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심리부검’ 결과 공개
“내가 없으면” 언어적 신호와 함께
수면·식욕 변화 등 행동으로도 표출
유가족 열 중 일곱은 뒤늦게 이해
74%가 직업·69%가 가족 ‘스트레스’
복지부, 예방 게이트키퍼 교육 확대
내달 정신건강종합대책 내놓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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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식욕 변화 등 행동으로도 표출
유가족 열 중 일곱은 뒤늦게 이해
74%가 직업·69%가 가족 ‘스트레스’
복지부, 예방 게이트키퍼 교육 확대
내달 정신건강종합대책 내놓기로
“내가 없으면 당신은 뭐 먹고 살래.” 맥락없는 질문이었다. 어린 자녀들에게 갑자기 이해하기 어려운 ‘설교’를 하기도 했다. “힘든 세상에 형제들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 남편이 떠난 뒤 아내는 그런 말들이 모두 ‘경고신호’였음을 알게 됐다.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ㄱ씨는 어느날 출근길에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누군가의 자살을 막는 것이 가능할까. 자살로 숨진 이들의 마지막 행보와 주변 진술을 통해 자살의 원인을 규명하는 ‘심리부검’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핀란드에선 1987년 높은 자살률에 대한 특단의 처방으로, 1년간 발생한 모든 자살사건(1397명)의 심리부검을 도입했다. 국가적인 자살대책이 뒤따랐고, 1990년 인구 10만명에 30.2명 수준이었던 핀란드의 자살률은 2012년 15.8명으로 47.7% 감소했다.
국내에서도 2014년 문을 연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부검센터(센터)가 최근 4년여간 자살로 숨진 20살 이상 한국인 121명의 심리부검 결과를 26일 공개했다. 경찰이나 정신건강증진센터 등을 통해 유가족들을 설득했지만 참여자가 많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쪽은 “아직 자살에 대한 통념이 강해 유가족들이 자살한 사실 자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힘들어하는 경우 많다”고 전했다.
조사 결과 고인들은 무엇보다 실직, 가족의 사망 등 인생의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던 것으로 분석됐다. 자살로 숨진 고인 10명 중 3명(28.1%)은 과거 가족의 자살이나 자살기도를 겪은 적이 있었다. 54.5%는 사망하기까지 3개월 사이에 ‘무직’ 상태였고, 73.6%가 실직 ·이직 등 ‘직업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가족과의 갈등이나 가족의 질병·사망 등 ‘가족 스트레스’를 겪은 이는 69.4%에 이르렀고 부부 불화·별거·이혼 등 ‘부부관계 스트레스’도 46.3%가 겪고 있었다.
심리부검 대상자의 93.4%는 자살 전에 경고신호를 보냈다. “내가 먼저 갈테니,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라”는 말처럼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소화가 잘 안된다”는 등의 신체적인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 “천국은 어떤 곳일까”와 같이 사후세계를 동경하는 듯한 말 등은 모두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나 자살의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일 수 있다. 경고신호는 이런 언어적 신호 뿐 아니라 수면상태나 식욕, 체중의 급격한 변화, 가진 재산을 정리해 가족에게 전하는 등 주변을 정리하는 경우, 급격한 음주나 흡연 등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갑작스런 눈물이나 무기력처럼 ‘정서’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고신호의 참뜻은 너무 늦게 가족에게 도달했다. 조사에 응한 이들 가운데 67%는 사망 뒤에야 경고신호를 이해했고, 14%는 신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자살 사망자(88.4%)는 우울장애·중독장애 등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은 비율은 15%에 지나지 않았다. 일부(25.1%)는 정신의료기관이나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상담을 받았지만, 그보다 많은 이들(28.1%)이 수면·소화장애 등 증상이 나타나자 1차 의료기관이나 한의원을 찾는 데 그쳤다. 자살의 사전 징후를 알아챌 수 있도록 돕는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차선경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지난 3년 동안 16만5천여명 정도가 게이트키퍼 교육을 수료했는데 앞으로 경찰·교사·군인 등 직군부터 점진적으로 게이트키퍼 교육을 확대할 것”이라며 “정신질환 조기발견체계 마련 등 이번 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을 2월 중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8.5명(2013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1년째 1위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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