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경제가 어렵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개혁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임. … 노조의 강한 반대, 협의 무산 등에 대비해 직원동의서 징구, 직원 투표 등 대응방안 강구 필요.”
지난달 21일 국토교통부가 장관 주재로 산하 공기업·공공기관 기관장을 불러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열었던 회의 내용을 요약한 문서 내용이다. “성과연봉제 도입이 기관·기관장 평가에 중요한 요소. 지연 기관엔 예산·인력 협의 때 불이익 등 강력한 페널티 예정”이라는 부분도 눈에 띈다.
성과연봉제는 근속연수와 직급을 기준으로 책정되던 임금을 한 해 개인별 성과에 따라 연봉 형태로 주는 임금체계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말까지 공기업·공공기관 120곳 모두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각 기관을 압박하면서 지난 4일까지 50여곳이 도입을 완료했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압박하는 정부와 사쪽의 모습을 보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라는 유행어가 떠오른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취업규칙을 개정해야 하는데, 일부 노동자의 임금이 적어지는 ‘불이익’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조나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노사간 교섭 테이블에서 이런 논의를 해야 하지만 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 7곳은 매년 해오던 산별교섭을 거부하고 지난 3월 말 사용자 협의회에서 탈퇴했다. “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해, 산별교섭을 통해서는 정부가 설정한 기한 내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노조의 동의 없이 이사회를 열어 통과시키거나(일부 발전 공기업), 노조 사무실을 찾아가 노조 합의서에 서명을 해달라고 압박하거나(인천항만공사), 노조 위원장·부위원장이 합의를 거부하자 대의원 서명으로 합의서를 받는(수산자원관리공단) 등의 행태도 있었다.
노사 갈등은 5~8일 연휴를 마치고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의 공공부문 노동조합 5곳은 지난해 노사정 타협 등의 문제로 분열됐던 공동대책위원회를 복원해 국회 앞 농성 등 공동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다음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공공기관 기관장 워크숍이 열릴 예정이어서, 정부는 미도입 기관들에 대한 고삐를 더욱 강하게 죌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연공 위주의 임금체계를 변화된 시대 상황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고려해볼 측면도 있다. 하지만 노조는 공공기관 특성상 개인별 공정한 인사평가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 성과연봉제 도입이 저성과자 퇴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정말 ‘청년실업 해소’ ‘경제위기 극복’ 등을 위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양쪽 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성과 평가 기준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을 놓고 노조와 머리를 맞대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시한을 못박아놓고 노조를 몰아붙이는 행태는 노동자들의 반발만 키울 뿐이다. 정해진 답이 적힌 합의서를 들고 노조 위원장 집에 찾아가거나, 직원을 불러다 앉혀놓고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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