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지난해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찾은 시민들이 <옹기 제작 도구>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청주연초제조창의 넓은 공간을 제대로 살린 전시가 눈에 띈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영국 템스강 남쪽 공장지대에 커다란 화력발전소가 있었다. 높이 99m 굴뚝에선 언제나 검은 연기가 피어났다. 이 연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듯한 ‘산업사회 영국’을 상징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1981년 화력발전소가 문을 닫은 뒤 건물은 폐쇄됐다. 그야말로 도심 속 흉물이었다. 영국 정부는 1995년 도시재생 사업을 벌였고, 고민 끝에 이 흉물을 미술관으로 새단장했다. 테이트모던이다. 지금 해마다 500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 영국의 테이트모던이 아니라 테이트모던의 영국이란 말까지 나온다.
충북 청주시의 옛도심 내덕동에는 청주연초제조창으로 불리는 담배공장이 있었다. 1946년 문을 열어 1999년 문을 닫을 때까지 50여년 동안 청주를 먹여 살렸다. 한국 최대 규모의 담배공장(12만2181㎡)에선 노동자 2000~3000여명이 해마다 담배 100억개비를 생산했다. 문 닫은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담배 향이 난다. 이곳에선 2011년부터 2년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열린다. 지난해 비엔날레엔 40여만명이 찾았다. 지난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청주연초제조창은 너무 인상적이다. 가공되지 않은 옛 담배공장 공간과 인간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공예의 만남이 설렌다”고 했다. 청주는 이곳을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인 아르세날레(옛 해군기지)처럼 키워가고 있다.
② 청주 연초제조창 전경.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청주연초제조창은 테이트모던과 닮았다. 2012년 9월 기자는 테이트모던을 찾았다. 무엇보다 높고 넓은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테이트모던은 높이 35m, 실내 길이 155m를 자랑한다. 실내엔 옛 화력발전소의 철골구조물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대형 크레인도 그대로 있다. 당시 행위극이 펼쳐지던 탁 트인 1층의 광경을 3층에서 내려다봤다.
비엔날레 주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연초제조창은 천장 높이가 6.5m, 바닥 면적이 9000㎡, 길이가 180m라서 어떤 규모의 작품도 전시할 수 있다. 70년 전 지어진 딱딱하고 거친 콘크리트벽 또한 예술작품과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지난해 열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최대 화제작 가운데 하나였던 고 백남준 작가의 <거북>도 옛 제조창의 거친 미학과 잘 어우러졌다. <거북>은 텔레비전 모니터 166개를 사용해 가로 10m, 세로 5m, 높이 1.5m에 이르는 대형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백남준의 작품을 전담하는 독립 큐레이터 아이리스 문은 “<거북>은 확장과 공존이란 비엔날레 주제와 걸맞은 전시”라고 평했다.
③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전경.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청주연초제조창이 문화와 도시재생의 상징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연초제조창은 건물만 24개동에 면적은 12만2181㎡에 이른다. 청주의 어머니산으로 불리는 우암산 아래 자리잡은 연초제조창은 청주시청과 1㎞, 충북도청과 2㎞ 남짓 떨어진 청주 도심에 있어 접근성이 빼어나다.
옛 연초제조창 주건물로 쓰였던 본관 건물 옆 남관(2만297㎡)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들어설 참이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예산안 심의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형태인 국립 청주미술품수장보존센터(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기본·실시설계비 40여억원이 반영됐다. 청주시는 628억여원을 들여 2017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9년 5월께 문을 열 계획이다. 이곳에 미술품 1만여점을 수장·전시할 참이다.
연초제조창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로 문화계에선 제법 유명하다. 1999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예를 주제로 비엔날레를 연 청주시는 청주예술의전당 등을 주전시장으로 쓰다 2011년부터 연초제조창에 안착했다. 2011년 비엔날레를 찾았던 톰 핑클펄 미국 퀸스미술관장은 “연초제조창은 높고 넓은 공간 구조 덕에 미국·유럽의 어느 문화 공간보다 빼어나다”고 극찬했다.
④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출품된 백남준의 대작 <거북>.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확장과 공존’을 주제로 9회 비엔날레(9월16일~10월25일)가 열렸으며, 내년 9월13일부터 10월22일까지 40일 동안 비엔날레가 열릴 예정이다. 내년 비엔날레에선 국제 공예 공모전, 초대 국가전, 국제 공예·아트 페어, 주말 공예장터, 거리마켓, 국제 학술회의 등을 선보일 참이다.
안승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 차장은 “10번째 비엔날레인 만큼 그동안 초대했던 모로코·이탈리아·캐나다·핀란드·독일 등의 작품을 다시 전시하고 공예 강국인 영국 등을 초대하는 대형 기획을 하고 있다. 역대 가장 멋진 비엔날레를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비엔날레로 주목받은 청주연초제조창 본관·남관에 견줘 뒷방신세였던 동부창고도 요즘 주목받고 있다. 연초제조창 본관·남관 등이 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로 고급 문화를 담는다면 동부창고는 시민들과 가깝다.
동부창고는 연초제조창에서 담배를 생산하기 앞서 담뱃잎 등을 보관하던 대형 창고로 7개동의 부지면적만 3만4522㎡에 이른다. 1960년대 공장 창고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붉은 벽돌과 금강송 목재 구조를 간직하고 있어 건물 자체의 보존가치도 빼어나다. 동부창고 34, 동부창고 35, 동부창고 36으로 불리는 동부창고는 지금 시민예술촌으로 불린다.
동부창고 34는 시민들의 사랑방 형태로 바뀌고 있다. 누구나 들러 공연, 전시, 수다,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또 요리를 할 수 있는 작은 부엌을 만들어 시민과 공유하고, 목공실에선 뚝딱뚝딱 목공예 소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 35동은 공연 연습 공간으로 꾸몄으며, 36동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생활문화센터조성사업에 선정돼 음악, 회의 등을 할 수 있는 동아리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37동은 작가의 공예품 제작 현장을 보고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방형 상점으로 꾸미고, 38동은 옛 제조창의 모습이 재현된다. 담뱃잎을 나르던 수레, 누런 월급봉투, 선술집 등의 모습이 추억 속에 되살아난다.
이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건축학)는 “연초제조창은 미래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등 고급 문화와 함께 시민들이 쉽게 접하고 공감하는 문화가 소통하면서 훌륭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청주시는 청주연초제조창 전체와 주변 내덕동을 아울러 문화와 업무, 레저가 융합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4년 5월 도시재생 선도지구로 지정했으며,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에서 선도지역 활성화 계획이 승인돼 사업이 활발하다. 시는 2018년까지 모두 3114억원(국비 1003억원, 시비 378억원, 민자 1733억원)을 들여 문화 비즈니스 공원을 조성할 참이다. 이곳에는 문화 창작과 시민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시민예술촌을 설치하고, 지식산업형 업무지구, 복합문화 레저·편의시설 등도 들일 계획이다.
장밋빛 전망뿐만 아니라 우려도 나온다.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은 “청주연초제조창과 동부창고에 문화를 매개로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시의 계획을 보면 불투명한 민자 유치 부분이 많고, 경제 기반형 위주여서 도시재생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개발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부창고 등의 문화재생을 자문하고 있는 황순우 건축가는 “동부창고를 중심으로 연초제조창 주변 지역인 내덕동 등지가 문화예술로 인해 서서히 변화하는 형태를 보여주려 한다. 구체적인 콘텐츠 등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