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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한마디로 하면 초보운전, 눈빛, 고기…

등록 2016-06-29 11:10수정 2018-10-05 16:50

2년 전 여행작가 이동미씨의 가족이 강화도 나들길 1코스 연미정에서 가족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이 작가는 “온 가족이 행복하고 배려받은 여행이 최고의 여행”이라며 “아이와 함께 여행한다고 아이만을 위한 여행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동미씨 제공
2년 전 여행작가 이동미씨의 가족이 강화도 나들길 1코스 연미정에서 가족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이 작가는 “온 가족이 행복하고 배려받은 여행이 최고의 여행”이라며 “아이와 함께 여행한다고 아이만을 위한 여행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동미씨 제공

7~8월, 여름휴가철이 다가온다. ‘어디로 떠나야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고민도 깊어진다.

일간지 기자, 여행작가, 여행교육단체의 교육팀장. 아이들과 여행을 즐기는 세 사람이 있다. 세 여행자에게 ‘아이와의 행복한 여행’을 위한 팁을 듣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다’

육아휴직하고 독박육아로 우울

연유진(기자·<초보 엄마 숨통 터지는 유모차 여행> 저자)씨는 ‘초보 운전’이라고 했다.

“처음 운전대를 잡으면 몸이 뻣뻣해지죠.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렵고 잔뜩 겁도 나고요. 그러다 막상 한 번 두 번 차를 운전해보고 이곳저곳 가다 보면 그때부터 운전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가 됩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초보 운전과 같아요.”

연유진씨는 유쾌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씨는 아이를 낳은 뒤 육아휴직을 하고 ‘독박 육아’를 하면서 답답하고 우울했다. 아침 6시 반에 나간 남편은 밤 9시, 10시가 돼 들어왔다. 하루 종일 ‘어른과의 대화’를 하지 못한 채 집에 있다 보니 짜증과 화가 늘어갔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아이가 생후 90일이 됐을 무렵, 남편과 함께 아무 계획 없이 1박2일로 춘천 여행을 떠났다. 신생아를 데리고 여행 떠나는 것에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걱정이 많았다. 연씨는 “의외로 아이는 강했다”며 “낯선 곳에서 아이는 잠도 잘 자고 잘 놀고 아프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춘천 의암댐 스카이워크는 유모차로 다녀도 불편함이 없었다. 탁 트인 호수 주변을 걸으며 연씨는 육아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렸다. 그동안 쌓였던 남편에 대한 불만도 사그라들었다. 첫 여행에서 해방감을 맛보고 자신감을 얻은 연씨는 육아휴직 내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서울 곳곳과 지방을 누비고 다녔다.

연씨는 영유아 부모들이 선호하는 실내 키즈카페보다는 서울대공원, 용산어린이박물관, 월드컵공원 등 공공시설을 주로 이용했다. 직접 다녀보니 공공시설이 모유수유실과 같은 육아 친화적인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곳도 많았다. 흔히 돈과 시간이 없어서, 또 아이가 너무 어려서 여행을 못 간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연씨는 “일단 집에서 가까운 공공시설이 있는 곳부터 여행하라”고 말한다. 무료이거나 값싼 공공시설들은 여행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육아 스트레스까지 날려준다고 말한다.

처음은 두렵지만 하다 보면 자유다
걱정 뒤로하고 백일도 안돼 훌쩍
그후 유모차로 전국 발길 닿는 대로

재미 찾으면 세상 보는 눈 반짝인다
체험활동 등으로 여행마저도 숙제
의미 찾으려 말고 눈 맞추고 대화를

먹어봐야 맛을 알듯 다녀봐야 안다
아이만을 위한 동선 짜면 짜증
각자 좋아하는 것 한 가지씩은 꼭

연유진씨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에서 산보를 하고 있다. 연씨는 “입장료도 없고, 주변에 수유시설도 잘 돼 있고, 유모차를 끌고 정상까지 올라 서울 강북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초보 부모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유진씨 제공.
연유진씨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에서 산보를 하고 있다. 연씨는 “입장료도 없고, 주변에 수유시설도 잘 돼 있고, 유모차를 끌고 정상까지 올라 서울 강북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초보 부모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유진씨 제공.

다람쥐 쳇바퀴, 귀찮고 피곤

서효봉(여행교육단체 굴렁쇠 교육팀장·<여행육아의 힘> 저자)씨는 ‘눈빛’이라고 빈칸을 메웠다.

초·중·고등학생들을 모둠으로 데리고 다니며 여행을 하는 서효봉 팀장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눈빛”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눈빛이 바뀌고 부모들의 눈빛이 살아나면, 그것이야말로 성공적인 여행이란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마저도 너무 바쁘다. 학교와 학원, 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아이들은 여행 와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부모가 체험교육을 보내서 오긴 왔는데, ‘여행은 어차피 귀찮고 피곤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체험활동 등이 강조되면서 언젠가부터 여행마저도 숙제가 되어버렸다.

서 팀장은 이런 아이들의 무기력증을 방지하려면 “아이들과 여행할 때 부모들이 의미를 찾지 말라”고 주문한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려면 자꾸 박물관이나 유적지 등에서 교육적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의미’보다는 ‘재미’를 원한다. 여행지에서 부모와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또 어떤 재밌는 일이 있었는지를 더 중시한다. 서 팀장은 “가급적 아이들과 여행지에서 재밌게 놀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많이 하라”고 조언한다. 술래잡기, 수건 돌리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놀이도 여행지에서 해볼 수 있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눠볼 수도 있고, 여행지에서 ‘비밀 장소를 찾아라’라는 게임을 해도 좋다.

“아이가 여행에서 재미를 느끼면 눈빛이 바뀝니다. 단순한 눈빛이 아녜요. 그것은 아이가 부모를 바라보는 눈빛이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이기도 합니다. 여행하면서 아이의 눈빛을 확인하세요.”

올해 1월 서효봉씨가 중학생들을 데리고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면서 콜로세움을 둘러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서효봉씨 제공.
올해 1월 서효봉씨가 중학생들을 데리고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면서 콜로세움을 둘러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서효봉씨 제공.

아빠는 짐꾼, 엄마는 돌보미

이동미(여행작가·<엄마표 여행> 저자)씨는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고기예요”라고 대답했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 작가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죠. 여행도 마찬가지예요. 여행을 안 다녀본 사람은 그 즐거움을 몰라요. 다녀본 사람만 그 맛을 알죠”라고 덧붙였다. 아이와의 여행이 처음부터 즐겁고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처음에는 힘들지라도 여행하다 보면 가족들 모두가 행복한 여행은 어떤 여행인지 찾게 된다. 서로를 알아가게 되고, 그 과정 속에도 여행의 즐거움이 있다.

이 작가는 이 즐거움을 알기 위해서는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라고 아이만을 위한 여행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떤 부모들은 온전히 아이만을 위한 동선을 짠다. 아빠는 운전사나 짐꾼으로 전락하고, 엄마는 여행지에서도 아이 돌보미 또는 교사 노릇을 한다. 이렇게 다녀온 여행은 돈만 쓰고 전혀 즐겁지 않다.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이 작가는 “가족여행을 갈 땐 온 가족 모두를 배려해야 하는 여행이어야 한다”며 “가족 속에 아이가 있는 것이지 아이가 가족의 제왕이 아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아내는 편안하고 안락한 펜션에서 자고 싶어하고, 남편은 야영지에서 캠핑을 하고 싶어한다고 하자. 이번에 숙소를 아내가 원하는 곳으로 선택했다면, 다음 여행에서는 남편이 원하는 숙소를 선택하기로 한다. 또 숙소를 아내가 원하는 곳으로 고른 대신 여행 동선에서 남편이 꼭 가고 싶어하는 곳을 포함한다. 이런 식으로 누구 하나 희생하지 않고 모든 가족이 즐거워할 만한 요소를 담은 여행을 한다면 가족 여행은 지속 가능해진다. 아이가 너무 어리다면 아이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배려하면 충분하다.

“고등학생 딸, 중학생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여행을 줄기차게 다녔어요. 아들은 놀이기구 같은 몸으로 움직이는 활동을, 딸은 야생화 같은 자연을 좋아하지요. 남편은 역사와 관련한 여행지를 선호하고 저는 글을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장소’를 좋아하지요.” 가족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여행지를 묻자 이 작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가족 구성원의 개별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모두 재충전이 가능한 여행, 이번 여름휴가엔 그런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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