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유족, 17년전 현장검증 영상 공개
“테이프를 찢지말고 그냥 입에 대”
경찰이 할머니 제압장면 연출·지시
답답한듯 테이프로 직접 시범까지
“이 새끼야” 윽박지르며 때리기도
동료경찰 웃으며 “니가 감독이냐”
정작 삼례3인조는 현장구조 잘 몰라
경찰, 도망과정 기록과 다르자 당황
“저기 손댔어야해” 직접 또 재연
“테이프를 찢지말고 그냥 입에 대”
경찰이 할머니 제압장면 연출·지시
답답한듯 테이프로 직접 시범까지
“이 새끼야” 윽박지르며 때리기도
동료경찰 웃으며 “니가 감독이냐”
정작 삼례3인조는 현장구조 잘 몰라
경찰, 도망과정 기록과 다르자 당황
“저기 손댔어야해” 직접 또 재연
“야는 탈렌트여….”
17년 전인 1999년 2월18일, 경찰은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범인으로 구속된 ‘삼례3인조’의 현장 검증을 진행했다. 나라슈퍼에서 범인들이 입에 붙인 청테이프에 질식돼 숨진 유아무개(77) 할머니 관련 상황이 재연될 때였다.
(ㅈ경찰관) “테이프 들고 있어… 찢지 말고 그대로 입에다 대.(답답한 듯 경찰이 피의자 강아무개씨로부터 테이프를 빼앗아 직접 할머니 대역의 입 주위에 갖다댐) 할머니 입에다 감았잖아. 새끼야.”
(다른 경찰관) “○○, 니가 감독이냐(웃음)… 야는 탈렌트고, 자들은 신인이구만.”
17년 만에 범행을 자백한 ‘진범’의 등장으로 전기를 맞은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에서 식칼 등 압수품 7점 외에는 현장 증거가 없었다. 19~20살인 삼례3인조의 진술서와 범행을 재연한 현장검증 조서는 이들의 범행을 입증했던 결정적 증거였다.
그러나 삼례3인조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진술서는 경찰이 써준 것을 베낀 것이고, 경찰관들의 구타와 강압 수사로 허위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었다. 17년 전 이들의 진술상황을 녹화한 영상도 따로 없다.
경찰 역시 “강압 수사는 없었다”며 삼례3인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 유가족들은 53분22초 분량의 경찰의 현장검증 영상을 17년 동안 보관해왔다. 지난 7일 <한겨레>는 유가족과 함께 영상과 경찰의 현장검증 조서를 대조 분석했다.
현장검증에서는 범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을 자발적으로 재연하고 경찰이 이 과정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해 조서를 작성해 증거로 제출한다. 하지만 영상 속 장면은 현장검증 조서와는 전연 다른 모습이었다. ‘강압수사는 없었다’는 경찰 주장과 달리 경찰관들이 삼례3인조에게 범행 재연을 강요하고 연출하는가 하면 욕설과 폭행 속에 두려움에 떠는 삼례3인조의 모습이 또렷했다.
숨진 유 할머니의 사위로 평소 영상에 관심이 많던 박성우씨는 “장모님이 가시는 길을 고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현장검증 장면을 촬영했다. 당시 중간중간에 ‘어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정신이 없었다. 이제 다시 보니 진범이 아닌 것을 확신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나라슈퍼에 삼례3인조가 침입하는 것과 관련해 ‘임아무개가 대문 좌측 편에 있는 쓰레기장을 밟고 담을 넘어가 문을 열어줌’이라며 임씨 사진과 함께 이를 조서에 기록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재연한 사람은 삼례3인조가 아닌 형사였고 당시 대문은 열린 상태였다. 후일 진범으로 범행을 자백한 부산3인조는 “대문이 열려 있어 그대로 들어갔다”고 했다.
영상을 지켜본 박씨는 “대문은 고장나 항상 열려 있는데. 애들이 방 구조를 몰라서 어떻게 할 줄 모른다. 경찰이 지시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한다. 눈치만 본다. 애들이 한순간도 자발적으로 한 행동이 없다”고 했다.
경찰의 재연 주문에 우물쭈물하면 삼례3인조에게 곧바로 “인마”, “새끼 고개 들어”, “짜식아”와 같은 욕설과 함께 폭력이 이어졌다.
방 안에서 숨진 유 할머니의 입을 테이프로 묶는 장면에서 “여기서 사진 찍고 너 손발 묶어봐.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손발 묶고 니가 또 그러고 뒤졌지?”라고 경찰이 물었으나 피의자 임씨가 가만히 있자 “몸 잡어, 짜식아”라는 욕설과 함께 임씨 뒤통수를 손으로 내려쳤다.
맞은편에서 이를 본 피의자 강아무개씨의 얼굴은 순식간에 겁먹은 표정으로 바뀌었지만, 경찰 현장검증 조서에는 “강아무개 등이 청색 테이프를 붙인 뒤 장롱 옷장을 뒤졌다”는 등 이들이 범행을 자발적으로 술술 재연한 것으로 나와 있다.
경찰과 삼례3인조 모두 당황하는 모습도 비친다. 범행 뒤 삼례3인조가 달아나기 위해 슈퍼 셔터문 안쪽의 유리문을 건드리면 ‘삐리릭’ 경보음이 울리는 장면은 경찰과 검찰이 삼례3인조를 범인으로 지목한 주요 근거가 됐다. ‘도망가느라 경보음을 듣지 못했다’는 ‘부산3인조’와 달리 삼례3인조는 경보음을 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경찰은 이 부분에 이르러 강씨에게 “(유리문) 위에는 안 건드렸어?”라고 묻자 현장을 와 본 적이 없는 강씨가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말하며 어리둥절해했다. 원하는 반응이 안 나오자 당황한 경찰관은 경보음이 나려면 “문 저기를 손댔어야 해”라고 말했다. 이윽고 다른 경찰관이 여기저기서 “아녀 문 열리면 울려”, “아니 위에 만지작거렸대”, “대타로 하면 돼” 등 잇따라 말했다. 결국 이번에도 삼례3인조가 아닌 경찰관이 직접 손을 대고 경보음이 울리는 장면을 재연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재심 결정이 난 무기수 김신혜 사건 및 전북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종합판 성격을 지닌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14일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범으로 10년을 복역한 최아무개(31)씨의 재심 청구 사건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는 다른 피의자의 진술 등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점 등을 들어 재심 결정을 내렸다.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15년째 무기수로 복역중인 김신혜(39)씨의 재심 청구 사건에서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지난해 11월18일 경찰의 현장검증 조서 허위 작성 등의 이유를 들어 재심을 결정했다.
삼례3인조의 재심 청구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최근 부산3인조 가운데 이아무개씨가 스스로 진범이라고 밝힌데다, 현장검증 영상을 보면 피의자 자백뿐인 이 사건에서 경찰은 강압적으로 범죄사실을 짜맞추는 데 급급하다”고 말했다.
수원 전주/홍용덕 박임근 기자 ydhong@hani.co.kr
[관련기사]
▶뒤바뀐 살인자…“제가 범인입니다” 17년만의 참회
▶왜 ‘삼례 3인조’가 범인이 됐나
▶범행 고백한 이씨 “경찰과 검찰이 거짓 만든 장본인들”
▶뒤바뀐 살인자…“제가 범인입니다” 17년만의 참회
▶왜 ‘삼례 3인조’가 범인이 됐나
▶범행 고백한 이씨 “경찰과 검찰이 거짓 만든 장본인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