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쇄지진
고베 4배 위력 덮쳤는데 왜 피해 적었나
고베 5530명 숨지고 40만채 붕괴
폐허로 변한 구마모토 사망 40여명
인구 밀집·건물이 재앙 키워
31만명 희생된 아이티 “공학적 재난”
위험 대비한 도시설계 중요성 일깨워
일 고베참사 이후 내진설계 강화
고베 4배 위력 덮쳤는데 왜 피해 적었나
고베 5530명 숨지고 40만채 붕괴
폐허로 변한 구마모토 사망 40여명
인구 밀집·건물이 재앙 키워
31만명 희생된 아이티 “공학적 재난”
위험 대비한 도시설계 중요성 일깨워
일 고베참사 이후 내진설계 강화
지난 16일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한 일본 구마모토현 일대는 폐허가 됐다. 미나미아소 지역의 산은 쪼개진 녹색의 껍질 바깥으로 붉은 흙을 토해냈다. 그 여파로 952채의 가옥이 무너졌다. 세계는 무서운 자연의 힘에 놀라고 있다. 19일까지 사망자 45명, 부상자 1117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문명의 산물인 도시가 만들어낸다. 1995년 1월17일 발생한 일본 고베 대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과 이번 구마모토 지진의 사례 비교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고베 대지진은 규모가 6.9(미국 지질조사국 기준)로, 파괴력은 구마모토 지진의 4분의 1 수준이지만(리히터 로그함수 계산법), 피해 규모는 압도적으로 컸다. 사망자가 5530명에 이르렀고 파괴된 건물은 40만채에 달했다. 그날 새벽의 지진으로 고베 중심가는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건물에 불이 붙어 하루 종일 시커먼 연기를 뿜어댔다.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부서진 한신고속도로의 모습은 사진에 담겨 이곳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다.
왜 고베 지진의 피해가 더 컸을까. 고베는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대규모 도시란 점이 결정적이다. 고베의 인구밀도는 2556명/㎢로 구마모토현 241명/㎢의 10배에 이른다. 고베는 간척으로 갯벌을 메워 인구 100만명이 사는 도시를 일궈낸 ‘문명의 힘’이 빛나는 곳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도시를 건설하고 모여들었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터전을 제공하며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며, 창의력을 발전시킬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거대한 자연재해에 직면하는 순간 도시는 ‘양날의 검’이 된다. 밀집 도시는 지진에 취약하고, 각종 바이러스와 전염병 등에 인간을 쉽게 노출시킨다.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간척으로 일군 도시는 문명의 승리로 기록됐지만, 지진으로 지반이 쪼개지자 갯벌이 드러나며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문명의 역설’이다.
이 역설은 수많은 지진 사례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힌 지진은 대부분 거대 도시에서 발생했다. 1556년 중국 산시성은 규모 8로 추정되는 지진으로 83만명이 사망했다. 산시성은 세계 3대 문명인 황하문명의 발상지다. 춘추시대 5패국 중 하나인 진이 있던 자리이고, 전국시대 조나라와 위나라가 세력을 키운 곳이기도 하다. 16세기 명나라 때에는 산시성에 부자들이 모여 살았다.
지난 17일 에콰도르의 북서부 해안도시 무이스네의 지진과 지난해 4월25일 발생한 네팔 카트만두에서의 지진은 둘 모두 규모가 7.8로 같았지만, 피해 수준은 천지 차이다. 최근 발생한 에콰도르 지진으로 인해 3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고 있지만, 지난해 네팔 카트만두에서는 무려 9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카트만두시는 네팔의 수도로 1㎢당 202명이 모여 사는 곳이다. 1㎢당 50명이 사는 무이스네에 견줘 훨씬 거대한 도시다.
2014년 2월12일 발생한 중국 호탄시에서는 규모 6.9의 지진이 발생했지만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에 8.1명이 사는 곳이다. 지진학자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다.”
물론 인류는 이런 ‘문명의 역설’을 극복한 사례도 보여준다. 2010년 벌어진 칠레와 아이티에서는 각각 규모 8.8, 7.0의 지진이 발생했다. 칠레 지진의 파괴력이 아이티의 것보다 무려 501배 수준에 이른다. 그럼에도 피해 규모는 정반대다. 칠레에서 지진에 의한 사망자는 550명이었지만, 아이티에서는 사망자가 31만6000명에 이른다.
‘적절한 인프라 개발 그룹’(AIDG)의 공동설립자인 피터 하스는 2010년 테드(TED) 강연에 나서 “아이티 지진의 피해는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공학적 재난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칠레에서 건물이 조각조각 부서지지 않고, 절반으로 뚝 부러진 한 건물의 붕괴 모습(사진)을 보여주며 “아이티에 건설된 건물들과 달리 칠레의 건물들은 벽체와 기둥, 슬래브 등이 함께 묶여서 서로를 지지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칠레는 수차례 지진을 겪으며 건물에 대한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하는 등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는 지진에 대한 대비가 잘 갖춰져 있는 나라로 평가받는다.
일본 역시 과거 경험을 토대로 지진에 ‘적응’하는 대응책을 찾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그렇지 않아도 선진적이던 내진설계 기준을 또 한 단계 올렸고, 재난 충격을 흡수하고 복원하는 능력인 ‘회복탄력성’이 큰 도시 체계(resilient city)를 만들어갔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일본의 지진 대응체계는 고베 지진 전과 후로 나뉜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때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한 사망자는 많았지만 건물 붕괴로 인한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도시의 회복탄력성은 어느 수준일까. 홍 교수는 “2001년 초에 도로와 항만 원자력발전소 등 기간시설에 대한 기준은 완비돼 있다. 200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은 대비가 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홍 교수의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2000년 이전에 지어진 상당수의 건물과 인프라는 여전히 무방비 상태로 남아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음성원 권오성 기자 esw@hani.co.kr
우리는 준비됐나 국내 인구 절반 단층대 주변에 거주 2000년 이전 건물 상당수 지진 무방비 서울·부산·인천 등 우리나라 대도시들은 대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단층대에 위치해 있다. 이들 단층대 주변에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산다. 우리나라는 서쪽의 인도판, 남쪽의 필리핀판, 동쪽의 태평양판에 둘러싸인 유라시아판 안쪽에 자리해 비교적 지진 안전지대에 속해 있다. 인도판이 미는 힘으로 쌓여 생긴 응력은 중국 대륙에서, 태평양판 응력은 일본 대륙에서 대지진으로 해소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대륙은 중국대륙을 계속 밀고 있고, 태평양판은 동해 아래 깊이 700㎞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한반도에는 동서 방향으로 압축응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 응력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층대를 따라 크고 작은 지진을 연평균 50회 가까이 일으키고 있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9일 “단층 가운데 고생대 때 형성된 추가령 단층, 예성강 단층, 양산 단층은 특히 위협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층은 5억4500만년 전 세 개의 땅덩어리(지괴)가 충돌하며 합쳐져 한반도가 생성될 때 생겨났다. 당시 한반도는 지금보다 500㎞ 북쪽에 있었으며, 백악기(1억2천만~6500만년 전) 때 현 위치로 밀려 내려오면서 내부가 깨져 또다시 많은 단층이 생겨났다. 1978년 충남 홍성 지진(규모 5.0)은 추가령 단층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며 속리산(1978년 규모 5.2), 오대산(2007년 4.8), 태안군 서격렬비도(2014년 5.1), 익산(2015년 3.5) 지진 등은 백악기 때 생긴 단층대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동서 방향의 압축응력이 남북 방향의 고생대 단층들을 따라 에너지를 분출하면 피해가 큰 역단층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단층은 지하 깊숙이 존재해 쌓이는 응력이 그만큼 크다. 이 책임연구원은 “1978년 추가령 단층 지진이 홍성이 아니라 서울 인근에서 일어났다면 피해가 가옥 100여채 파손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추가령·예성강·양산 단층대를 따라 인구가 밀집된 도시가 분포하고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가령 단층(원산-철원-의정부-서울-홍성)을 따라서는 1060만여명, 예성강 단층(개성-인천-당진-서산)은 330만여명, 양산 단층(영덕-포항-경주-울산-양산-부산)은 58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인근 도시까지 고려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단층대 주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40여년 동안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적은 없다. 그러나 역사 문헌에는 신라 때 규모 6.7 정도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진학자들은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는 언제든지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재발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우리는 준비됐나 국내 인구 절반 단층대 주변에 거주 2000년 이전 건물 상당수 지진 무방비 서울·부산·인천 등 우리나라 대도시들은 대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단층대에 위치해 있다. 이들 단층대 주변에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산다. 우리나라는 서쪽의 인도판, 남쪽의 필리핀판, 동쪽의 태평양판에 둘러싸인 유라시아판 안쪽에 자리해 비교적 지진 안전지대에 속해 있다. 인도판이 미는 힘으로 쌓여 생긴 응력은 중국 대륙에서, 태평양판 응력은 일본 대륙에서 대지진으로 해소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대륙은 중국대륙을 계속 밀고 있고, 태평양판은 동해 아래 깊이 700㎞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한반도에는 동서 방향으로 압축응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 응력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층대를 따라 크고 작은 지진을 연평균 50회 가까이 일으키고 있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9일 “단층 가운데 고생대 때 형성된 추가령 단층, 예성강 단층, 양산 단층은 특히 위협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층은 5억4500만년 전 세 개의 땅덩어리(지괴)가 충돌하며 합쳐져 한반도가 생성될 때 생겨났다. 당시 한반도는 지금보다 500㎞ 북쪽에 있었으며, 백악기(1억2천만~6500만년 전) 때 현 위치로 밀려 내려오면서 내부가 깨져 또다시 많은 단층이 생겨났다. 1978년 충남 홍성 지진(규모 5.0)은 추가령 단층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며 속리산(1978년 규모 5.2), 오대산(2007년 4.8), 태안군 서격렬비도(2014년 5.1), 익산(2015년 3.5) 지진 등은 백악기 때 생긴 단층대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동서 방향의 압축응력이 남북 방향의 고생대 단층들을 따라 에너지를 분출하면 피해가 큰 역단층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단층은 지하 깊숙이 존재해 쌓이는 응력이 그만큼 크다. 이 책임연구원은 “1978년 추가령 단층 지진이 홍성이 아니라 서울 인근에서 일어났다면 피해가 가옥 100여채 파손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추가령·예성강·양산 단층대를 따라 인구가 밀집된 도시가 분포하고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가령 단층(원산-철원-의정부-서울-홍성)을 따라서는 1060만여명, 예성강 단층(개성-인천-당진-서산)은 330만여명, 양산 단층(영덕-포항-경주-울산-양산-부산)은 58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인근 도시까지 고려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단층대 주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40여년 동안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적은 없다. 그러나 역사 문헌에는 신라 때 규모 6.7 정도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진학자들은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는 언제든지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재발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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