학이 더욱 민주화하고 학풍도 개선될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막상 떠날 때가 되고 보니 전보다 더 상황이 후퇴해 마음이 무겁습니다.”

30년 가까이 한국의 진보적 문화운동과 비판적 문화연구에 온 힘을 기울여온 문화이론가 강내희(64)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한다.

지난 9일 그는 중앙대 문과대 강의실에서 ‘노동 거부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제목으로 고별 강연을 했다. 강단에서 남긴 마지막 가르침이 “노동권 요구가 아닌 노동 거부를 하라”는 얘기였던 것이다. 스펙을 잘 쌓아 졸업 뒤 좋은 일자리를 얻고 출세하라는 게 일반적인 대학의 가르침이고 보면, “비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개발하라”는 강 교수의 ‘마지막 수업’은 역시 비판적 문화연구에 몰두해온 그다운 얘기였다.

1986년 미국 유학 마치고 ‘강단 30년’
6월항쟁·노동자대투쟁·총장직선제…
“그때보다 대학민주화 후퇴해 무겁다”

92년 ‘문화/과학’ 창간 비판문화연구
9일 마지막 강의 “노동거부를 하라”
대안대학 지식순환협동조합 학장으로

강내희 교수
강내희 교수
강 교수는 1986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이듬해 중앙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때 마침 벌어진 6월항쟁, 노동자대투쟁을 지켜보며 ‘더 나은 사회’가 오리라 낙관했다. 대학 내 학풍은 자유롭고 진보적으로 변화했고, 총장을 처음 교수 직선제로 뽑을 만큼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다. 그리나 지금, 대학 캠퍼스는 자본의 침식에 몸살을 앓고 있다. 호텔처럼 근사한 건물에 영업점포가 들어서면서 시장화하는 대학, 학교의 금융화에 그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화려한 건물,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대학의 금융화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의 타락이죠. 학문할 사람들이 학문을 못 합니다. 학생들이 학문을 하겠다고 마음먹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거예요. 평가와 행정에 치인 교수들은 오래 연구해서 저서를 낼 여유가 거의 없고, 연구자들은 박사학위를 받아도 최저임금마저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한 그루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소나무’로 캠퍼스 조경을 하고, 화장실을 으리번쩍하게 만들면서도 장학금은 늘리지 않는 대학, 입학 인구 감소를 이유로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인문학, 사회과학의 위기가 심화하는 것을 보며 그는 장탄식을 금치 못했다.

“제 평생 벽이 높은 ‘분과학문’ 체제를 깨느라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을 소통하는 통섭모델을 고민했지만 지금은 분과학문 자체를 지키려는 학자들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통섭’마저 대학을 장악하려는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쓰고 있는 마당에 분과학문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너무 소중하게 여겨지거든요.”

그가 대학 바깥에서 비판적 문화연구 활동을 해온 것은 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대학생이 사망하는 ‘강경대 치사사건’이 터지고 분신정국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이어졌다. 그러다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가 대학생들에게 밀가루 세례를 받아 학생들이 ‘패륜’으로 규정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문화이론 전문지인 계간 <문화/과학>을 92년 창간하게 된 계기였다.

“이미지를 호도해서 바꾼 사건이죠. 문화적 수단에 의해 정세가 뒤바뀐다는 것을 깨닫고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문화 부문의 대응이 있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문화/과학>은 손자희 현 발행인(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함께 ‘삼두체제’를 이뤘다. 손 발행인과 강 교수는 오랜 학문적 동지이자 부부다. 문학 전공으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잡지 기획부터 편집까지 출판노동과 가사노동을 도맡아온 손 발행인에 대해서 강 교수는 특히 감사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학문적 동지였고, 진정한 ‘삶의 동지’가 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또한 서로 연대하고 동지가 되는 관계와 거리가 멀지 않다. 사실 지금의 자본주의적 삶을 사는 개인은 자유롭지 않다. ‘자유로운 개인’이나 ‘시민’보다 빚을 관리하고 자산을 투자하는 ‘빚진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일컫는 ‘코뮌주의’를 대안으로 내놓는다. 올해 초 문을 연 2년제 대안대학과정인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지순협 대안대학)도 이런 연합에 대한 실험 가운데 하나다. 그는 이 대안대학의 학장이다.

“학생들을 보며 자유로운 개인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걸 느낍니다. 자본주의의 위기관리가 점점 힘들어질 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곧 파시즘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비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사는 노하우, 기술, 능력을 서로 배워야 합니다.”

내년 초 퇴임 즈음에 여러권의 책이 나온다. 그의 대표글을 엮은 선집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가 거의 준비를 마쳤고, 동료, 제자, 후배들은 기념 단행본 <좌파가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을 낼 예정이다. 그가 지금 집필중인 <길의 역사-직립존재의 발자취>도 있다. “교수 시절 여러 업무로 매진하지 못했던 저서 집필을 위한 시간이 생겼지만 마감 때문에 마음이 조급하다”며 웃는 그의 눈이 빛났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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