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용산참사 7주기 추모제’에서 한 참가자가 오른쪽 가슴에 추모 리본을 달고 있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
대한을 하루 앞두고 맹추위가 몰아친 20일 정오, 경기 남양주 마석모란공원 묘지에 마련된 다섯사람의 묘역 앞에 7년 전 이들을 가슴에 묻었던 가족과 동지 120명이 섰다.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4구역 재개발 현장에 있던 남일당 건물의 망루에 올랐다가, 경찰 특공대의 진압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여기 사람이 있다.’ 120명의 가슴에 단 까만 리본이 매서운 찬바람을 맞아 거세게 나부꼈다.
“7주기 때는 뭔가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오늘 이 자리도 빈손이라서 죄송합니다.” 조희주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용산대책위) 공동대표의 말로 시작된 추모제는 시종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조 대표는 “(용산참사 당시 진압 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당당한 승리자인 것처럼 국회에 진출하려는 상황이 열사들에게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김 전 청장은 경북 경주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던 김창수씨는 “살아남은 이들이 뭉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 열사들이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씨는 참사 당시 함께 망루에 올랐다가, 공무집행방해치사 등의 혐의로 4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묘역에선 “살인진압 진상규명, 국가폭력 끝장내자”라는 구호가 메아리쳤다.
이날 추모제엔 ‘파란 조끼’를 입은 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결성한 ‘파란집 용산참사 동지회’회원들이다. 동지회를 결성회 추모제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지내는 생존자들은 가슴에만 담고 있던 아픔을 나누자는 취지로 지난해 봄 동지회를 꾸렸다. 생존자들은 모두 11명이 추모제에 참석했다.
용산참사 당시 서울 순화동 철거민이었던 지석준씨는 형님·동생하는 사이였던 고 윤용헌씨의 묘역 앞에서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지씨는 “징역형을 선고받아 2013년까지 옥살이를 하고 출소 뒤에도 몸이 아파 오늘 처음으로 형님을 보러왔다”며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 형수가 잘 살 수 있게 기도하고 형님도 영면하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참사 당시 망루에서 추락해 부상당한 지씨는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지난주 남일당터에 처음 갔는데 아무 생각없이 멍하더라. 사건 이후에 잃어버린 기억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상도4동 철거민이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함께 망루에 올랐던 천주석씨도 “1월만 되면 발바닥이 찌를 듯이 아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은 한 목소리로 곧 사라질 남일당터를 걱정을 했다. 남일당 건물은 진작에 헐렸지만 용산4구역 개발이 7년 만에 시작되면서 현재 주차장으로 쓰이는 터는 조만간 사라지게 된다. 박래군 용산대책위 공동대표는 “참사를 기억할 대상이 사라져 다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며 “남일당 현장을 기억할 수 있는 조형물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위원회’를 만들어 올해 7주기에 맞춰 조사보고서를 내려 했으나 작업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용산참사 관련 자료들을 보관·전시할 박물관인 ‘건축도시재생 박물관’은 오는 10월 개관을 목표로 준비중이다.
고한솔 박태우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