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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세월호 마지막 교신 내용 ‘발굴’ 순간 기쁨보다 두려움”

등록 2016-04-12 18:56수정 2016-04-12 22:38

 왼쪽부터 박수빈 변호사, 박다영 작가.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왼쪽부터 박수빈 변호사, 박다영 작가.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세월호, 그날의 기록’ 공동저자
박수빈 변호사·박다영 작가 등 4명
‘한겨레21’ 입수한 재판기록 바탕
10개월 동안 퍼즐맞추듯 ‘101분’ 정리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3월10일 출간된 <세월호, 그날의 기록>(작은 사진)은 시민의 눈으로 쓴 세월호 참사 기록이다. 15만쪽의 재판 기록, 검찰 수사 기록,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록과 3테라바이트의 음성·동영상 파일을 바탕으로 쓰였다. 책을 쓴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은 사고가 일어나던 101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조에 나선 이들은 뭘 하고 있었고 구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자료를 바탕으로 촘촘히 기록했다.

책은 출간 20일 만에 3판 인쇄에 들어갈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지난달 17일 트위터에 “가장 진실하고 가장 객관적이고 가장 치밀하게 쓰여진 101분간의 사건 기록”이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프로젝트의 출발은 세월호 희생자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와 <한겨레21> 정은주 기자의 만남에서 시작했다. 박종대씨는 아이를 잃고 허망한 마음을 다독이며 세월호 기록을 모으고 있었다. 많은 자료를 모았지만 흩어진 진실의 조각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정 기자를 만났다. 정 기자는 박씨의 기록을 들고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사장 박동운)을 찾아갔다. 진실의 힘은 1970~80년대 간첩으로 조작돼 고문당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실 규명을 위해 꾸려진 단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때까지 세월호 진실의 조각을 맞추기 위해 기록 정리에 나선 곳은 없었다. 진실의 힘은 그 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2015년 5월 ‘세월호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  사진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A href="mailto:eyeshoot@hani.co.kr">eyeshoot@hani.co.kr</A>
'세월호, 그날의 기록'. 사진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6일 이 프로젝트의 주역인 박수빈(왼쪽) 변호사와 박다영(오른쪽) 작가를 만났다. 서울대 인권센터의 초청으로 열린 ‘세월호, 진실과 기억’ 세미나를 마친 직후였다. 두 사람은 정 기자, 박현진씨와 함께 ‘세월호, 그날의 기록’ 집필에 참여했다.

박 변호사는 10개월의 여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영화 같은 일이었다.” 저자 네 명과 기획자 모두 각자 맡은 ‘배역’을 묵묵히 하며 일궈낸 결과라는 뜻이다. 시나리오 초안이라 할 기본 자료는 정 기자가 제공했고, 갓 로스쿨을 졸업한 박 변호사, 대학원을 졸업하고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박 작가, 대학 재학 중이던 박씨가 오디션(면접)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것이다. 진실의 힘 조용환 변호사와 송소연 이사, 이사랑 간사는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맡았다. 조 변호사는 세월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도록 뜻있는 변호사와 후원자들의 도움을 모으기도 했다.

처음에는 방대한 자료의 양에 두려움과 의욕이 교차했다. 박 작가는 “눈에 익숙하지 않은 재판 기록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검토해야 할 자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빠른 시간 안에 검토하고 다시 한번 꼼꼼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료를 볼수록 성취감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료를 입체적으로 조합하자 새로운 내용이 계속 보였다. 새로운 자료가 추가 발굴됐을 때, 찾았다는 기쁨보다는 놓친 게 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박다영 작가) ‘지금 승객이 450명이라서 경비정 이거 1척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 추가적으로 구조를 하러 와야 될 것 같습니다.’ 이들이 찾아낸 제주 운항관리실과 세월호가 나눈 마지막 교신 내용이다. 이는 선원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승객 구조를 포기했다는 추정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자료였다. 이런 새 사실의 발굴은 저자들이 밤낮을 잊고 더 자료 읽기에 몰입하도록 했다.

프로젝트 초기엔 기록물을 정리해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일이 진행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에 바탕을 둔 단행본 출판까지 하게 된 이유다.

구조 당국의 무능한 맨얼굴이 드러날 때마다 분통을 터트릴 일이 많을 법도 했지만 이들은 최대한 감정을 이입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밝혔다. 그러지 않으면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진실의 조각들이 서서히 맞춰져 갈수록 가슴이 답답한 순간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구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이 적은 인원으로 어떻게 구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면서)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안타까웠다”고 박수빈 변호사는 말한다.

책에 담긴 결과물이 모든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료 곳곳에 구멍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힘겨운 작업이 적어도 진실 규명을 위한 묵직한 첫걸음인 것은 분명하다.

글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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