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족에게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60대 여성을 흉기로 찌른 ‘수락산 살인사건’ 피의자 김학봉(61)씨가 3일 이뤄진 현장검증에 앞서 언론에 얼굴을 드러냈다. 경찰은 범행 수법의 잔인성, 공공의 이익 등을 고려해 김씨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왜 범행을 저질렀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르겠다”고 반복했다. 하지만 경찰은 전날 그가 “배가 고파서 밥이라도 사먹으려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그가 조현병(정신분열증) 치료 이력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김씨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자 그를 기다리던 인근 주민 30여명이 “얼굴 좀 돌려봐라”, “잔인하다”고 소리를 쳤다. 현장검증은 소란 속에 계속됐다. 피해자 여성의 남편은“왜 우리 가족한테 그러냐,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 왜 살인자를 내보내서 이렇게 험한 꼴을 만들었나”고 울부짖었고, 다른 유족들도 흐느꼈다.
이를 지켜보는 등산객들의 마음은 뒤숭숭했다. 50대 여성 등산객은 “요즘 산에 다닐 때는 무서워서 서로 웃고 인사한다. 둘레길로 자주 다니는데 인적이 드물어서 잘 안 오게 되고 사건 뒤에 무서워서 더 안 오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등산객도 “아침마다 다녔던 길인데 무섭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김씨는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30여분을 걸어 범행 장소에 도착했다. 현장검증은 가림막을 설치하고 비공개로 25분간 진행됐다. 백경흠 노원경찰서 형사과장은 “현장검증은 피의자가 피해자를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담담하게 재연했다”며 “김씨가 피해자 주머니를 만지는 등 강도혐의를 둘 수 있는 행동을 자신이 진술한 대로 재연했다”고 말했다.
앞서 김씨는 첫 조사에서 “산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죽이려 했다”고 말해‘묻지마 범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경찰은 15년 전 강도살인 전과가 있는 김씨가 강도를 하려다 피해자를 죽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김씨가 피해자의 주머니를 뒤지고 “밥이라도 사먹으려고 그랬다”고 진술한 것들을 종합해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해 8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한편,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는 신상공개를 결정해 기준이 오락가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는 신상공개 권한이 각 경찰서의 신상공개위원회에 있고, 2010년 4월 개정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서 규정하는 신상공개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경찰청은 현재 신상공개 매뉴얼을 만들고 빠르면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박수진 기자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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