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1시께, 서울 종로구 명륜3가 인근의 김신재씨의 집 옥상에서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과 집주인 김씨가 흰색 쿨루프용 페인트로 옥상을 칠하고 있다.
18일 오전 9시30분께,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종로구 명륜3가 한 주택의 옥탑방 지붕 위에서 남성 4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페인트칠을 이어가고 있었다. 30분 뒤, 녹색이었던 지붕이 하얗게 반짝였다.
이 옥탑방에 사는 이들은 대학생 자매다. 5월부터 찾아온 고온 현상으로 무더위에 지친 자매는 인터넷에 ‘어떻게 하면 옥탑방에서 시원하게 살 수 있나요’라는 문장을 적고 검색을 시작했다.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에너지시민협력과와 ‘십년후 연구소’가 지난 4월부터 에너지 취약계층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구를 식히는 60일, 쿨루프 프로젝트’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쿨루프 캠페인은 원래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됐다. 오래된 벽돌 건물에 사는 저소득층 노인들이 폭염에 사망하는 일이 늘자, 이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나온 게 ‘화이트루프(하얀 지붕) 프로젝트’였다. 뉴욕에서만 80여개 빌딩의 옥상이 하얗게 변했다. 십년후 연구소는 2012년, 국내에 처음 쿨루프를 소개하고, 해마다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취지에 공감한 노루페인트와 두온에너지원은 쿨루프용 페인트 기부와 기술지원에 나섰다. 노루페인트 관계자에 따르면, 쿨루프용 페인트는 적외선을 반사하는 흰색 특수 안료를 사용해 태양열을 반사하는 차열 효과와 표면의 열을 대기 중으로 방출해 건물의 냉방 효과를 높인다.
18일 오전 10시께, 서울 종로구 명륜3가 인근의 주택 옥탑방에서 이 마을 주민 남기현씨와 자원봉사자가 흰색 쿨루프용 페인트로 옥상을 칠하고 있다.
자매는 지난 5월 말, 집주인 남기현(38)씨와 상의를 마치고 쿨루프 캠페인에 신청했다. ‘마을 토박이’인 남씨는 마을에 사는 청년들을 찾아 쿨루프 캠페인을 독려했고, 덕분에 총 5가구가 선정돼 무료로 쿨루프 시공을 받았다.
같은 마을에 사는 김신재(67)씨의 집은 오래된 벽돌 건물인데, 이 집 옥탑방에는 90대인 김씨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 오후 1시30분께 68.5도를 기록하던 김씨 집 옥상 바닥은 쿨루프용 페인트를 칠하고 10분 뒤쯤 54.3도로 떨어졌다. 조윤석 십년후 연구소 소장은 “실내는 3~4도 정도 온도가 내려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여름에 선풍기를 틀어도 방이 더워서 어머니가 늘 대문 앞 그늘에 나와 앉아 있었다”며 “올여름 조금이나마 더위를 덜어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환하게 웃었다. 시공이 이어지는 동안 마을 주민들은 수박과 차가운 커피를 들고 찾아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씨는 “마을 특성상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다. 조만간 마을 회의를 열어 쿨루프용 페인트를 공동 구매하고, 시공이 필요한 곳에 공사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쿨루프 무료 시공 캠페인은 오는 21일까지 진행된다. 장마 뒤에는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쿨루프 시공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글·사진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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