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배범규씨의 아버지 배의석씨는 7일, 사고 현장을 찾아가 인근 과수원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이륜차 안전모를 발견했다. 당시 경찰관도 찾지 못한 안전모를 유가족이 직접 찾았다.
“착한 우리 아들을 가슴에 묻고, 다시 사고 현장에 찾아 와봤어요. 과수원 나뭇가지 사이로 우리 아들이 썼던 안전모가 주인 없이 매달려 있더라고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청송 ㅎ우체국 소속 집배원 배범규(34)씨는 지난 4일 오전 11시30분께 오토바이에 우편물을 한가득 싣고 여느날처럼 바쁜 걸음으로 우체국을 나섰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이날 청송군엔 폭우가 쏟아졌지만, 밀린 우편물이 많아 업무를 중단할 순 없었다.
배씨의 오토바이가 빗길을 헤치고 평소 오가던 현서면사무소에서 영천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던 찰나, 영천 방향에서 청송방향으로 직진하던 차량이 배씨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배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배씨가 일하는 우체국 배달 인력은 늘 부족했다. ㅎ우체국은 2014년까지 집배원 10명이 해당 구역을 맡았었다. 2년 사이 우편물 배달 가구수가 늘었는데도 집배원 숫자는 오히려 7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온 동료가 결혼을 해 일주일간 자리를 비우면서, 배씨에게 할당된 주중 배달량은 늘어났다. 비오는 날 우편물 배달에 나서면서도 배씨는 “제 결혼식 때도 동료들이 제 몫을 나눠서 배달해주셨다”며 불평을 하지 않았다고 동료들은 말했다.
올해로 9년째 집배원으로 일하던 배씨는 2014년 9월 결혼해 3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둘째 아기의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배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전국집배노동조합이 제작한 ‘오늘도 우리는 살아남았다’라는 제목의 웹 게시물을 통해 온라인에 먼저 알려졌다. 이들은 “안전교육 강화 이전에, 폭우나 폭설로 배달 업무가 위험한 상황이면 작업중지권이 지켜지길 바란다”면서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우정본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거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 근로자의 작업을 중지시키고 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 뒤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국우정노동조합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최근 5년 동안 집배업무 도중 15명의 집배원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고 배범규 집배원은 6일, 우체국장을 마지막으로 영면에 들어갔다.
배씨의 아버지는 지난 7일 오후, 발인을 마치고 아들이 사고를 당한 현장을 홀로 찾았다. 그는 사고 현장 인근 과수원 나뭇가지에서 아들이 사고 당일 썼던 ‘안전모’를 발견했다. 그는 “아들이 쓰러졌던 자리에 ‘사망자 발생 지점’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세워진 걸 보고 가슴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는 8일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들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이 일을 계기로 전국에서 고생하는 집배원들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사진 고 배범규 집배원 가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