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 상담가의 성윤리의식 실태와 내담자 법적 보호 현실’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미국에선 심리 상담가와 내담자 사이의 결혼도 (허용) 안 되는 건가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 상담가의 성윤리의식 실태와 내담자 법적 보호 현실’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 한 여성이 이상민 고려대 교수(교육학과 상담전공)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교수가 “미국상담협회에선 윤리강령을 통해 상담가와 내담자 사이의 ‘성적 관계’를 철저히 제재하고 있다”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상담가의 면허를 박탈한다”고 설명한 뒤였다. “결혼은 가능하겠지만 (상담가) 면허는 취소될 겁니다.” 이 교수의 단호한 답변은 내담자와 상담가 둘만이 있는 공간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상담의 특수성을 반영한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감정적으로 극도의 의존 성향을 보이게 되는 만큼, 확실한 직업윤리 의식 등 상담가로서의 자격 요건 관리가 필수적이란 의미다.
최근 상담실 내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상담가의 자격 요건 강화 등 체계적 상담실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리상담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된 내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최근 검찰이 잇따라 관련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기소에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5일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부장 고은석)는 2012~2013년 상담소를 찾은 여성들과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맺고 성관계 장면 등을 촬영해 주변에 보여준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심리상담가 맹아무개(45)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이정현)는 지난 6월 말, 10대 여고생들을 포함해 내담자 11명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서울 강남의 한 심리치료센터 강아무개(48) 원장을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미국에선 상담자가 내담자와 ‘사적 관계’를 맺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고 한국 상담계에서도 ‘윤리강령’을 통해 이를 금지하고 있지만, 상담자와 내담자 둘만 있는 내밀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폭력 범죄는 입증이 어려워 국내에선 그간 처벌된 예가 거의 없었다. 피해자 스스로도 성범죄라는 인식도 낮았다. 상담가와 내담자가 맺는 특수한 소통 방식과 위계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수사기관과 법원은 피해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에만 주목해왔던 탓이다.
법정에 서게 된 두 상담자의 경우 “내담자와 합의하에 교제한 것”이라거나 “추행 의도가 없는 정당한 상담기법”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사건을 살펴보면, 두 사람 모두 상담 과정에서 수집한 내담자들의 심리적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성폭력 행위를 ‘치료’로 가장하는 등 일반 성폭력 사건과 다른 ‘상담실 성폭력’만의 특수성이 온전히 드러난다. 특히 강씨의 경우, 스스로 ‘성적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봉사자’로 자처하며, 내담자에게 성경험이나 성적 취향을 집중적으로 묻는가 하면 신체 접촉이 심리치료 기법의 하나라고 강조하며 내담자들을 강제 추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을 담당한 인훈 검사는 “이미 정신적,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피해자들이 상담소에 와서 ‘2차 피해’에 놓였다는 점에서 위중한 범죄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상담소가 서비스업 신고제로 이뤄지는 탓에 상담소 수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이전엔 대학에 상담 관련 전공 이수를 통해 한해 300~400명 정도가 상담사가 됐다면, 최근엔 해마다 전국 대학에서 배출하는 관련학과 졸업생만 1만명이 넘어서 심리상담 산업의 급격한 증가 추세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상담가 공인 자격 제도가 없는 상황이라 무자격 상담사들의 전횡을 막을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강씨의 경우, 교회 목사로 재직하던 2011년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복역한 전력까지 있다. 그는 출소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강남에 정현민이라는 가명으로 심리치료센터를 열고,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청소년을 포함한 많은 내담자를 끌어모으기도 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선 성폭력 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은 학교, 학원 등 청소년 관련 시설에 취업 제한이 있지만, 일반 상담소를 차릴 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아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관할 구청에 신고만 하면 누구나 상담소를 열 수도 있다.
이날 토론회에선 상담가의 직업윤리 위반에 대한 사회적·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상민 교수는 “최근 부각되는 상담실 윤리 문제들은 정부가 이제 적극적으로 상담사 자격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신호”라며 “장기적으론 국가 차원의 상담자격증을 도입하는 한편, 상담소 개설 허가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인 자격증에 따른 의무가 있어야 문제가 있을 때 자격 박탈을 통해 상담 업무를 중지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책임연구원도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담실의 특수한 맥락을 고려해 상담실 성폭력을 처벌해야 할 것”이라며 “성폭력 예방과 처벌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성립되기 어려운 상황들을 고려하는 사례가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남은주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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