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탈영, 유혹의 순간’ 논픽션 가작 1 후문 초소의 이병과 하사
훈련소 본부 쪽에서 지프차의 불빛이 번쩍하고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직감적으로 당직 사령의 순찰차라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바닥에는 이미 카빈총의 개머리판으로 철모를 강타당한 이 하사가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그를 일으키려다가 다가오는 불빛을 한번 쳐다보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끝장이다. 착검한 채 들고 있던 총을 내동댕이치고 후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후문 밖은 마치 잔뜩 흐린 그믐밤처럼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내가 버텨내기는 불가능한 곳이다. 씨팔, 어떻게든 되겠지….
1978년 10월 논산 연무대 훈련소에서 입대 6개월차 이등병이 탈영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분명 후문 위병소 근처에서 싸움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멀다고 느꼈을까. 위병소를 지나 후문 기둥을 나가는데 뒤에서 이 하사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절규에 가까운 소리였다.
“야, 유 이병….”
멈칫 뒤를 돌아봤는데 이 하사가 철모를 짚으면서 몸을 반쯤 일으키고 있었다.
“같이 가든지, 여기 있든지 해야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빨리 안 오냐?”
후문 너머 어둠은 어서 오라고 유혹하고 있는데, 머릿속에선 지난 4개월간의 고통이 생생하게 스쳐지나갔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충청북도 증평에 있는 37사단에서 전·후반기 훈련병 교육을 받고 논산훈련소에 배치되었을 때 복권 당첨됐다며 남들에게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마지막 발악을 하는 유신정권처럼 망가져가는 유신군대의 똥물을 뒤집어쓰고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하곤 절망하는 중이었다.
단풍하사는 이등병보다 낮다
“어떤 새끼야? 지금 ‘이 하사님’이라고 한 놈이?”
37사단에서 같이 전입 온 김 이병이 경기를 일으키는 아기처럼 벌떡 일어나 ‘이병 김○○’ 하며 복창을 했다. 불과 이주일 전 그 아수라판에 끼어들어 초주검이 됐던 나도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과가 끝나고 내무반장인 고참 이 하사가 하사들과 어울려 밖으로 나간 사이에 고참 사병의 군기잡기가 시작된 것이다.
“야 이 새끼야! 너보다 두 달밖에 안 빠른데, ‘님’자가 그리 잘 붙냐? 같은 이등병 대우 하라고 그랬지? 뒤로 취침! 이 새끼 봐라? 아주 오늘 날궂이를 하는구나, 응? 야! 야삽자루 갖고 와… 내 이 새끼를.”
그날 김 이병은 저녁 점호를 받기 전까지 두어 시간을 그야말로 내무반 바닥을 기어다녔고 결국 저녁도 먹지 못했다. 그래도 원산폭격한 채로 군홧발에 머리를 차이고 쇠파이프로 허벅지가 터질 때까지 맞은 나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같은 사단에서 훈련을 받은 동기였지만 나설 수도, 한마디 거들 수도 없었다. 스스로가 너무 비굴하게 느껴졌지만 아직도 제대로 누워 잘 수도 없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논산훈련소 경비대대에는 일반 경비중대와 기동타격대 5분대기조가 있었다. 기동타격대 신입하사 전원이 단기하사로 채워졌는데 하사계급장이 장기하사와 윗부분 색깔이 달라서 사병들은 그들을 ‘단풍하사’로 불렀다. 그들은 보통 전·후반기 2개월 훈련을 마치고 오는 사병과 달리 6개월 훈련을 받고 전입을 오는 병장 위의 계급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병들은 전입 온 그들을 상관으로 대우를 해주지 않았고, 하사 계급장이 아니꼬운 고참 사병들은 이제 막 전입 온 이등병에게까지 막말을 하도록 강제하였던 것이다. 단풍하사들에게 존칭이나 대우 해주는 것이 눈에 띄면 고참병에게 갖은 고초를 당해서, 신입이긴 마찬가지인 단풍하사들과 이등병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중이었다. 단풍하사들의 고통도 사병과 마찬가지여서, 고참 하사들은 신입 하사들이 병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나면 얼마나 그들을 두들겨 댔는지, 밤마다 기동타격대 내무반 뒤에서는 그야말로 곡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어떤 새끼가 ‘하사님’이래?”
기동타격대의 신입 하사들을
아니꼽게 본 고참 사병들은
이등병한테까지 반말 강요했다
나도 몰래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사와 함께 나간 후문 경비
무덤덤하게 경비를 서던 우린
갑자기 난투극을 벌이고 말았다
당직사령 지프가 번쩍이며 왔다
난 후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야’도 ‘~입니다’도 아닌… “유 이병은 집이 어디야?” 저녁 점호가 끝나고 야간근무를 나가면서 내무반이 조금 멀어지자 이 하사가 친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담장을 따라 죽 늘어선 주황색 경계등 불빛 아래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잠깐 포근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서울….” 말꼬리를 어쩔 줄 몰라 그저 얼버무렸다. ‘~이야’라고도 못하고 ‘~입니다’라고도 못하는 심정은 당해본 사람만 안다. 후문까지 나란히 걸어나가며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문이 서로 마주보는 맞은편 내무반인데다가 아침저녁으로 식당에서 마주치면서도, 대화는커녕 공연히 말 섞었다가 고참들한테 시달릴까봐 눈길 한번 주고받지 않았는데도 직감적으로 나는 그가 다른 사병들과는 달리 나에 대해 반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 역시 이리저리 시달리면서도 고참들이 그를 놀려먹을 때 짐짓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거나 자리를 피함으로써 그에 대한 동병상련을 보여주었다. “몇 살이야?” 다시 이 하사가 물었다. 아마 나이라도 자기가 더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도 같았는데 생일도 내가 빠른 것을 알자 둘 다 말이 없었다. 아무리 고참들이 닦달을 해대도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하사에게 막말을 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렇다고 해보지도 않은 높임말을 하기도 뭐해서 그가 무엇을 물으면 그냥 어정쩡하게 얼버무려 나갔다. 처음에 같이 근무를 서라고 명령을 받을 때만 해도 친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리라던 맘과는 달리 그저 어색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그나마 몇 마디 나눈 후에는 말없이 후문을 향해 걸어나갈 뿐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답답하기만 할 뿐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전출 경비대대이니 훈련소 4대문을 비롯한 크고 작은 문들과 담장 옆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나가는 것이 주 임무였다. 높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소정문은 위병장교와 고참병들이 근무를 나가고 후문도 중간 고참들이 나가는데, 왜 그날 신입 하사와 이등병을 후문 책임자와 소초병으로 내보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렇게 별 대화 없이 걸어서 후문에 도착했고 선임 근무자와 근무교대를 하면서도 별 탈은 없었다. 훈련받은 대로 착검을 한 채 자리에 서자, 힐끗 보던 사병 고참이 이 하사에게 후문 근무 처음이냐며 반말로 몇 마디를 했는데, 이 하사는 대꾸도 하지 않고 위병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늘 그렇듯 살가운 말 하나 없이 근무 교대는 이루어졌고, 이 하사는 위병소 안으로 나는 근무대 위로 올라가 허리에 경계총을 하고 섰다. 주간근무와 달리 야간근무는 여유가 있었다. 꼭 근무대 위에 있지 않아도 되었고 착검한 총도 허리에 대야 하는 경계총 대신 어깨에 메어도 됐는데, 단 위병 책임자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위병소 안의 이 하사 쪽을 한번 힐끗 보고 나는 총을 어깨에 메고 근무대를 내려와 후문 주위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근무 교대할 때 맘을 상했기 때문일까. 이 하사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야, 유 이병! 총 똑바로 메고 근무대 위에 올라가 있어.” 나 역시 갑자기 명령조로 바뀐 그의 목소리에 적응이 안 된 탓이리라. 그래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는 않으며, 들릴지 안 들릴지 쥐꼬리만큼 걱정하며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심심하면 그냥 잠이나 자라. 다들 이러는데 뭘. 그래도 꼴에 조장이라 이거지?” “유 이병, 일루 좀 와봐.”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갔던 나는 이 하사의 일격을 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별이 번쩍하고는 그 다음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한 꼴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딱히 이 하사에게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누구에겐가 모를 격렬한 화가 명치 끝에서 올라왔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 이 하사는 이 위선 덩어리 군대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단 하나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에게 덤벼들었고 뒹굴다가 급기야 메고 있던 카빈총의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하고 싸우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는 그리 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붙잡고 내 화를 말리려고 바둥댔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혈이 낭자한 싸움은 벌어졌고 당직 사령의 지프차는 우리를 향해 곧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린 모두 피해자였다 후문을 향해 달려나가던 나는 그냥 멈춰 서 있었다. 이 하사가 내 총과 철모 등속을 챙겨주더니 빨리 근무대 위로 올라가 있으라고 독촉을 해대는데, 멀리 보이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위병소 앞에서 턴을 하고 있었다. 이 하사가 근무복창을 하고 딴에는 철모를 깊숙이 내려 쓴다고 썼지만 당직 사령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귀찮은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당직 사령과 여러 가지 운이 따라주어 영창행은 면했으나, 나는 결국 나중에 교육연대로 자원 신청을 해서 탈영 아닌 전출을 하고 말았다. 쇠파이프로 사정없이 두들겼던 중대장이 전출명령지를 들고 나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탈영하려고 했다며? 앞으로도 두 번쯤은 더 있을 거다. 미친놈, 아무리 그렇다고 하사 얼굴을 그따구로 만드는 놈이 어딨냐?” 그 사건 이후 이 하사와는 더 친해졌다. 둘이 있을 때는 말도 놓고 지냈고, 누가 곁에 있을 때는 고참한테 맞거나 말거나 깍듯하게 ‘님’자를 붙였다. 내가 시작해서일까. 내가 교육연대에서 상병을 달 즈음에는 경비대대에서 감히 이등병이 신입 하사들에게 말을 놓는 일은 없다고 전해 들었다. 교육연대로 전출을 가기 전날 저녁에 이 하사는 구하기 힘든 소주를 들고 몰래 내게 왔다. “너나 나나 다 피해자지 뭐. 군대생활 잘하고. 나중에 내가 정문 근무 서게 되면 너 외출외박 나갈 때 무조건 열외 시켜줄게, 알았지?” 유원진/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기동타격대의 신입 하사들을
아니꼽게 본 고참 사병들은
이등병한테까지 반말 강요했다
나도 몰래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사와 함께 나간 후문 경비
무덤덤하게 경비를 서던 우린
갑자기 난투극을 벌이고 말았다
당직사령 지프가 번쩍이며 왔다
난 후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야’도 ‘~입니다’도 아닌… “유 이병은 집이 어디야?” 저녁 점호가 끝나고 야간근무를 나가면서 내무반이 조금 멀어지자 이 하사가 친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담장을 따라 죽 늘어선 주황색 경계등 불빛 아래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잠깐 포근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서울….” 말꼬리를 어쩔 줄 몰라 그저 얼버무렸다. ‘~이야’라고도 못하고 ‘~입니다’라고도 못하는 심정은 당해본 사람만 안다. 후문까지 나란히 걸어나가며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문이 서로 마주보는 맞은편 내무반인데다가 아침저녁으로 식당에서 마주치면서도, 대화는커녕 공연히 말 섞었다가 고참들한테 시달릴까봐 눈길 한번 주고받지 않았는데도 직감적으로 나는 그가 다른 사병들과는 달리 나에 대해 반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 역시 이리저리 시달리면서도 고참들이 그를 놀려먹을 때 짐짓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거나 자리를 피함으로써 그에 대한 동병상련을 보여주었다. “몇 살이야?” 다시 이 하사가 물었다. 아마 나이라도 자기가 더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도 같았는데 생일도 내가 빠른 것을 알자 둘 다 말이 없었다. 아무리 고참들이 닦달을 해대도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하사에게 막말을 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렇다고 해보지도 않은 높임말을 하기도 뭐해서 그가 무엇을 물으면 그냥 어정쩡하게 얼버무려 나갔다. 처음에 같이 근무를 서라고 명령을 받을 때만 해도 친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리라던 맘과는 달리 그저 어색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그나마 몇 마디 나눈 후에는 말없이 후문을 향해 걸어나갈 뿐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답답하기만 할 뿐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전출 경비대대이니 훈련소 4대문을 비롯한 크고 작은 문들과 담장 옆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나가는 것이 주 임무였다. 높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소정문은 위병장교와 고참병들이 근무를 나가고 후문도 중간 고참들이 나가는데, 왜 그날 신입 하사와 이등병을 후문 책임자와 소초병으로 내보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렇게 별 대화 없이 걸어서 후문에 도착했고 선임 근무자와 근무교대를 하면서도 별 탈은 없었다. 훈련받은 대로 착검을 한 채 자리에 서자, 힐끗 보던 사병 고참이 이 하사에게 후문 근무 처음이냐며 반말로 몇 마디를 했는데, 이 하사는 대꾸도 하지 않고 위병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늘 그렇듯 살가운 말 하나 없이 근무 교대는 이루어졌고, 이 하사는 위병소 안으로 나는 근무대 위로 올라가 허리에 경계총을 하고 섰다. 주간근무와 달리 야간근무는 여유가 있었다. 꼭 근무대 위에 있지 않아도 되었고 착검한 총도 허리에 대야 하는 경계총 대신 어깨에 메어도 됐는데, 단 위병 책임자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위병소 안의 이 하사 쪽을 한번 힐끗 보고 나는 총을 어깨에 메고 근무대를 내려와 후문 주위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근무 교대할 때 맘을 상했기 때문일까. 이 하사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야, 유 이병! 총 똑바로 메고 근무대 위에 올라가 있어.” 나 역시 갑자기 명령조로 바뀐 그의 목소리에 적응이 안 된 탓이리라. 그래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는 않으며, 들릴지 안 들릴지 쥐꼬리만큼 걱정하며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심심하면 그냥 잠이나 자라. 다들 이러는데 뭘. 그래도 꼴에 조장이라 이거지?” “유 이병, 일루 좀 와봐.”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갔던 나는 이 하사의 일격을 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별이 번쩍하고는 그 다음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한 꼴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딱히 이 하사에게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누구에겐가 모를 격렬한 화가 명치 끝에서 올라왔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 이 하사는 이 위선 덩어리 군대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단 하나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에게 덤벼들었고 뒹굴다가 급기야 메고 있던 카빈총의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하고 싸우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는 그리 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붙잡고 내 화를 말리려고 바둥댔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혈이 낭자한 싸움은 벌어졌고 당직 사령의 지프차는 우리를 향해 곧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린 모두 피해자였다 후문을 향해 달려나가던 나는 그냥 멈춰 서 있었다. 이 하사가 내 총과 철모 등속을 챙겨주더니 빨리 근무대 위로 올라가 있으라고 독촉을 해대는데, 멀리 보이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위병소 앞에서 턴을 하고 있었다. 이 하사가 근무복창을 하고 딴에는 철모를 깊숙이 내려 쓴다고 썼지만 당직 사령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귀찮은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당직 사령과 여러 가지 운이 따라주어 영창행은 면했으나, 나는 결국 나중에 교육연대로 자원 신청을 해서 탈영 아닌 전출을 하고 말았다. 쇠파이프로 사정없이 두들겼던 중대장이 전출명령지를 들고 나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탈영하려고 했다며? 앞으로도 두 번쯤은 더 있을 거다. 미친놈, 아무리 그렇다고 하사 얼굴을 그따구로 만드는 놈이 어딨냐?” 그 사건 이후 이 하사와는 더 친해졌다. 둘이 있을 때는 말도 놓고 지냈고, 누가 곁에 있을 때는 고참한테 맞거나 말거나 깍듯하게 ‘님’자를 붙였다. 내가 시작해서일까. 내가 교육연대에서 상병을 달 즈음에는 경비대대에서 감히 이등병이 신입 하사들에게 말을 놓는 일은 없다고 전해 들었다. 교육연대로 전출을 가기 전날 저녁에 이 하사는 구하기 힘든 소주를 들고 몰래 내게 왔다. “너나 나나 다 피해자지 뭐. 군대생활 잘하고. 나중에 내가 정문 근무 서게 되면 너 외출외박 나갈 때 무조건 열외 시켜줄게, 알았지?” 유원진/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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