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서울해바라기센터(서울대병원)의 진술녹화실. 이 곳에서 해바라기센터를 찾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담당 여경에게 진술한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의료·수사·상담 통합지원 ‘해바라기센터’
12년 악몽 치료받곤 “살아있다 느껴”
“피해 72시간 이내 센터 방문 중요”
12년 악몽 치료받곤 “살아있다 느껴”
“피해 72시간 이내 센터 방문 중요”
대학생 ㄱ씨(23)가 2011년 봄, 서울해바라기센터(서울대병원)를 찾아온 것은 환청·환각 증상에 시달리면서였다. ㄱ씨는 8살 때부터 12년 동안이나 아버지로부터 몹쓸짓을 당했다. 어릴 땐 본인이 성폭행을 당한 것이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엄마·아빠와 같이 살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에 겁을 먹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서울해바라기센터(사진)에서 만난 ㄱ씨는 “중3 때 우연히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아이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때서야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밤마다 침대에 누우면 악몽에 시달렸고 환청·환각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결국 ㄱ씨는 담임교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청소년 상담센터를 거쳐 서울대병원에 있는 서울해바라기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에게도 사실을 알리게 됐고 ㄱ씨의 친부는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중이다. 센터에서 병원치료에서부터 법률·상담지원 등을 받은 ㄱ씨는 “상담치료를 1주일에 한번씩 받으면서 ‘내가 살아있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ㄱ씨의 어머니 ㄴ씨도 센터에서 상담치료를 받았다. ㄴ씨는 “딸이 믿었던 가족에게 배신을 당한 경우여서 (엄마를 포함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조건 딸을 믿어주라는 걸 이 곳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 36곳에 있는 해바라기센터를 찾은 성폭력 피해자는 2만218명에 이른다.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의료기관 치료부터 수사, 상담 및 심리치료 지원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곳이다. 치료비 등 모든 지원은 국비로 이루어진다. 병원을 근거지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피해자 보호시설과 구분된다.
성폭력 피해는 ㄱ씨의 경우처럼, 아동·청소년에게서 적지 않게 발생하며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많다. 지난해 성폭력 피해자 2만218명 중 1만9199명(95%)이 여성이며, 18살 이하 아동·청소년이 8048명(39.8%)에 달한다. 2014년 기준 자료를 보면, 가해자 10명 중 6.5명꼴로 아는 사람(가족 및 친인척, 동네사람 등)이었고 성폭력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집(37.5%, 피해자 및 가해자의 집)이었다. 박혜영 서울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성폭력은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많고 단둘만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 유죄 입증이 쉽지가 않다. 올해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특화하도록 관계기관과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가해자의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이른바 ‘골든타임’인 72시간 이내에 피해자가 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센터로 오면 의료진이 피해 증거를 10단계로 구분해 채취하고 산부인과·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등으로 다친 몸을 치료한다. 또 해바라기센터와 연계된 경찰·법률구조공단 등이 가해자에 대한 고소와 재판을 돕게 되며, 심리치료를 해주는 임상심리사, 집과 센터 간 이동을 도와주는 동행담당자 등이 상주하고 있다.
우경래 서울해바라기센터 의료지원팀장은 “지난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낸 34건 중 26건에서 가해자의 증거가 나왔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지 72시간 이내에 옷을 갈아입지 않고 대소변도 참은 상태에서 바로 와야 증거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해바라기센터 이용자 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심리지원·상담서비스 등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데 견줘 ‘센터 접근성’에서는 3점대(5점 척도)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전국 36곳에 센터가 설치돼 있지만, 25명의 전문인력이 상주하고 있는 서울해바라기센터처럼 통합형으로 모든 지원을 한꺼번에 하는 곳은 12곳에 그친다. 24시간 교대근무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문인력 확보를 위한 예산 및 인력 확충도 과제다. 부산 동아대병원처럼 운영을 하다가 포기하는 곳도 나온다. 박 부소장은 “연간 운영비가 센터 한곳에 6억~7억원 정도 들어간다. 현재 배정된 예산 수준으로는 임상심리 전문가 등 전문인력 확충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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