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인씨.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청계피복노조 ‘청우회’ 회장 최종인씨 전태일재단에 1억 기탁…10명 첫 지원
전태일 분신 2주 뒤인 1970년 11월27일 결성된 청계피복 노조는 81년 1월 강제해산된다. 시다·미싱사 등 청계 노동자 2만명 가운데 많을 때는 1만2천명이 조합에 가입했다. 태일과, 그가 만든 삼동친목회 친구들이 그렇듯 조합원 대부분은 정규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청계피복 노조 출신들은 80년대말 청우회란 친목단체를 만들어 전태일 기념 사업을 후원해왔다.
청우회와 이 모임의 ‘종신 회장’ 최종인(사진)씨는 올해 전태일 정신을 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바로 장학사업이다. 최씨는 태일이 청계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70년 가을, 태일의 가장 든든한 동지였다. 분신 현장에서 황급히 점퍼를 벗어 친구의 몸에서 튄 불덩이를 끈 것도 그였다. 72년 결혼 전까지 쌍문동 이소선 어머니 집에서 살았던 그는 청계 노동자 출신으로 첫 위원장을 맡아 6년 가량 노조를 이끌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8월 최씨의 면담 요청을 받았다. 이사장 취임 5개월만이었다. 최씨는 1억 원을 내놓을테니 재단에서 장학사업을 해달라고 했다. “태일이가 죽으면서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했지요. 90년대 초부터 장학 사업을 하려 했는데 이제야 시작했네요. 전교조 위원장을 지냈고 교육을 잘 아는 이사장이 취임해 이제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요.”
재단은 1억 가운데 2천만원을 올해 장학사업 예산으로 책정하고 11일 대학생 6명, 고교생 1명, 이주노동자 1명 등 1차 지원 대상자 10명을 확정했다. 이수호 위원장은 “이번에 선발된 이주노동자는 다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체계적인 한국어 수업을 받도록 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창신동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최씨는 “올해 청우회 회원들 중심으로 1억 5천만원을 더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회원 200여 명 가운데 현재 10여 명이 장학금을 내놓기로 약속했지요. 5년 뒤 10억 원 가량을 모아 장학 재단을 설립하려 합니다.”
그는 노조위원장 시절 3년 가량 야학을 운영하기도 했다. “청계피복 조합원들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크고 이른바 ‘평화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어요. 각 분야에서 정의로운 생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죠.” 그는 “회원 가운데 환갑을 넘어서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 4~5명 정도 되고 현재도 70살을 넘겨 정식 중학 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이도 있다”고 소개했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 과정을 마친 뒤 목포에서 상점 점원으로 일하며 야간 학교를 다녔다. 18살에 상경해 평화시장에 들어가 재단보조를 거쳐 70년 재단사가 됐다. 아들 둘을 포함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79년 고심 끝에 노동 현장을 떠나 의류판매업에 뛰어들었다.
전태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물었다. “올바른 사람이지요. 태일은 점심 때 풀빵을 사서 어린 여공들에게 나눠주었죠. 그걸 보면서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
그의 꿈은 전태일회관 건립이다. 옆에 있던 이 이사장이 “서울시에서 올해 전태일회관 건립 타당성 검토를 위한 연구용역 예산을 책정했다”고 전하자, 최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