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공개된 법원의 판결 기사가 설 연휴 누리꾼들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라인’의 영문 인터넷 도메인(www.line.co.kr)을 먼저 등록한 사람이 있어도 네이버가 이를 사용하도록 무상으로 넘겨줘야 한다는 판결이었습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대기업이 도메인 내놓으라고 하면 아무 대가 없이 내놔야 하느냐. 대기업의 횡포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습니다. “도메인 원소유주의 ‘알박기 의혹’이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판결”이라는 누리꾼도 있었습니다. ‘더 친절한 기자들’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1부(재판장 김기영)의 판결문을 바탕으로 이 사건 이슈를 차분히 짚어 보겠습니다.
1. 사건 개요
www.line.co.kr 도메인(이하 라인 도메인) 주소의 첫 소유주는 ㅁ건설이라는 차선 도색 전문업체입니다. ㅁ건설은 2010년 4월14일 라인 도메인을 등록했습니다. ㄱ씨는 ㅁ건설 감사로, ㅁ건설 사장의 아들입니다. ㄱ씨가 라인 도메인 소유권을 개인 소유로 넘겨받은 건 2013년 12월24일입니다. ㄱ씨는 라인 도메인을 대체로 ‘차선도색협회’라는 단체의 카페 홈페이지 주소로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대체로’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추후에 설명하겠습니다.
네이버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라인’은 2011년 6월23일 처음으로 일본에서 서비스를 개설했습니다. 한국에서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LINE(라인)’ 상표와 유사 상표들에 대한 상표권을 보유하기 시작한 건 2014년 4월부터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네이버보다 ㅁ건설이 라인 도메인을 먼저 개설해 운영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차선(車線) 도색 업체이니, ‘line(선)’이라는 보통 명사를 쓰는 행위에도 별 이상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네이버는 2015년 1월 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에 ‘라인 도메인을 말소해달라’는 취지로 분쟁조정을 신청했습니다. 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는 2015년 4월 ‘ㄱ씨의 라인 도메인 소유는 부당한 이득을 얻을 목적이 있음이 명백하다’고 결정했습니다. ㄱ씨는 이 결정이 억울하다며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2. 네이버가 무상 이전을 요구한 법률적 근거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 제12조 ‘부정한 목적의 도메인 이름 등의 등록 등의 금지’ 조항을 보면, 제1항은 ‘누구든지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의 도메인 이름 등의 등록을 방해하거나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얻는 등 부정한 목적으로 도메인 이름 등을 등록·보유 또는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2항도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는 제1항을 위반하여 도메인 이름 등을 등록·보유 또는 사용한 자가 있으면 법원에 그 도메인 이름 등의 등록말소 또는 등록이전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권원’은 어떤 법률행위 또는 사실행위를 법률적으로 정당하게 해주는 근거입니다. 이 조항을 요약하자면, 도메인을 소유하는 부정한 목적이 있으면 그 소유권을 이전하거나 도메인 등록을 말소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이 법률을 바탕으로 우선 네이버가 라인 도메인에 대한 등록 말소나 등록 이전을 청구할 수 있을 만한 정당한 법률적 근거, 즉 권원이 있는지부터 따졌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1부 재판부가 근거로 삼은 판례는 대법원의 2013년 9월 판결입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정당한 법률적 근거로 “그 도메인 이름과 동일 또는 유사한 성명, 상호, 상표, 서비스표 등을 다른 사람이 도메인 이름으로 등록하기 전에 국내외에서 이미 등록했거나 상당 기간 사용해 오고 있는 등으로 그 도메인 이름과 사이에 밀접한 연관관계를 형성하는 한편, 그 도메인 이름을 대가의 지불 없이 말소하게 하거나 이전을 받는 것이 정의 관념에 비추어 합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직접적 관련성이 있고, 그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도 충분하다는 사정이 존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이 판례를 바탕으로 ‘네이버와 라인 도메인 사이에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고, 네이버가 이 도메인을 무상으로 이전받는 것이 정의 관념에 부합하고 보호의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근거는 모두 다섯 가지.
1) 네이버가 2011년 5월부터 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해 국내외 가입자 수가 2013년 1월18일께 1억명, 2013년 7월21일께 2억명, 2013년 11월25일께 3억명, 2015년께에는 6억명을 돌파한 점,
2) 네이버가 2014년 4월 국내에서 라인 관련 상표를 모두 상표로 등록해 상표권을 취득한 점,
3) ‘라인’이라는 이름이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에 대한 식별표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점,
4) 라인 도메인 이름의 ‘line’ 부분이 네이버의 ‘라인(LINE)’ 서비스와 알파벳이 동일하고 한글 음역도 같은 점,
5) ‘line’이 보통명사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네이버 외의 제3자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점 등입니다.
3. ㄱ씨에게 ‘부정한 목적’이 있다고 본 근거
이번에는 재판부가 ㄱ씨에게 라인 도메인을 취득한 ‘부정한 목적’이 있다고 본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 제12조를 보면, 도메인 소유자가 ‘부정한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가 도메인 소유권의 법률적 근거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재판부는 이 부분을 판결하면서 대법원의 2013년 4월 선고 판결을 판례로 삼았습니다. 이 판례를 바탕으로 재판부가 라인 도메인 소유자에게 ‘부정한 목적이 있었다’고 규정한 조건은 크게 봐서 모두 네 가지입니다.
1) 도메인 이름(라인 도메인)과 대상 표지(네이버 라인 서비스)의 동일·유사성 정도
☞재판부는 ㄱ씨가 만든 라인 도메인이 네이버의 ‘LINE’ 상표와 같거나 유사해 일반 이용자들에게 혼동을 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라인 도메인이 2010년 9월9일부터 ㄱ씨가 소속된 ㅁ건설의 무역사업부문인 ㅁ글로벌 블로그로 연결됐지만, 같은 해 10월 이후에는 블로그에 글이 올라오지 않는 등 실제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또 ㅁ건설 홈페이지 주소가 www.m*cp.kr이고, ㅁ건설의 상호와 표장, 홈페이지도 라인 도메인과 연결점이 없었다는 점도 라인 도메인과 이 건설사의 실제적 관계를 의심한 까닭이 됐습니다.
2) 도메인 이름에 의한 웹사이트의 개설 및 그 웹사이트의 실질적인 운영 여부
☞ㄱ씨는 라인 도메인 소유권을 이전받아 차선도색협회의 인터넷 카페 주소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ㄱ씨는 2013년 7월15일부터 라인 도메인을 차선도색협회 인터넷 카페로 연결했고, 차선도색협회 인터넷 카페에도 라인 도메인 이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ㄱ씨는 2014년 12월29일 ‘라인’이라는 상호로 사업자 등록을 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선도색협회 인터넷 카페의 원주소는 cafe.naver.com/roadmarking입니다. 라인 도메인과 연결하기에는 문자 유사성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ㄱ씨는 2014년 12월께 다음카카오 웹페이지에, 2015년 1월께에는 비투엘 쇼핑몰 웹페이지에 라인 도메인을 연결해 개인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제가 앞서 ㄱ씨가 라인 도메인을
대체로 ‘차선도색협회’라는 단체의 카페 홈페이지 주소로 사용했다고 말씀드린 까닭입니다.
2014년 12월30일에는 라인 도메인과 차선도색협회의 연결이 끊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ㄱ씨가 라인 도메인을 차선도색협회의 인터넷 카페 주소로 실질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3) 도메인 이름을 등록·보유 또는 사용한 자가 대상표지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
☞차선도색협회는 2013년 7월9일 만들어졌습니다. 앞서 말했듯, ㄱ씨는 라인 도메인 소유권을 2013년 12월24일 넘겨받았지요. 재판부는 이미 이때 네이버의 라인 서비스가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로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니 ㄱ씨가 이런 유명세를 이용할
‘부정한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겁니다.
4) 도메인 이름을 판매·대여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한 전력이 있는지 여부
☞앞서 얘기했듯 ㄱ씨가 라인 도메인을 한때 2주 동안 네이버의 경쟁 업체인 다음카카오 웹페이지로 연결해 라인 이용자들에게 혼동을 준 적이 있습니다. 한 인터넷 매체에서 기사화하기도 했습니다. (
▶바로 가기 : line(라인) 도메인이 왜 다음카카오로?) 이 때문에 네이버 쪽은 일종의 간접 피해를 입게 됐지요. ㄱ씨는 이에 대해 “다음카카오에 이력서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입사지원시 필요한 정보 등을 쉽게 저장, 업다운 로드 등을 하기 위해 잠시 익숙한 라인 도메인 이름을 일시적으로 다음카카오에 연결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ㄱ씨가 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게다가 ㄱ씨의 주장을 인정한다 해도, 차선도색협회 인터넷 카페 주소로 사용되고 있던 라인 도메인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력서 작성을 위해 차선도색협회와 무관한 곳으로 연결했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ㄱ씨가 네이버로부터 라인 도메인을 넘겨달라는 요청을 받자 10만달러라는 거액을 요구한 점, 그 협상을 담당한 변리사에게 협상이 성사되면 협상 금액의 15%를 수수료로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해 라인 도메인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한 점도
‘부정한 목적’의 주요 근거가 됐습니다.
4. ㄱ씨의 반박 “영리 목적 네이버에 그냥 줘야 하나?”
판결이 기사로 공개된 뒤 ㄱ씨는 차선도색협회 인터넷 카페에 ‘line.co.kr 도메인 소유자, 차선도색협회 명예회장 OOO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은 금세 삭제됐지만, 발빠른 누리꾼들은 이미 갈무리해 각종 커뮤니티에 퍼날랐습니다.
ㄱ씨는 글에서 라인 도메인이 2주 동안 다음카카오 웹페이지로 연결된 것에 대해 “저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임을 입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비투엘 쇼핑몰로 연결된 것에 대해서도 “저는 이 쇼핑몰 사이트 회사에서 1년 동안 제 시간을 투자하면서 (홈페이지를) 워드프레스로 만들어 주었다”며 “(라인 도메인 연결은) 워드프레스 웹사이트로 연동될 수 있는 것인지 테스트하는 시간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면 차선도색협회 명예회장 OOO 포워딩 테스트를 병행할 수 있어서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나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ㄱ씨는 ‘10만달러 요구’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종합하면, 네이버 쪽에서 무료 이전을 요구해왔고, 이를 거절하니 “3만~30만원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ㄱ씨는 “이 제시안을 모두 거절하고 이메일로 금액을 적어 보냈다”며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 코퍼레이션은 공익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고, 라인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그냥 줘야 하나? 3만원, 30만원, 100만원, 300만원을 받고 주면 맞는 걸까”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네이버 쪽에서 “(10만달러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며 통상 100만원에 양도 양수된다고 주장해왔다”며 “그래서 (또 다른 라인 관련 도메인인) line.com을 100만원에 양수 받으면 (10만달러가) ‘터무니없는 금액’이란 걸 인정하겠다”고 했습니다.
ㄱ씨는 마지막으로 “저는 힘없는 대한민국 국민일 뿐”이라며 “차선도색협회이자 네이버 카페도 비영리로 운영하고 있다. 돈을 벌고 있지 않다. 한국의 차선도색 건설업종의 문화를 한층 더 성숙시키고자 만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line.co.kr은 대한민국 도메인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의 소유”라며 “그리고 차선도색협회 회원 분들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 코퍼레이션이 일본 회사이고, 대표도 일본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5. 이전 사례는 어떤 것이 있었나
도메인 소유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사건은 엑슨모빌 도메인 사건입니다. 1998년 세계 최대 석유회사 엑슨(Exxon)이 4위였던 모빌(Mobil)을 흡수합병해 엑슨모빌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그런데 합병회사의 이름 도메인인 ‘exxonmobil.com’과 ‘exxon-mobil.com’이 한국의 한 28살 청년에게 선점당한 겁니다. 이 도메인이 반드시 필요했던 엑슨모빌은 이 청년에게 거액을 주고 도메인을 사들였습니다. 이후 도메인 등록 열풍이 일면서 관련 창업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2003년 12월 국회에서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습니다. 법률에 근거해 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도 설립됐지요. 법률 제정 취지는 “민간 자율관리에 따른 인터넷 이용자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차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이 법률 제12조 ‘부정한 목적의 도메인 이름 등의 등록 등의 금지’ 조항은 2009년 6월 개정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2014년 재미있는 판결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 한국인이 2008년 4월 www.twitter.co.kr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해 인터넷 여행업인 ‘트위터여행’의 웹사이트로 사용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가 개설된 건 2006년 여름이었습니다. 이 한국인은 자신이 인터넷 여행업에 이 도메인을 쓰고 있으므로 SNS 트위터와 직접 관련성도 없고 보호의 필요성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www.twitter.co.kr은 삭제된 상태입니다. (
▶관련 판례 바로가기) 완전히 같은 사건은 아니지만, 판결은 트위터 사건과 라인 사건에서 대체로 일관성을 띄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자, 여러분의 판단은 어떠신지요?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