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성공회대 석좌교수)
신영복 교수 별세 소식에 SNS는 밤새 애도 물결
“참 올바르게, 자기 신념에 충실하게 사셨다 느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셨는데, 일찍 떠나셨다.”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는 소식이 15일 밤 10시께 알려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밤새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고인이 남긴 말과 글을 온라인 공간에서 옮겨 적어 공유하며 고인에 대한 기억을 되새겼다.
교수의 제자이자 방송인 김제동씨는 페이스북에 “‘여럿이 함께’, ‘처음처럼’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란 분별이 없어져야 함을 따뜻한 눈빛으로 늘 알려주셨던. 맞담배를 늘 권하시며 아래에서 위를 알려주셨던 고마운 우리 선생님”이라고 돌이켰다. 김씨는 “(고인의 저서인)<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우리의 몫으로 남겨두시고 가신 분.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자로. 우리 선생님의 가시는 길에 글 놓습니다. 따뜻하시기를. 평안하시기를 빈다”고 추도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사람이 ‘끝’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뵐 때마다, 늘 그 깊고 따뜻한 눈으로 부족한 저 자신을 비추어 주시곤 했다”며 “혼돈과 좌절의 시대에 선생님의 고요하고 엄숙한 가르침이 더욱 절실해질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문정현 신부는 자신의 트위터(@munjhj)에 “신영복 선생의 영면에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고통 받는 사람을 입으로 말하면서 긴 영어의 몸을 단 한 번도 면회하지 못했습니다. 헛살았다는 자책에 통회의 눈물을 흘린다”며 애통해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도 트위터(@Dr Pyo)에서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으신 참 지성인, 신영복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저 편 세상에서는 부디 편히 쉬소서”라며 고인을 기렸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트위터(@patriamea)에 “통일혁명당 사건 연루 정도에 비하여 무기징역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그는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고독한 성찰로 들어갔다”며 “그가 구축한 넓고 깊은 인문의 세계에 우리 모두는 빚지고 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는 “스승이 없는 사회라며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데, 후배에게 민폐 끼칠까봐 자신의 병환도 밝히지 않은 채 소리 소문 없이 생을 정리한 참 어른의 부음 때마다 통탄한다”면서 이 시대 참 어른 면모를 드러낸 고인의 삶을 기렸다.
작곡가 김형석씨도 트위터(@kimhs0927)에 고인의 저서 <더불어 숲>에 나온 구절 “나는 인간이 그 개인이 이룩해 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 귀속적 존재이기 때문이다”를 인용한 뒤, “항상 희망은 사람이었던 신영복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고인과 인연이 깊다는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로고를 완성하고 응용편을 준비하면서 ‘더불어’를 볼 때마다 신영복 선생님 생각이 났었다”며 “신영복 선생님께서 ‘더불어 숲’이 되어 민주주의를 지키라고 우리에게 큰 선물 ‘더불어’를 주고 가신 것 같다”고 했다.
신 교수의 타계 소식에 누리꾼들은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라는 신영복 선생님 단정한 글귀는 옆 사람을 증오하게 만드는 여름 징역 같은 에피소드부터 삶에 대한 통찰까지, 많은 이야깃거리를 많은이에게 남기셨다”, “돈과 이윤, 권력과 야만이 아닌 오직 인간과 생명을 위한 세상을 꿈꿨던 우리 모두의 스승님이 떠났다”, “마음의 스승, 시대의 스승이 가셨네요. 이 허전함은 뭘까요. 선생의 책을 꼼꼼히 읽지 않은 죄책감은 또 뭘까요. 뵌 적은 없지만 항상 연모했습니다. 편안히 잠드세요”라는 등 애도의 글을 잇따라 올렸다.
고인의 장례는 서울시 구로구 연동로 성공회대학교 학교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16일 오후 1시, 이 대학 대학성당에 마련된다. 17일 밤 10시까지 조문이 가능하며 영결식과 발인은 18일 오전 11시에 엄수된다.
신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은 뒤 투병 생활을 해오다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끝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학자로 활동해온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교관으로 복무하던 중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8년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1·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감옥에서 20년 20일을 복역한 신 교수는 민주화 이후인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으며, 1998년 사면·복권을 받았다. 신 교수는 오랜 수감 생활 동안 주고받은 편지와 글 등 230여편을 담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1998년 출간해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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