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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 젊은 검사는 무엇을 알리고 싶었을까

등록 2016-06-27 19:00수정 2016-06-30 14:21

오늘 스포트라이트 | 2년차 ‘에이스 검사’의 죽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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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상명하복 문화
검사를 사지로 내몰다

“일이 너무 많다. 쉬고 싶다.”

서울남부지검 김아무개(33) 검사가 지난달 19일 서울 목동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군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4월 서울남부지검에 부임했다. 그에 대해 한 검사는 “군법무관 출신에 초임이 남부지검인 ‘에이스’ 검사”라고 설명했다. 당시 그의 집에서 발견된 A4용지 2장 분량의 유서에는 업무에 대한 중압감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돌아오는 장기 사건들이 목을 조인다.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하루 종일 앉아서 보고 있어도 사건은 늘어만 간다. 물건을 팔지 못하는 영업 사원들의 심정이 이렇겠지.

유서에는 가족이나 친구들 외 상사의 이름은 나와 있진 않았지만, 가족들은 장례식장을 찾은 동료들을 통해 김 검사의 죽음이 직장 상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씨의 아버지 김진태(64)씨는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 오직 비통한 심정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 뒤 친구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면서 상사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김 검사가 생전에 친구들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에는 직속상관인 김아무개(48) 부장검사한테 당한 모멸감이 담겨 있다. 김 검사는 지난 4월 “부장검사에게 매일 욕을 먹으니 자살 충동이 든다” “동료 검사 결혼식장에서 조용히 술 먹을 방을 구해오라고 다그쳐 안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부장검사가) 계속 욕을 했다”는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2년차 한 검사의 죽음을 계기로 검찰 특유의 상명하복 조직문화의 폐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김수남 총장 취임식에서 김 총장이 검찰 간부들과 인사를 하는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2년차 한 검사의 죽음을 계기로 검찰 특유의 상명하복 조직문화의 폐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김수남 총장 취임식에서 김 총장이 검찰 간부들과 인사를 하는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물건 못 파는 영업사원 심정”
유서 두쪽 남기고 목숨 끊자
아들 잃은 아버지가 탄원서
“담당부장 죽음에 상당한 책임”

친구들과 카톡 메시지 보면
“부장검사가 매일 욕…자살충동”
“술 먹을 장소 구해오라 다그쳐”
부당한 압력에 이의제기 못하는
비뚤어진 조직문화 원인인 듯
검찰 “사실관계 조사 후 조처”

유족들은 2주 전 대검찰청과 청와대에 탄원서를 내며 “아들은 부장검사의 일상적인 폭언과 비상식적인 인격모독적 발언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담당 부장이 아들 죽음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썼다. 이들이 탄원서를 낸 사실이 이날 <중앙일보>의 보도로 알려지면서, 사건 초기 개인적 문제로 치부됐던 김 검사의 죽음은 상관의 언어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사실 상관의 괴롭힘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일선 검사의 자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3년 10월 부산지검 박아무개(당시 30살) 검사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는 대전지검 허아무개(당시 34살) 검사가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두 사건 모두 상관한테서 받은 인간적 모멸감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 검사가 초임 검사로 근무한 서울남부지검은 일이 상대적으로 어렵기로 소문난 곳이다. 여의도 증권가를 관할하는 곳이라서 금융 관련 고소·고발 사건들이 많다. 한 검사는 “남부지검은 업무 강도가 센 편에 속한다. 한 달에 맡는 고소사건만 100건이고, 처리하기 어려운 ‘질긴 사건’이 많다”고 했다. 그는 또 “사건 접수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컴퓨터 전산 장부에 빨간색으로 표시가 된다. 언제 사건을 처리하느냐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올 때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대검 건물은 대형 수사가 벌어질 때면 밤늦게까지 불이 꺼질 줄 모른다. 이종근 기자
대검 건물은 대형 수사가 벌어질 때면 밤늦게까지 불이 꺼질 줄 모른다. 이종근 기자

하지만 검사의 높은 업무 강도만으로 2년차 검사의 죽음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검찰 안팎에선 ‘검사동일체 원칙’에서 비롯된 비뚤어진 상명하복 문화를 지목한다. 축적된 수사 노하우로 빠르게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조직의 특성상 검사동일체 원칙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영역에까지 뻗친 왜곡된 상명하복 문화는 검찰 안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검찰 안팎에선 지적한다. 검찰 간부들 중에는 일선 검사들을 ‘지도’한다는 명목 아래 인간적 모멸감을 주는 간부들도 적지 않고, 일선 지검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 간부들도 이런 행태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실제 김 검사 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 고위 간부들은 ‘후배 검사에 대한 선배 검사의 교육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상관의 지시가 아무리 부당할지라도 평검사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날 의정부지검 소속 임은정 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문제 간부들의 행동에 힘겨워하는 후배들에게 들이받으라고 권하면서도 꼭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런데 너도 다칠 각오하라’고.”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면 상관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꼬집은 것이다.

선배와 후배 검사 간의 소통 부재를 지목하는 이들도 있다. 10년차인 한 검사는 “내가 초임이었을 때 새벽에 퇴근하고 나면 바로 위 선배들과 얘기를 하면서 고민을 털어놨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다. 김 검사가 조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선배로서 미안함이 크다”고 말했다. 왜곡된 상명하복 문화는 검찰 조직을 위기에 빠뜨린다. 상관이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더라도 수사 검사가 저항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게 된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상명하복은 행정 업무를 처리할 때 적용되는 것이다. 수사에선 사건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일선 검사의 견해가 중요하다. 상관이 이를 무시하면 수사가 왜곡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이날 “김 검사 사건과 관련해 남부지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고 내부 조사가 진행 중이다. 사실관계 조사 후 그에 따른 조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영지 최현준 김지훈 기자 yj@hani.co.kr


[디스팩트 시즌3#9_남들은 알려주지 않는 브렉시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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