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나하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입국거부와 강제출국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말로 법률 조언을 받고 싶어 수소문한 끝에, 오키나와에서 유일하게 우리말을 하시는 변호사라는 얘기를 듣고 연락드립니다.” 지난 11월말 오키나와 합동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백충(30·사진) 변호사가 받은 전화 내용이다. 일본에 농사일을 도우러 왔다가 강제출국이라는 황당한 일을 당하게 된 한 한국인이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오래도록 류큐왕국이라는 독립왕국을 이루었지만 1879년 일본에 강제병합된 곳, 제2차 세계대전 말 상륙한 미군과의 전투에서 주민의 4분의 1 이상이 희생당하며 격전을 치른 곳, 인구 140만이 거주하는 비좁은 땅에 주일 미군기지의 74% 정도가 밀집해 있는 곳…, 그런 오키나와에서 ‘한국말을 하는 유일한 변호사’로 통역 봉사도 마다않는 백 변호사를 지난달 말 현지에서 만났다.
2011년 연고 없는 오키나와에 개업
유일한 ‘한국말 하는 변호사’ 명성
“한국인처럼 족발 먹어 연대감”
‘미군기지 반대’ 내세운 지사 당선
‘정체성’ 강조한 선거구호에 공감
“남북도 ‘민족 정체성’으로 화해를”
백충 변호사가 오키나와 중심도시 나하시에 있는 오키나와 합동법률사무소에서 오키나와 복귀운동의 중심에 선 세나가 카에지로의 좌우명인 ‘불굴’ 글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실 그는 오키나와 출신이 아니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동해와 닿아 있는 일본 중부 후쿠이현에서 태어났고, 고교까지 ‘우리학교’를 다녔다. 또 북한과 인연이 깊은 국외대학인 조선대를 나왔다. 이후 2011년 일본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활동중이다. 그런데 오키나와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백 변호사와 오키나와를 연결하는 끈은 ‘일본 내 소수자’라는 점이다. 그가 오키나와행을 처음 생각한 것은 대학 2학년 때인 2004년 8월이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뉴스를 통해 미군 헬기가 오키나와 국제대학 교정에 추락한 큰 사고를 지켜봤다. “어떻게 헬기가 대학 교정에 추락하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은 “오키나와 주민들도 재일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내 소수자”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 생각이 “일본 내 소수자인 재일동포들을 돕기 위해 변호사 시험을 준비한” 그를 오키나와로 이끈 것이다.
“오키나와에 와보니 주민들이 족발을 즐겨 먹는 것도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일본 본토’에서는 오직 재일동포만 족발을 즐긴다. 일본인은 족발을 먹지 않는다. 그는 음식을 통해서도 소수자 연대를 확인한다.
백 변호사가 일하는 오키나와 합동법률사무소는 ‘일본 자유법조단’ 소속이다. 우리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같은 곳이다. 오키나와 합동법률사무소는 주로 소음피해 등 미군기지와 관련된 여러 피해 소송을 맡고 있다. 그 또한 미군기지 관련 업무가 중심이지만, 우리말을 한다는 점 때문에 가끔 재일동포나 한국 사람이 관련된 부동산·이혼·교통사고·강제출국 사건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단다.
오키나와에서 이렇게 5년간 미군기지 문제를 다루면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는 무엇보다 “남북 적대관계 해소의 한 실마리를 오키나와에서 본 것 같다”고 답한다. 2014년 11월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때 등장한 ‘올(all) 오키나와’라는 선거구호가 그 단초다. 이는 그때 미군기지 이전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무소속의 오나가 다케시 후보가 내세운 구호였다. 핵심은 ‘자민당이건 민주당이건 사회당이건 이념을 떠나 오키나와인의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나가 후보는 집권 자민당 후보를 물리치고 지사에 당선됐다.
“각자 이념을 앞세우고 있는 남북한도 이런 오키나와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백 변호사는 남북한도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이념보다 민족 정체성을 앞세운다면 적대감을 크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민족화해 문제는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이들보다 재일동포에게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재일동포에게 “그것은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일동포끼리 만나면 우리는 직감적으로 이 사람이 민단이냐 총련이냐를 생각합니다. 이 사람과 악수를 해도 좋은가 하는 것까지 민감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만일 남북이 ‘민족’이라는 아이덴티티로 좀더 화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재일동포 사회의 이런 균열 현상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더 나아가 남북을 화해시킬 정체성은 ‘유연한 정체성’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많은 일본인들이 오키나와 정체성을 얘기하면 곧바로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이냐’는 질문을 한다”고 전제한 그는 “이는 대표적인 1990년대적 사고”라고 비판한다.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 대세”라며 “한 국가 내에 고정된 하나의 정체성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낡은 생각”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를 남북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백 변호사는 한 예로 “재일동포들에게 남한 국적이냐, 북한 국적이냐고 묻고 편가르고 강제하는 것 또한 대표적인 냉전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사실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 ‘조선적’에서 ‘조선’이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조선반도를 가리킨다. 일제강점기에 조선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많은 일본인들은 그에게 “북한 국적이냐”고 묻는다. 그는 이 또한 낡은 사고를 보여주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남과 북으로 편을 가르는 정체성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의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개인으로서 재일동포 등이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살려고 하는지를 살펴보고 거기서 새롭게 정체성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군기지로 둘러싸인 오키나와섬에서 분단의 벽을 넘어 민족화해의 해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 젊은 동포 변호사의 모습이 듬직하다.
오키나와/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