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를 목표로 내세우면서 시간제 노동자를 늘리는 가운데, 시간제 노동자의 확산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빈곤을 더 악화시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김현경 부연구위원과 한국노동연구원의 장지연 선임연구위원 등이 참여한 연구팀이 5일 공개한 ‘시간제 일자리 확산이 소득불평등과 빈곤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시간제 노동자 비율이 높은 가구일수록 빈곤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시간제 취업 비율이 1% 포인트 증가하면, 이들 시간제 취업자가 있는 가구가 빈곤해질 확률이 0.0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는 시간제로 취업하는 경우 전체 취업자는 증가하지만, 빈곤 탈출을 돕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연구팀은 이번 보고서에서 시간제 노동자의 증가가 가뜩이나 심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함게 제시했다. 연구 결과, 우리나라 가구를 소득 수준에 따라 10분위로 나누어 시간제 노동자 비율 증가가 끼친 영향을 분석해보니, 시간제 비율의 증가가 저소득층에게 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제 노동자로의 취업이 고소득층인 9분위에서보다 저소득층인 1분위에서 더 큰 소득감소를 불러와, 불평등을 더 악화시키는 효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보고서에서 “이는 2007년과 2013년의 지니계수를 비교했을 때 시간제 노동자가 더 늘어난 2013년에, 지니계수가 더 나쁘게 나타나는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니계수는 0~1까지의 수치로 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데, 숫자가 1로 향할수록 불평등이 심함을 뜻한다. 연구팀의 이번 분석은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노동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분석 방법론은 다소 전문적인 ‘무조건분위회귀’와 요인분해였다.
김 박사팀은 “한국에서 시간제 일자리 증가는 저소득층의 경제활동 활성화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시키기보다는 저소득층의 임금을 낮춰 전체적으로 노동소득 분포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어왔음을 말해주는 연구 결과”라고 설명했다. 시간제 노동자는 “직장에서 근무하도록 정해진 소정의 노동시간이 동일 사업장에서 동일한 종류의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소정 노동시간보다 1시간이라도 짧은 노동자”를 말한다. 보통은 한 주에 36시간 미만 노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 한국의 시간제가 문제인 까닭은?
그런데 모든 나라의 시간제 일자리가 이런 결과로 나타나는 건 아니었다. 시간제 노동자의 비중이 39%에 이를 정도로 시간제 일자리가 확산돼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 시간제 취업의 확대는 가구원 중 취업자 수를 늘렸을 뿐만 아니라, 가구 소득의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보고서에서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분석한 결과다. 네덜란드에서는 시간제 일자리 확산이 개인소득에서는 불평등을 높였지만, 가구원 중 취업자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가구소득의 불평등을 축소시키는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제 일자리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선 네덜란드와 달리 시간제 취업이 빈곤과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까?
무엇보다 한국의 경우 시간제 일자리의 질이 매우 낮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풀이한다. 우리나라 시간제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004년 53만9000원이었다. 10년이 지난 뒤인 2014년에도 월평균 임금은 1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66만2000원에 불과했다. 전체 임노동자 평균 월임금 대비 시간제 노동자의 월임금 비중을 계산해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4년 이 비중은 35%였다. 2013년에는 오히려 30%로 낮아졌다. 격차는 해가 갈수록 커졌다.
2004년 전일제 노동자의 임금은 시간당 8천원에 가까웠고, 같은해 시간제 노동자의 임금은 시간당 6천원 남짓이었다. 2008년 전일제 노동자의 임금은 시간당 1만원대에 이르렀지만, 시간제 노동자는 여전히 6천원대에 머물렀다. 2013년에도 시간제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여전히 6천원 남짓이었지만, 전일제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1만3천원대로 늘었다. 2004년 시간제 노동자 가운데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이들은 17.2%였지만 이 비중은 2013년 36.4%로 높아졌다. 여성의 경우엔 특히 이 비중이 2004년 47.4%에서 2013년에는 62.5%로 악화됐다.
한국의 시간제 일자리는 대체로 취약한 집단이 진입하는 일자리란 특성도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시간제 일자리 증가를 주도하는 집단은 여성과 30살 미만의 청년층, 중고령층 그리고 학력으로 보면 중졸 이하의 계층으로 모두 취약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30살 미만 청년층은 2003년 7.4%에서 2014년 15.5%으로 늘었고, 중고령층은 2003년 14.6%에서 2014년 33.5%로 증가했다. 중졸 이하의 계층도 2003년 10.3%에서 24.2%로 확대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를 목표로 내세우면서 시간제 일자리는 더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시간제 노동자 비중은 2003년 6.6%에서 2014년 10.8%로 늘어났다.
■ 시간제 일자리가 좋아지려면?
시간제 일자리가 불평등과 빈곤을 더 악화시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팀은 시간제 일자리를 누구라도 선택하고픈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일제 노동자보다 임금은 낮더라도 줄어든 시간만큼만 비례해 임금을 포기하고, 또 임금 외에 각종 사회보험 등 복지혜택 등 간접적 보수가 보장되고 전일제로의 이동이 자유롭다면 일과 생활의 균형이란 차원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선택하고픈 일자리가 될 수 있으며, 이럴 때 빈곤과 불평등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시간제 일자리의 문제는 “질 낮고,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로 자발적으로 선택하고픈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자리란 점이라는 게 연구팀의 지적인 것이다. 노동패널(2006~2014년) 조사에 응답한 이들의 시간제 일자리 선택 동기를 보니, 열에 여섯명에 이르는 57.1%가 비자발적으로 시간제를 선택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63.4%가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라고 답했고,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서”가 15.2%로 뒤를 이었다.
연구팀은 한국의 시간제 일자리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다. “시간제 노동자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할 노동조합이나 단체교섭체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네덜란드나 스웨덴에서 시간제 노동자들도 자신의 노동권을 누리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줄 노동조합이나 산별교섭체제가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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