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포항 미군함포’ 사건
“소멸시효 다시 판단하라” 파기환송
“소멸시효 다시 판단하라” 파기환송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요청으로 이뤄진 미군 포격 희생자에게 소멸시효가 지나 정부가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포항 미군함포 사건’ 피해자의 유족인 방아무개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부가 4888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방씨의 아버지와 동생은 1950년 9월1일 국군 함포 사격을 지원하던 미 태평양함대 소속 구축함 헤이븐호가 포항 송골해변에 모여있던 1000여명의 피난민을 상대로 15발의 포격을 하는 과정에서 숨졌다. 포격이 있었던 날에는 인민군 5사단과 국군 3사단 23연대가 천마산 고지를 두고 16차례나 서로 뺏는 공방을 벌이는 중이었다. 3사단 지원 임무를 맡았던 헤이븐호는 이날 국군한테서 송골해변 포격 요청을 받았다. 미군은 송골해변에는 피난민들이 모여있다며 표적에 대한 재확인을 요청했지만, 국군은 피난민 중 적군이 섞여 있다는 정보가 있다며 함포 발사를 재차 요청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2010년 6월 방씨의 아버지 등을 이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하는 결정을 내렸고, 방씨는 2013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손해배상권의 소멸시효가 쟁점이 됐다. 방씨의 아버지 등은 1950년 숨져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된 상태였다. 조선총독부 법률 등에는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된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소심은 “(국가가 과거사위를 만들면서) 수십년 전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회복을 위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과거사위의 결정 시점(2010년 6월)부터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보고 방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과거사위가 해당 사건이 한국 정부의 가해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소멸시효를 2010년 6월부터 볼 수 없다며 시효와 관련한 판단을 다시 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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