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금융사의 부정행위로 손실이 났다’며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투자자 쪽 손을 들어줬다.
김아무개(61)씨 등은 2007년 8월 한국투자증권이 발행한 원금비보장형 주가연계증권에 투자했다. 중간평가일과 만기일에 삼성전자와 케이비(KB)금융의 보통주 가격이 기준점 대비 75% 이상이면 연 14.3%의 고수익을 보장받는 상품이다. 만기 평가일인 2009년 8월26일 삼성전자 주가는 기준 가격을 훨씬 웃돌았고, 케이비금융은 장 마감 직전 기준 가격인 5만4740원을 약간 웃도는 5만4800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10분 동안 주가가 100원 떨어지면서 김씨 등은 원금의 74.9%만 돌려받았다. 14.3%의 수익을 기대하다가 되레 25.1%의 손실을 본 것이다.
투자자들은 10분 새 도이체방크가 케이비금융 주식 12만8000주를 매도해 주가가 떨어졌다며 이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한국투자증권은 수익금 지급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도이체방크와 김씨 등이 가입한 주가연계증권과 동일한 구조의 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주가가 기준점 이상일 경우 수익금을 도이체방크가 지급해야 하는 것이었다.
1심은 도이체방크가 손실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나 2심은 도이체방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2심은 “도이체방크가 5일 전부터 주식 매도를 시작했는데 시세 조종을 목표로 했다면 분산 매도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자산운용 건전성을 위해 불가피한 헤지였고 종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만으로 부정한 수단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4일 “2009년 8월 기초자산 가격이 손익분기점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었으므로 종가를 낮출 동기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수익 상환을 피하기 위해 이뤄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내지 부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최근 대법원은 비슷한 내용의 주가연계증권 소송에서 엇갈린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지난달 말 투자자들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장 마감 직전 기준 가격 이하로 주식을 집중 매도하는 등 주가를 떨어뜨릴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배상책임을 인정했지만, 비엔피파리바은행은 시세조종 정황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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