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시민들, 호텔에 주한 일본대사 차량 들어서자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 벌어져
“장례를 지내고 오는 길이에요. 도저히 분해서 못 참겠어요. 도대체 서울 한복판에서 자위대 기념행사라니, 이게 뭐하는 거예요. 대한민국에는 법도 없나요.”
12일 오후 5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유남희 할머니를 떠나보낸 이용수 할머니(89)는 울분에 찬 표정으로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앞을 찾았다. 주한일본대사관의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 행사가 열리는 이 호텔 앞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자위대 행사가 열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몰려든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일반 시민들로 북적였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등의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후 4시께부터 호텔 인근 도로 앞에서 손팻말을 든 채 릴레이 발언을 이어가는 등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일본이 한국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일본 자위대 창립 행사를 강행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라며 “자위대 창설 행사를 허용한 박근혜 정부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과 청년들로 이뤄진 대학생겨레하나 소속 회원들은 한복을 입고 나무 의자에 앉아 ‘평화의 소녀상’ 퍼포먼스를 벌였다. 김샘 평화나비 대표는 이날 행사에 국방부 관계자 등이 참석하기로 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국방부 공무원들이 참석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경기도 오산에서 온 시민 이아무개(34)씨는 “자위대 기념식이 열리는 호텔 인근에는 김구 선생의 동상과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 있는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행사를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행사 시작 30여분을 앞둔 오후 6시께 호텔 안으로 들어서는 주한 일본대사의 차량을 시민단체 회원 등이 막아서면서,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시민들 간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시민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또 김용해 국방부 주한무관협력과장이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 로비로 들어섰을 때도 시민들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일본은 매년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를 서울 시내 호텔에서 열어왔다. 2014년엔 자위대 창설 60주년을 맞아 롯데호텔에서 기념행사를 열기로 했다가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 성북구에 있는 일본 대사관저로 장소를 바꿔 개최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일본 대사관저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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