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 야간인력 증원 요구에
은성, 김군 속한 팀 인원 줄여 채워
“팀 정비한 작년에 다들 사고 우려”
당일 6명 근무…5명은 다른 현장에
“김군이 구의역서 동료 기다렸다면
1시간 이내 출동규정 어겼을 것”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미나(맨 왼쪽)씨 등 시민들이 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을 찾아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아무개군을 추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가 지금 (안전문) 장애 처리를 하고 있어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나홀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수리하던 19살 김아무개군이 세상을 떠난 지 나흘이 된 1일, 은성피에스디 강북사무소 ‘갑반 A팀’ 소속 ㄱ씨는 시간에 쫓기며 지하철 1~4호선의 안전문을 수리하고 있었다. ㄱ씨는 이날 팀 동료와 ‘2인1조’로 작업에 나갔다. ‘매뉴얼’대로다.
김군은 갑반 A팀의 막내였다. “근무 인력이 최소한 10명 정도만 돼도 구역당 2명씩 일할 수 있었을 테고, 그러면 사고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요.” 김군과 같은 팀에서 일하는 ㄴ씨가 어렵사리 기자에게 입을 열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무척 순진하고 성실한 친구였어요. 제 막내 자식보다 한참 어린 친군데…. 같이 일했던 사람으로서 가슴이 많이 아프죠. (김군의 죽음이) 내 일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늘도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전화 너머 ㄴ씨의 목소리 뒤로 지하철 안내방송 소리가 울렸다.
은성피에스디 강북사무소엔 김군 같은 ‘현장’ 직원이 48명 있다. 이 가운데 2명이 휴직 상태다. 휴직에 따른 인력 충원은 없었다. 김군이 속한 갑반 A팀은 모두 11명. 팀장과 부팀장 그리고 휴무자를 제외하면 하루 평균 5~7명이 강북지역 지하철 1~4호선 49개 안전문의 점검·수리를 해야 한다. 일손 부족을 “늘 느낄 수밖에 없다”고 팀원들은 입을 모았다.
불행한 사고가 일어난 ‘그날’ 갑반 A팀은 저녁 근무조(오후 1~10시)였다. 근무자는 김군을 포함해 6명뿐이었다. 사고가 나던 날 오후, 김군은 장애·고장 상황을 접수하는 직원 하나와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나머지 동료들은 이미 저마다 현장에 나가 있었다. 구의역 5-3 승강장 안전문에 이상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은 오후 5시께(서울메트로가 은성피에스디 기술지사에 고장 통보를 한 시간은 4시59분)였다. ‘접수 후 1시간 이내에 출동을 완료’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지연배상금을 청구’한다는 서울메트로와 은성피에스디 사이의 ‘피에스디(스크린도어)유지보수 과업지시서’ 규정에 맞추느라 김군은 홀로 구의역에 나갔다. 김군이 구의역에 도착한 건 오후 5시50분께였다. ㄴ씨는 “1시간 규정은 꼭 지켜야 했다. 안전문 고장이 빈발하는 저녁시간에 두 사람이 작업한다며 다른 현장에 나간 동료를 기다리다가 수리가 늦어지면, 김군이 맡은 다른 역에서 또 장애가 발생했을 때 한 시간 출동 규정을 어기게 돼 다급하게 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은성피에스디는 서울메트로 쪽과 재계약을 맺으며 근무 형태를 바꿨다. 이전까지는 직원 전체를 세 팀으로 나눠 3교대로 근무를 했지만, “새벽 첫차 시간에 장애가 많이 발생하니 야간~아침 시간 인력을 늘려 점검하라”는 서울메트로 쪽 요구에 따라 갑반, 을반, 병반, 야간반, 센서팀으로 나뉘었다. 열차가 다니는 일상시간대 근무반인 갑반의 근무 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을반, 병반, 야간반, 센서팀은 밤부터 아침까지 안전문을 점검했고, 30여명에서 22명으로 인원이 축소된 갑반만 A팀, B팀으로 11명씩 나뉘어 열차 운행이 집중된 오전 7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안전문 점검과 수리를 맡게 됐다. “이렇게 인력이 줄면 사고가 난다고 당시에도 다들 우려했지요. 전체 인력을 늘릴 생각은 하지 않다가 이런 사고를 부른 거지요.” 갑반의 또다른 직원이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디스팩트 시즌3 방송 듣기 바로가기[언니가 보고있다 #21_스크린도어, 박원순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