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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례없는 ‘기수 역전’…판사 길들이기 나섰나

등록 2016-02-05 17:25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건 사법연수원 23기 법원행정처 출신들을 전진 배치한 점이다. 선배 기수보다 고등부장 승진을 많이 한 것은 전례가 드물다.”

지난 2일 대법원이 발표한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 고위법관 인사를 두고 법원 안에서 나온 평가다. 법원에서 엘리트 코스로 꼽히는 법원행정처 출신이 요직에 발탁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법정책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은 곧 법원 고위층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법연수원 후배가 선배들을 제치고 대거 고법부장으로 승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번 인사에서 연수원 23기 출신 승진자는 9명으로, 7명인 22기를 앞섰다. 법원은 전통적으로 ‘기수 역전’이 드문 조직인데다, 23기는 이번이 첫 고법부장 승진 대상이기 때문에 22기보다 승진이 적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23기 승진자 중에서 법원행정처 출신은 무려 5명이나 된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행정처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히 가산점이 있진 않지만, 법원 상부는 행정처 출신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행정처 출신이 요직에 가게 되고, 근무평정도 잘 받게 된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가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이라는 점에서 법원행정처 출신 우대는 법관의 독립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신 있는 하급심 판결이 나올 수 없도록 ‘판사 길들이기’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은 불법행위가 아니어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정면 반박하는 판결을 쓴 22기 출신 김기영 판사는 고법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한 판사는 “이번 인사는 행정처 사람이 아니면, (승진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22기는 내년에 한 차례 더 승진 기회가 남아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론 사실상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올해 마지막 승진 대상이었던 21기는 김재호 판사 단 1명만이 승진했다. 김 판사는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이다.

이번 인사로 대법원은 일선 법관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행정처에서 근무하면서 법원에 길들여진 판사들을 우대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메시지는 2011년 도입된 ‘대등재판부’가 폐지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당시 고등부장 승진에서 탈락한 법관들이 그만두는 것을 막기 위해 경력 15년 이상의 법관들을 고법판사로 뽑아 고등법원에서만 근무하도록 하는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를 도입했다. 점차적으로 고법부장 승진제도를 없애고, 지방법원 부장판사급인 이들로 재판부를 전부 구성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법원은 처음으로 고법판사로 뽑힌 23기 중에서도 고등법원 부장 2명(노경필, 백강진)을 선발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고법판사는 승진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소신 있는 판결을 많이 했었다. 결국 대법원장이 다시 고법판사에 대해서도 인사권을 계속 쥐고 있음으로써, 법관들을 관리하려는 거 아니냐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고 했다. 또 다른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23기가 처음 고법판사가 됐을 때만 해도 첫 승진대상이 되는 올해에는 모두 고법부장 대우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고법판사라고 해도, 동기 중에서 누가 승진을 해 부장을 맡게 된다면, 고법판사를 하려고 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는 “인사라는 게 최소한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재판을 잘하면서 행정을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재판보다 행정만 우선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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