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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봄날 흩날리는 벚꽃처럼 ‘나는 자유다’ 외치소서

등록 2016-04-07 19:00수정 2022-03-17 12:21

[가신이의 발자취] 고 김창국 인권위원장님 영전에

캠퍼스에도 만발한 하얀 벚꽃이 한 자락 봄바람에 눈송이처럼 떨어지던 순간, 그분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날카로운 눈매에 깡마른 백발 노신사, 26년 전 새내기 변호사로 그분을 처음 만났습니다. 오십 초로의 중년이었지만 강력한 포스가 넘쳤고, 자신감이 충만해 보였습니다.

고인은 젊은 시절 수재로 통했습니다. 21살 때 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 자리에 안주했다면,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처럼 추모할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분은 비판적 지식인으로, 저항하는 법률가로, 평생 자유를 그리며 살았습니다.

고인은 자타 공인 인권변호사입니다. 전두환 정권 때 검찰을 떠나자마자 정의감 넘치는 젊은 후배들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조직해 인권변호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근안 등 고문 경관들에 대한 공소유지 변호사를 비롯해 강기훈 유서대필조작 사건, 보안사 윤석양 이병 양심고백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의 변호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변협과 서울변호사회 회장도 맡아 인권변호를 개인에서 제도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서울변호사회장 시절 당직변호사제라는 획기적인 법률부조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돈이 없거나 법을 잘 모르는 서민들이 전화 한 통만 하면, 대기 중인 변호사가 달려가도록 했습니다.

고인의 보폭은 법조의 울타리를 넘어 시민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 참여연대 출범 초기 공동대표로서 초석을 닦았습니다. 그 화룡점정은 15년 전 국가인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은 것입니다. 독립기구를 원하지 않는 법무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의 갖은 방해는 물론이고, 때론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도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지만, 고인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갔고, 마침내 국제사회가 경의를 표하는 인권기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라크전 파병 때는 인권위 성명을 통해 ‘헌법과 국제법 위반’이라고 당당히 천명했습니다.

고인은 역사인식도 분명한 분이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우리 현대사에서 역사적 청산 작업은 아무리 늦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그 단호함과 결단력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 힘든 분이었다고 기억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면도날 같은 날카로움 뒤에 숨어 있는 따뜻한 인간애를 추억합니다. 변호사회 행사 때마다 고인은 연신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 스스로 젊은 시절 최고의 사진으로 간직하고 있는 몇 장은 그 덕분에 탄생한 것입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로서 틈날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자연과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찍던 모습도, 모두들 그리워할 것입니다.

이 찬란한 봄날, 김창국 변호사님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제 완전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생의 굵은 사슬을 모두 끊어버리고 천국으로 훨훨 날아가소서. 그리고 ‘나는 자유다’를 외치소서.”

박찬운/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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