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쓰러진 그곳에 동판
6월항쟁 연세대 정문 진입로
29년 만에 제막식 열려 1987년 6월9일, 서울 서대문 연세대 교정에서는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6·10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집회에 참가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씨가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그가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사진 한 장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 조처 등의 이행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스물두살 청년은 7월5일 끝내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29년이 흐른 9일 오후 3시, 이한열 열사 추모 29주기를 맞아 고인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자리에 추모 동판이 박혔다. 동판 설치 지점은 연세대 정문 왼쪽 기둥 앞쪽 바닥이다. “1987년 6월9일 오후 5시 당시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곳, 유월민주항쟁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마름모 모양의 동판에는 이런 글귀와 함께 헌화를 의미하는 장미꽃이 새겨졌다. 이날 동판 제막식에는 고인의 어머니 배은심씨와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우 원내대표는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고통을 수없이 이겨낸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같은 날,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는 6월 항쟁을 주제로 한 뮤지컬 ‘고귀한 슬픔’ 갈라콘서트와 고인의 86학번 동기로 구성된 아마추어 합창단 공연이 열렸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오는 9월30일까지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이한열 유물전-유월이 이야기하다’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열어 고인의 유품 등을 전시한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단독] 윤동주 하숙집터 시민품에
넉달 묵었던 종로 누상동 9번지
내셔널트러스트 “매입·복원 추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가 이 시 ‘십자가’를 쓴 것은 서울 종로구 누상동 9번지의 하숙집에 묵을 때인 1941년 5월31일이다. 이 하숙집은 당시 조선의 항일작가 김송의 집이다.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윤동주와 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하숙집에서의 일상을 떼어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하숙집 터에는 그를 기념할 만한 공간을 찾기 어렵다. ‘윤·하·뻔’(윤동주 하숙집 뻔데기)이라는 간판만 눈에 띈다. 내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흔적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그의 하숙집 터 매입을 추진한다고 9일 밝혔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시민의 힘으로 보존하는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다. 이 하숙집 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의 저자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는 이렇게 설명한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간 것도 한글학자인 최현배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가출까지 하며 아버지를 설득했답니다. 김송이 사는 하숙집에 들어가 ‘모가지를 드리우고 피를 흘리겠다’는 시를 썼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어요.” 윤동주는 이 하숙집에 머물던 1941년 5~9월, 4개월여 기간에 ‘십자가’, ‘태초의 아침’, ‘못 자는 밤’, ‘바람이 불어’ 등 10편의 시를 썼다. 지금 이 터에는 윤동주가 살던 한옥은 없어지고, 새로 지은 양옥 건물만 있다. 이런 건물을 매입하려는 시도는 역사문화자원 보존에 대한 한 단계 높은 논의를 이끌어낸다. 김원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장은 “당시 시를 구상하며 윤동주가 봤던 장소의 느낌을 시민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단독] 윤보선 감시 집은 원형 잃어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때 서울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의 사저(국가사적) 내부를 감시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알려진 5층짜리 망루형 건물(일명 공안가옥)이 최근 리모델링 공사로 원형이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박정희정권때 사저 옆 공안가옥
건물주, 유산지정 거부 리모델링 9일 <한겨레>의 취재 결과 이 건물 소유주인 명문당 출판사는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벌여 감시초소로 지목되어온 5층 옥탑형 구조물과 1~4층 건물 외벽 및 내외부 공간을 전면 개조했다. 주요층 외벽은 철제·목조 패널로 덮었고, 초소 격인 5층 옥탑 건물 부분은 목제 난간과 투명 차양을 달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외관이 달라졌다. 김동구 명문당 대표는 “건물이 너무 낡아 내외부 공간을 업무용도에 맞게 고쳤다”고 말했다. 안국동 17-8번지에 자리한 이 망루형 가옥은 1967년 대통령선거 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윤보선 전 대통령 사저를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지어져, 이후 5층까지 계속 건물을 증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소유주인 명문당은 1970년 이 건물을 사들였다. 앞서 서울시는 2012년 정계·학계의 고증과 증언 등을 바탕으로 이 건물이 한국 근현대 정치사를 증언하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보고 미래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건물 개축과 보수에 장애가 된다”며 명문당 쪽이 반대해 2014년 공개된 최종 유산목록에서는 빠진 바 있다. 건축평론가 이주연씨는 “명문당 사옥은 한국 정치사의 질곡을 상징하는 유산으로, 상층부에 초소 같은 외양의 구조물을 계속 쌓아올린 공안가옥의 기형적 이미지가 강한 인상을 주었던 건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9일 이한열 추모 동판이 연세대 정문 앞 바닥에 새겨졌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고인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헌화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9년 만에 제막식 열려 1987년 6월9일, 서울 서대문 연세대 교정에서는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6·10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집회에 참가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씨가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그가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사진 한 장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 조처 등의 이행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스물두살 청년은 7월5일 끝내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29년이 흐른 9일 오후 3시, 이한열 열사 추모 29주기를 맞아 고인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자리에 추모 동판이 박혔다. 동판 설치 지점은 연세대 정문 왼쪽 기둥 앞쪽 바닥이다. “1987년 6월9일 오후 5시 당시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곳, 유월민주항쟁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마름모 모양의 동판에는 이런 글귀와 함께 헌화를 의미하는 장미꽃이 새겨졌다. 이날 동판 제막식에는 고인의 어머니 배은심씨와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우 원내대표는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고통을 수없이 이겨낸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같은 날,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는 6월 항쟁을 주제로 한 뮤지컬 ‘고귀한 슬픔’ 갈라콘서트와 고인의 86학번 동기로 구성된 아마추어 합창단 공연이 열렸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오는 9월30일까지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이한열 유물전-유월이 이야기하다’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열어 고인의 유품 등을 전시한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단독] 윤동주 하숙집터 시민품에
시인 윤동주가 하숙을 했던 서울 종로구 누상동 9번지 터에 양옥집이 들어서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내셔널트러스트 “매입·복원 추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가 이 시 ‘십자가’를 쓴 것은 서울 종로구 누상동 9번지의 하숙집에 묵을 때인 1941년 5월31일이다. 이 하숙집은 당시 조선의 항일작가 김송의 집이다.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윤동주와 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하숙집에서의 일상을 떼어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하숙집 터에는 그를 기념할 만한 공간을 찾기 어렵다. ‘윤·하·뻔’(윤동주 하숙집 뻔데기)이라는 간판만 눈에 띈다. 내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흔적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그의 하숙집 터 매입을 추진한다고 9일 밝혔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시민의 힘으로 보존하는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다. 이 하숙집 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의 저자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는 이렇게 설명한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간 것도 한글학자인 최현배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가출까지 하며 아버지를 설득했답니다. 김송이 사는 하숙집에 들어가 ‘모가지를 드리우고 피를 흘리겠다’는 시를 썼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어요.” 윤동주는 이 하숙집에 머물던 1941년 5~9월, 4개월여 기간에 ‘십자가’, ‘태초의 아침’, ‘못 자는 밤’, ‘바람이 불어’ 등 10편의 시를 썼다. 지금 이 터에는 윤동주가 살던 한옥은 없어지고, 새로 지은 양옥 건물만 있다. 이런 건물을 매입하려는 시도는 역사문화자원 보존에 대한 한 단계 높은 논의를 이끌어낸다. 김원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장은 “당시 시를 구상하며 윤동주가 봤던 장소의 느낌을 시민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단독] 윤보선 감시 집은 원형 잃어
서울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 사저 맞은편에 위치한 5층짜리 건물(현 명문당 출판사). ‘공안 가옥’으로 쓰였던 낡은 건물(왼쪽)이 최근 리모델링을 해 외관이 달라졌다. 김용관 건축사진가 제공
건물주, 유산지정 거부 리모델링 9일 <한겨레>의 취재 결과 이 건물 소유주인 명문당 출판사는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벌여 감시초소로 지목되어온 5층 옥탑형 구조물과 1~4층 건물 외벽 및 내외부 공간을 전면 개조했다. 주요층 외벽은 철제·목조 패널로 덮었고, 초소 격인 5층 옥탑 건물 부분은 목제 난간과 투명 차양을 달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외관이 달라졌다. 김동구 명문당 대표는 “건물이 너무 낡아 내외부 공간을 업무용도에 맞게 고쳤다”고 말했다. 안국동 17-8번지에 자리한 이 망루형 가옥은 1967년 대통령선거 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윤보선 전 대통령 사저를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지어져, 이후 5층까지 계속 건물을 증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소유주인 명문당은 1970년 이 건물을 사들였다. 앞서 서울시는 2012년 정계·학계의 고증과 증언 등을 바탕으로 이 건물이 한국 근현대 정치사를 증언하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보고 미래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건물 개축과 보수에 장애가 된다”며 명문당 쪽이 반대해 2014년 공개된 최종 유산목록에서는 빠진 바 있다. 건축평론가 이주연씨는 “명문당 사옥은 한국 정치사의 질곡을 상징하는 유산으로, 상층부에 초소 같은 외양의 구조물을 계속 쌓아올린 공안가옥의 기형적 이미지가 강한 인상을 주었던 건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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