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격월간 잉여’ 발행인 최서윤씨
‘격월간 잉여’ 발행인 최서윤씨. 사진 김태형 기자
청년 백조·백수들 목소리 끌어내
출판비 마련하려 ‘게임 설계’ 알바
‘흙수저 계급론’ 소재 ‘수저게임’ 고안
‘잉여 19호’ 총선 특별호·다큐 영상도
“청년 최대 관심은 주거·기본소득 보장” 최씨는 지금 알바 3개를 하고 있다. 이 중엔 홍익대 앞 ‘방탈출 카페’에서 게임 설계를 하는 일도 있다. 졸업 뒤 5년 동안 10개 정도 알바를 한 것 같다고 했다. 이 수입으로 잡지를 만들고 방 임대료도 낸다. 그가 만든 ‘수저게임’은 첫 선택으로 흙수저와 금수저가 갈린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격차는 커진다. 가장 큰 특색은 참가자들이 민주적 토론과 절차를 통해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참가자의 아이디어가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 법이 된다. 일러스트만 지인에게 부탁했고 다른 제작 공정은 직접 했다. 제작한 200세트 가운데 150세트가 팔렸다. “학교 선생님이나 부동산 관련 시민단체, 진보정당 당원들이 주로 구매를 했죠. 밤샘 점거농성을 하면서 수저게임을 했다고도 하더군요.” 그가 게임 구상에 들어간 지난해 가을, 인터넷에선 흙수저 계급론이 퍼져나갔다. 부모 재산과 수입에 따라 ‘나의 신분’이 갈렸다. “지난 여름, 20대 초반인 친구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어요. 사회를 보는 관점은 저와 비슷했는데, 한번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해요. 정치혐오가 있었던 거죠. 자연스럽게 투표를 유도할 방법이 뭘까 고민했죠.” 특히 법안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른바 ‘486 투표충’처럼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를 멍청하다고 윽박지르기만 할 게 아니라, 재밌게 투표의 중요성을 얘기해주고 싶었다. “한국사회에서 추상적 가치로 전락한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주고 싶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증해줄 학습이나 토론 기회가 어디에도 없어요.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나이를 앞세우거나, 윽박지르기만 합니다.” 잠재력 있는 담론이라고 생각한 수저계급론이 “낄낄거리거나 자포자기하는 방식으로 소비돼선 안된다”고도 생각했다. “<더 지니어스>란 케이블 프로그램을 재밌게 봤어요. 유튜브에서 본 <프리빌리지 워크>(특권의 걸음)란 예능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죠. 특권 하나가 호명될 때마다 이를 지닌 사람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는 식의 게임이죠. 마지막엔 동성애자인 흑인 여성이 제일 뒤에 처집니다. 특권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지요. 하지만 여기서 사람들은 움직이기만 하고 직접 개입하지는 않아요.” 최씨는 요즘 수저게임 실전영상을 다큐로 만들고 있다. 모두 10차례의 실전 장면을 편집해 담았는데, 총선 뒤 공개할 생각이다. 게임에서 드러난 흙수저들의 이야기가 현실을 바꾸는 데 쓰였으면 해서다. 수저 게임 토론에서 드러난 청년들의 생각은? “주거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큽니다. 국가소유 토지에 무상 임대주택을 지어주자는 제안이 단골로 나오지요. 기본소득 보장 논의도 있어요. 인간들과 경쟁하는 기계의 등장으로 생긴 이익은 여럿이 함께 나눠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잡지 발행주기는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한 회 100만원 정도 드는 제작비 마련이 쉽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처음엔 재밌고 새로운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 뒤엔 갈수록 현실을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앞으론 단행본처럼 더 농축된 이야기를 실을까 해요. 의미있는 시기에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자발적 투고보다는 인터뷰나 청탁 비중도 늘리고요.” 그래서 ‘잉여’ 19호는 총선 특별호로 만든다. 지난해 말 언론에 ‘망국 선언문’을 기고한 손아람 작가를 만나 다큐영상도 만들었다. 지난 잡지들을 보니 강준만, 서민 교수와 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등 이른바 명망가들이 그의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다. “서 교수는 인터뷰 뒤에 직접 글까지 보내주셨죠. 잡지의 취지에 뜻을 같이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인터뷰에 응합니다. 청탁 요청도 90%는 수락합니다.”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인물은? “비현실적 상상이지만 마이클 무어나 버니 샌더스를 만나고 싶어요. 무어의 다큐 <볼링 포 콜럼바인>을 보면 재미와 뼈가 함께 있어요. 재밌고 빠른 편집이 현실을 바꾸지요. 아이디어나 신념을 파는 마케터로서 그에게 관심이 많아요.” 지금도 잉여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만약 영향력이 있다면 영향력 있는 잉여이겠죠. 모두가 불안한 시대 아닌가요. 조직 내 지위로 쓸모를 증명하고 안정감과 소속감을 갖는 것은 주류적 방식입니다.” 그는 “잉여라는 말이 구획을 짓는 용도가 아니라 시대의 불안에 대한 감성을 나누고 딴 사람을 배려하는 의미로 쓰였으면 한다”고 했다. ‘알바 생활인’인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불안감) 있죠. 최악의 상상은 여성 노숙인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집중을 안합니다. 현재의 일에 집중하지요. 제 노후를 생각해서라도 사회 안전망이 튼튼해져야겠지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