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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멧돼지의 ‘잔혹한 죽음’은 정당한가?

등록 2005-10-20 23:01수정 2005-10-21 13:57

지난 19일 오후 천호대교 근처 한강에서 119 구조대에 의해 잡힌 야생멧돼지가 밧줄에 묶여 이동되고 있다. 멧돼지는 포획과정에서 질식사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지난 19일 오후 천호대교 근처 한강에서 119 구조대에 의해 잡힌 야생멧돼지가 밧줄에 묶여 이동되고 있다. 멧돼지는 포획과정에서 질식사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헤엄 잘치던 멧돼지가 왜 한강에서 익사했나
19일 오후 서울 도심에 멧돼지가 또 나타났다. 멧돼지는 경찰의 추격 끝에 한강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물속에 뛰어든 멧돼지는 2시간에 걸친 경찰과 소방관들의 진압작전 끝에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지난 9월28일에 이어 두번째 도심으로 뛰어든 멧돼지에 시민들은 놀랐다.

또 하나 기자가 놀라고, 궁금해한 것은 20일 뒤에 또다시 나타난 멧돼지가 이번에는 ‘익사’했다는 것이다. 왜? 이번 멧돼지는 헤엄을 못쳤나?

지난 9월말에 나타난 멧돼지는 반나절 동안 한강을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두번이나 횡단하면서, 뛰어난 수영실력을 과시했는데 왜 이번 멧돼지는 ‘익사’했나? 어미로부터 수영을 배우지 못했나? 멧돼지는 사람처럼 따로 헤엄치는 것을 배우지 않는 ‘야생동물’이다. 왜 그 멧돼지는 한강물에 빠져 죽었나?

궁금증은 곧 풀렸다. 2시간에 걸쳐 합동 진압작전을 펼친 경찰과 소방관들은 헤엄치고 있는 멧돼지를 보트로 들이받았고, 힘이 빠진 멧돼지의 뒷다리를 들어 숨통을 끊어놓았다.

경찰과 소방서쪽은 지난 9월말 도심에 출연한 멧돼지들이 시민들을 다치게 한 터라 필사적인 진압작전을 벌였고, 익사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특히 멧돼지에 두 번이나 놀란 광장동 주민들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숨이 끊어진 채 물 밖으로 질질 끌려오는 멧돼지의 모습이 방송되자 논란이 일었다. 인터넷에선 “잔인하다. 멧돼지 잔혹사”, “동물학대”,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산으로 돌려보내지…” 등 멧돼지 동정론이 쏟아졌다. 심지어 동물의 생명권을 짓밟았다며 ‘동물권 침해’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주장을 생뚱맞게 여길 사람도 많겠지만, 멧돼지와 사람의 공존과 동거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한가?


광장동 올들어 2번째 멧돼지 소동
처음 흉기 찔리고, 두 번째는 익사, 잇따른 ‘잔혹사’

19일 오후 12시10분께 서울 광진구 광장동 한 아파트 단지에 멧돼지가 나타났다. 몸무게 150㎏에 몸길이가 150㎝를 넘는 멧돼지는 아파트 화단 등을 훼손하고 달아났다. 주민들은 곧바로 신고했고, 30여 명의 경찰과 소방관이 30여 분 넘게 멧돼지 추격전을 벌였다. 놀란 멧돼지는 광진도서관 부근에서 한강으로 뛰어들었고 천호대교 남쪽 방향으로 헤엄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경찰은 즉각 경찰보트를 출동시켜 멧돼지 주위를 포위했다. 한국형 멧돼지 진압작전은 단순했다. 멧돼지를 전속력으로 3~4차례 들이받았다. 멧돼지가 충격에 축 늘어져 물 위에 떠 있자 이번에는 소방보트가 접근해 뒷다리를 묶는다. 소방관이 멧돼지의 뒷다리를 들자 머리가 물 속에 처박힌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멧돼지는 결국 숨이 끊어진 채 물가로 질질 끌려 나온다. 이날 2시간여 동안 진행된 멧돼지 진압작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광장동 멧돼지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월28일 밤 11시께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 부근에 멧돼지가 나타나 자정께 강동구 암사역사거리 부근 술집 골목에서 행인 백아무개(29)씨를 들이받아 허벅지에 상처를 내고 달아났다. 30분쯤 후 천호동 천호공원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멧돼지는 귀가 중이던 정아무개(42)씨를 넘어뜨려 찰과상을 입힌 뒤 자취를 감췄다. 이 멧돼지는 다음날 광장동 극동아파트 부근에 나타났고, 경찰의 추격을 피해 한강에 뛰어들었다. 멧돼지는 뛰어난 수영실력을 뽐내면서 강을 건너 남쪽으로 도망쳤고 올림픽대교와 천호대교 남단 사이의 수풀 속에서 발견됐다. 결국 멧돼지는 사냥개에 물려 힘이 빠진 사이 경찰이 의뢰한 야생동물 포획 전문가의 흉기에 찔려 죽었다.

경찰 “귀한 동물도 아닌데,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멧돼지를 살려줄 필요 없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과 소방관의 입장에서 현장에서 멧돼지를 죽이는 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특히 멧돼지가 행인을 들이받아 중상을 입혔기 때문에, 경찰이 적극적으로 멧돼지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시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19일 멧돼지 포획작전에 참여한 소방대원은 “어느 정도 힘이 빠지게 한 뒤 뒷다리를 로프로 채웠다”며 “뒷다리를 드니까 자연스럽게 머리가 앞으로 숙여지면서 숨을 못 쉬게 된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한다. 경찰관도 “지난번 암사동에서 다쳤을 때 시민들이 뭐라고 했느냐”며 “귀한 동물도 아닌데 살려줄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사람을 들이받으니 당연하지” VS “꼭 그렇게까지… 잔인하다”

도심 출현 멧돼지 사살 심야 서울 도심에 출현해 시민을 부상케하고 달아난 멧돼지가 29일 오전 올림픽대교와 천호대교 남단 사이 부근에서 경찰 등 포획단에 의해 사살됐다. 멧돼지를 잡은 수렵인(오른쪽)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도심 출현 멧돼지 사살 심야 서울 도심에 출현해 시민을 부상케하고 달아난 멧돼지가 29일 오전 올림픽대교와 천호대교 남단 사이 부근에서 경찰 등 포획단에 의해 사살됐다. 멧돼지를 잡은 수렵인(오른쪽)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러나 멧돼지를 보트로 들이받고 숨통을 끊어 익사시킨 방법을 놓고는 논란이 일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관련 기사에는 2000여 건의 댓글이 붙었다. 누리꾼 반응은 “사람을 공격한 짐승이니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과 “잔인하다. 동물학대다” 등으로 팽팽하게 엇갈렸다.

동물보호단체들의 시각은 대체로 “동물학대”라는 쪽에 모인다. 동물자유연대 강연정 간사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동물학대’라고 느꼈을 것이고 안타까워 했을 것”이라며 “물 속에서 고통을 주면서 천천히 숨이 끊어지도록 몰아가는 비인도적 방법이었다는 점에서 동물학대가 맞다”고 말했다. 강 간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물이나 마취총으로 포획해 산으로 돌려보내거나 어쩔 수 없이 죽이려했다면 총을 쏴 고통을 최소화했어야 한다”며 “동물들에게도 ‘최대한 안락하게 죽을 권리'는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인간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산에서 내려오면 죽일 수밖에 없다. 개체수도 많아 희귀동물 아니다”
환경부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 늘어 유해 야생동물 지정, 포획 허가”

또, 다른 동물보호단체인 야생동물보호협회 최성규(66) 사무국장은 “시내에 들어온 것이니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며 “산에서 내려오면 죽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멧돼지의 개체수가 너무 많아져 더 이상 희귀동물로 분류할 수 없고, 인간을 해쳤으니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 국장도 “그렇게 애먹이면서 죽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며 “동물보호법에도 동물학대는 할 수 없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조사를 보면 한국에 있는 멧돼지는 전국에 약 26만 마리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2004년 조사구당 개체수 밀도도 2002년보다 7.9%가 증가했다고 조사돼 멧돼지 개체수는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다 보니까 농작물 피해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멧돼지가 번식력이 워낙 왕성한 데다 먹이사슬의 파괴로 호랑이, 표범 등 멧돼지 천적이 사라진 것 등이 원인”이라며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이 해마다 늘어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포획을 허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이 보면 도심에 출연한 멧돼지를 놓고 동정론 운운하는 것이 ‘배 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인간이라도 동물의 생명권을 잔인하게 침해할 순 없다”
“동물 배려 못하는 사회, 사람도 배려할 수 없어”

그러나 멧돼지의 ‘잔혹한 죽음’을 놓고 동물학대를 넘어 동물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물권이란 동물도 똑같이 고통받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를 뜻한다. 동물 권리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영국 등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요한 사회운동의 한 분야이고, 사회적 논란거리다. 유럽사회에서 동물권운동은 60년대 동물사냥 반대운동으로 시작해 70년대 동물실험 반대운동으로 확대되었다.

‘한국동물권리모임’ 이선주(24·경북대 수의학과 1)씨는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멧돼지도 하나의 생명이고, 모든 생명은 그것 자체로 권리가 있으니 명백한 동물권 침해”라고 말했다.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 박병상 대표(동물생태학 박사)도 “사람들은 왜 멧돼지가 도시에 출연해 죽어가는지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인간이 멧돼지가 살 수 있는 공간을 침범하고, 이동통로를 막아버리니 민가로 나오고 공격하게 된 것”이라고 인간의 이기심을 꾸짖었다.

박병상 풀꽃세상 대표 “사람도 동물…동물 배려 못하는 사회는 사람에게도 위험”

박 대표는 “유럽이나 호주 등에선 야생동물이 도심에 출연하면 헬기를 띄우고, 마취제와 그물 등을 이용해 포획한 다음 동물보호소로 이동시켜 건강을 회복시킨 뒤 무리가 있던 장소에 풀어준다”며 “우리 나라는 이런 매뉴얼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인간이 우선”이라는 편의주의적인 사고와 동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사람도 동물”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준다. “사람도 동물이고 동물도 사람과 같은 생명을 지녔다. 동물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과 사회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동물을 배려하는 것은 생명이 본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멧돼지와 사람 목숨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시민의 안전을 위해 멧돼지를 잔혹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사람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동물의 목숨을 함부로 다루거나 잔혹하게 빼앗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꼭 동물에게만 폭력적일까?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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