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게리 퀸란 외교부 북아시아담당차관보, 리비 라이언스 양성평등청장.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뉴질랜드(1894년)에 이어 1902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국가다. 110여년이 흐른 지금, 호주는 다시 양성평등과 관련해 ‘대담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호주 정부는 해외개발원조액의 80%를 양성평등 향상에 쓰도록 한다는 내용의 외교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국내적으론 로지 배티라는 여성이 2014년 전남편의 폭력으로 11살 아들을 잃은 뒤 가정폭력추방 운동가로 변신하며 가정폭력 문제를 주요 이슈로 끌어올렸고, 4년 전 설치된 양성평등청은 남녀 임금격차 줄이기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다. 호주 정부 초청으로 지난 6~12일 방문한 캔버라와 시드니에서 게리 퀸란 외교통상부 북아시아담당 차관보와 리비 라이언스 양성평등청장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호주 양성평등 정책 주역
퀸란 차관보· 라이언스 평등 청장 외교부 지난해 유연근무 채택
해외원조에 양성평등 향상 조건
남녀 임금격차 줄이기도 이슈
시이오 90여명, 차별철폐 활동도 “만약 안 된다면, 왜 안 되는가?” 북아시아담당 차관보이자 외교부 내 양성평등 정책 실천을 북돋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인 ‘변화를 위한 남성 챔피언’(Male champion of Change)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게리 퀸란 차관보는 외교부가 지난해부터 근무유연성 제도를 실시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외교부에 근무중인 모두 6만1000명 직원 가운데 여성이 57%다. 그런데 최고 시니어 단계의 여성 비율은 25%, 다음 시니어 단계는 36%, 대사급은 27%에 그쳤다”며 “왜 여성이 일하기 어려운가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일하는 시간이 빡빡하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달했다. 그건 남성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보안을 요하는 업무가 많은 외교부인지라, 정책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도록 업무 전용 태블릿 피시 등을 나눠줬다. 호주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실제 외교부에서 근무유연성 제도가 확산되면서 ‘○요일은 근무지에 없습니다’ 같은 문구가 들어간 업무 메일이 늘었다고 전했다. 호주 외교부는 2020년까지 여성의 비율을 최고 시니어에서 40%, 주니어시니어에서 43%, 대사급에서 35% 정도로 늘리는 ‘목표’를 세웠다. 왜 양성평등인가라는 질문에 퀸란 차관보는 “양성평등이 잘될수록 성과가 좋은 건 모든 지표로 확인돼왔다. 갈등조정이나 평화구축 과정에서도 여성의 개입이 클수록 평화로웠던 것도 모든 데이터가 설명한다”고 답했다. 호주는 이제 이런 정책을 외교노선에도 이식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해외개발원조액의 8할을 가정폭력 추방이나 여성의 지위 향상에 쓰이도록 한다고 줄리 비숍 외무장관이 선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발표문에서 호주는 ‘정책결정, 리더십과 평화구축에 여성들의 목소리 강화’ ‘여성의 경제적 상황 증진’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폭력 근절’을 주요 포인트로 삼았다. 호주 국내적으론 가정폭력 근절과 함께 남녀간의 임금격차 줄이기가 주요 이슈다. 호주의 남녀 임금격차는 24%로 한국(36.7%)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지만, 만족하지 않는다. 직장 내 양성평등법의 집행기구로 2012년 총리실 산하기관으로 출범한 양성평등청의 리비 라이언스 청장은 “100명 이상 고용 기업에선 1년에 한번씩 양성평등 관련 데이터를 보고하고 공시하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정부 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소개했다. 이 청이 운영중인 사이트 ‘당신의 손에’(inyourhands.org.au)를 보면 특정 회사가 얼마나 평등한 임금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즉각 검색해볼 수 있다. 요즘엔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에 상대적으로 여성이 많은 구조 등의 문제점뿐 아니라, 같은 매니저급도 왜 퇴직연금 등이 달라지는지 같은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사실 고위급의 임금격차는 정해진 연봉보다 보너스 등에서 많이 온다. 남성 시이오들이 남성 매니저들의 성과를 더 쳐주고 보너스를 더 준다는 거다.” 라이언스 청장의 설명이다. 양성평등청은 이와 관련해 시이오 중 93명을 ‘임금차별철폐 홍보대사’로 임명해 이들이 다른 시이오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자극을 주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여정이자 인권과 차별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라이언스 청장은 강조했다. 일찌감치 여성참정권을 도입했던 호주에서도 왜 남녀 격차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광산업 등 남성 중심적 산업구조의 비중이 컸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일 게다. 보다 흥미로운 의견은 남성인 퀸란 차관보가 들려줬던 말이다. “나도 참 이상하고, 패러독스라고 생각한다. 다만 유럽이나 미국에선 여성참정권을 얻기 위한 격렬한 싸움이 있었던 데 비해 신생국인 호주는 그걸 그냥 좋은 제도로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주어진 제도만으로 평등은 쟁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캔버라 시드니/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퀸란 차관보· 라이언스 평등 청장 외교부 지난해 유연근무 채택
해외원조에 양성평등 향상 조건
남녀 임금격차 줄이기도 이슈
시이오 90여명, 차별철폐 활동도 “만약 안 된다면, 왜 안 되는가?” 북아시아담당 차관보이자 외교부 내 양성평등 정책 실천을 북돋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인 ‘변화를 위한 남성 챔피언’(Male champion of Change)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게리 퀸란 차관보는 외교부가 지난해부터 근무유연성 제도를 실시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외교부에 근무중인 모두 6만1000명 직원 가운데 여성이 57%다. 그런데 최고 시니어 단계의 여성 비율은 25%, 다음 시니어 단계는 36%, 대사급은 27%에 그쳤다”며 “왜 여성이 일하기 어려운가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일하는 시간이 빡빡하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달했다. 그건 남성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보안을 요하는 업무가 많은 외교부인지라, 정책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도록 업무 전용 태블릿 피시 등을 나눠줬다. 호주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실제 외교부에서 근무유연성 제도가 확산되면서 ‘○요일은 근무지에 없습니다’ 같은 문구가 들어간 업무 메일이 늘었다고 전했다. 호주 외교부는 2020년까지 여성의 비율을 최고 시니어에서 40%, 주니어시니어에서 43%, 대사급에서 35% 정도로 늘리는 ‘목표’를 세웠다. 왜 양성평등인가라는 질문에 퀸란 차관보는 “양성평등이 잘될수록 성과가 좋은 건 모든 지표로 확인돼왔다. 갈등조정이나 평화구축 과정에서도 여성의 개입이 클수록 평화로웠던 것도 모든 데이터가 설명한다”고 답했다. 호주는 이제 이런 정책을 외교노선에도 이식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해외개발원조액의 8할을 가정폭력 추방이나 여성의 지위 향상에 쓰이도록 한다고 줄리 비숍 외무장관이 선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발표문에서 호주는 ‘정책결정, 리더십과 평화구축에 여성들의 목소리 강화’ ‘여성의 경제적 상황 증진’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폭력 근절’을 주요 포인트로 삼았다. 호주 국내적으론 가정폭력 근절과 함께 남녀간의 임금격차 줄이기가 주요 이슈다. 호주의 남녀 임금격차는 24%로 한국(36.7%)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지만, 만족하지 않는다. 직장 내 양성평등법의 집행기구로 2012년 총리실 산하기관으로 출범한 양성평등청의 리비 라이언스 청장은 “100명 이상 고용 기업에선 1년에 한번씩 양성평등 관련 데이터를 보고하고 공시하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정부 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소개했다. 이 청이 운영중인 사이트 ‘당신의 손에’(inyourhands.org.au)를 보면 특정 회사가 얼마나 평등한 임금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즉각 검색해볼 수 있다. 요즘엔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에 상대적으로 여성이 많은 구조 등의 문제점뿐 아니라, 같은 매니저급도 왜 퇴직연금 등이 달라지는지 같은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사실 고위급의 임금격차는 정해진 연봉보다 보너스 등에서 많이 온다. 남성 시이오들이 남성 매니저들의 성과를 더 쳐주고 보너스를 더 준다는 거다.” 라이언스 청장의 설명이다. 양성평등청은 이와 관련해 시이오 중 93명을 ‘임금차별철폐 홍보대사’로 임명해 이들이 다른 시이오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자극을 주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여정이자 인권과 차별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라이언스 청장은 강조했다. 일찌감치 여성참정권을 도입했던 호주에서도 왜 남녀 격차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광산업 등 남성 중심적 산업구조의 비중이 컸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일 게다. 보다 흥미로운 의견은 남성인 퀸란 차관보가 들려줬던 말이다. “나도 참 이상하고, 패러독스라고 생각한다. 다만 유럽이나 미국에선 여성참정권을 얻기 위한 격렬한 싸움이 있었던 데 비해 신생국인 호주는 그걸 그냥 좋은 제도로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주어진 제도만으로 평등은 쟁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캔버라 시드니/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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