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정치적 중립은 매우 중요하다. 더 이상 변협이 한 정당을 편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난해 1월13일 하창우 변협 회장이 선거에 당선된 뒤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최근 변협이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에 대해 ‘전부 찬성’ 의견서를 내 파문이 일면서, 변협 수장인 하 회장의 1년여 전 발언이 떠올랐다. 변호사 단체가 법률안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번처럼 특정 정당의 요청으로,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의견을 내는 것은 하 회장이 말한 ‘정치적 중립’에 한참 어긋난다.
게다가 변협은 중립성 논란이 일자 거짓 해명까지 했다. 변협은 “이번 의견서는 24일 국회의장에게 전달했고, 25일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보내달라고 해 별도로 줬다”고 했다. 특정 정당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김 정책위의장이 <한겨레>에 “내가 직접 하 회장에게 전화를 해 자문을 구했다”는 얘기와 배치된다. 또 변협이 보낸 공문을 보면, 김 정책위의장과 국회의장에게 의견서를 보낸 날짜가 모두 24일이고, 공문에 적힌 문서번호(법제 제660호) 역시 같다.
변협이 찬성한 테러방지법은 하 회장이 여러 인터뷰에서 강조한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 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변협은 2003년 국회에 올라온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테러 개념의 모호성으로 (국정원의) 권한 남용 및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10여년 만에 입장이 바뀌었는데, 변협의 해명대로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다”고 봤다면, 인권과 관련한 중대 사안인 만큼 회칙대로 이사회 의결을 거쳐 정식으로 발표했어야 했다.
하 회장은 다른 사람에게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왔다. 지난해 검사평가제를 도입했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시절에는 법관평가제를 도입했다.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차한성 전 대법관의 개업신고를 반려했고, 박상옥 대법관 인사청문회 때는 “대법관을 그만둔 뒤 개업을 안 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나쁜 관행을 타파한 긍정적인 사례들이지만, 정작 자신과 내부에는 엄격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 회장은 평소 존경하는 법조인으로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을 꼽았다. 1954년 이승만 정부가 독재를 연장하기 위해 사사오입 개헌을 단행하려고 했을 때 가인은 이렇게 말했다. “절차를 밟아 개정된 법률이라도, 그 내용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면 국민은 입법부의 반성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는 ‘인권옹호’를 첫 번째 설립목적으로 하는 변협이 되새겨야 할 말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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