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김수남 검찰총장(가운데)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 시간에 구내식당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수사 착수 70여일 만에 중대 위기를 맞았다. 그룹 핵심 임원인 이인원(69) 정책본부장(부회장)이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비자금 조성 등 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뜻밖의 사태로 자칫 수사 동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지난 6월10일 롯데 계열사 17곳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 인원의 3분의 1에 이르는 240여명이 투입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었다. 롯데와 관련된 다양한 비자금 의혹과 횡령·배임 의혹 보도가 쏟아졌고, 검찰은 “언론이 제기한 의혹들까지 신속하게 수사하겠다”고 자신했다. 수사는 예상외로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비리 핵심인 오너 일가의 비자금은 쉽게 파악되지 않았고, 홈쇼핑 허가 문제 등 변죽만 울리는 수사들이 이뤄졌다.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등 핵심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도 법원에서 속속 기각됐다.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내부에서 나왔다.
반전의 계기는 최근에야 이뤄졌다. 수사 개시 두 달이 다 된 상황에서 신격호 회장이 사실혼 관계인 셋째 아내 서미경씨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에게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증여하면서 6000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정황이 포착됐다. 롯데건설이 2002년부터 3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온 정황도 파악됐다. 검찰 스스로도 “수사가 7부 능선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의 죽음은 최근 간신히 물꼬를 튼 검찰 수사를 다시 난관에 빠지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해, 43년간 근무하며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보필해왔다. 그가 2011년부터 본부장을 맡은 정책본부는 롯데 오너 일가를 대신해 그룹 전체를 총괄 관리한다. 이번 검찰 수사 핵심인 신격호-신동빈 부자의 비자금 부분에 대해 그가 ‘열쇠’를 쥔 인물로 불려온 이유다. 롯데는 건설 쪽에서 발견된 비자금은 정책본부, 즉 오너 일가와는 관련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검찰은 이 부회장 조사를 통해, 롯데 쪽 주장을 반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죽음으로 오너 일가와 비자금 사이의 ‘연결고리’가 사라진 셈이 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 범위나 방향 등 큰 줄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장례 일정을 고려해 피의자 소환 일정 등만 조정할 것이라고 했다. 신동빈 회장에 대한 수사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요 피의자의 죽음은 수사 방향을 돌릴 수 있고 나아가 성패까지 좌우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비리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이 대표적이다. 검찰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자원외교 수사는 수사 방향이 틀어진 채,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수사에 실패했다.
검찰이 롯데에 대한 수사를 계속 강도 높게 밀어붙이기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재계를 중심으로 수사 태도나 방식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 입장에서는 혐의 입증보다 수사에 대한 여론의 태도가 바뀐 것이 훨씬 신경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지금까지 수사를 물증을 중심으로 진행해와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비자금 용처 등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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