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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가앞에 왜 뾰족한 쇠 붙인 석재말뚝 박았을까?

등록 2016-09-21 18:50수정 2016-09-22 15:50

지난 9월초께 서울 종로구 ㅍ극장 앞에 세트앵커 9개가 박힌 석재볼라드 6개가 설치됐다. 19일 오후 한 노인이 볼라드 위에 종이널빤지를 깔고 앉아 있다. 대낮에 노인들이 주로 이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상인들이 이런 볼라드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9월초께 서울 종로구 ㅍ극장 앞에 세트앵커 9개가 박힌 석재볼라드 6개가 설치됐다. 19일 오후 한 노인이 볼라드 위에 종이널빤지를 깔고 앉아 있다. 대낮에 노인들이 주로 이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상인들이 이런 볼라드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종로 ㅍ극장건물 상인들이 설치
노인·노숙인 몰려들지 못하게 해
상인들 “노인들 흡연에 술판 벌여
상가손님 점점 줄어 어쩔수없이…”
시민들 견해도 엇갈려
“노인 혐오 씁쓸” “장사하는 맘 이해”
“왜 이렇게 뾰족하게 튀어나왔어. 못 보던 건데….”

20일 낮, 서울 종로구 돈의동 인근의 ㅍ극장 건물 앞에서 앉을 곳을 찾던 황아무개(83)씨는 건물 입구에 놓인 직사각형 모양의 석재볼라드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주로 건물 입구나 인도에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되는 평균 높이 40㎝, 가로·세로 각 30㎝규격의 석재볼라드. 유독 이 건물 입구 쪽에 100㎝ 간격으로 설치된 6개의 석재볼라드 위에는 뾰족하게 튀어나온 세트앵커까지 9개씩 박혀 있다.

모서리에 겨우 걸터앉은 황씨는 “서울 시내에 마땅히 갈 곳이 없어 탑골공원이나 극장 앞에 자주 나온다”며 “집에 있으면 적적해 여기서 만난 동년배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한잔 하게 된다”고 말했다. 오후가 되자, 머리카락이 희끗한 70~80대 남성 30여명이 건물 입구 쪽에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거나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이들은 바닥에 신문지나 상자를 깔고 앉거나 몇몇은 황씨처럼 석재볼라드 모서리에 간신히 엉덩이를 걸치기도 했다. 인근의 한 식당 주인은 “9월 초쯤 (이곳에 석재볼라드가)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 몇몇 할아버지들이 ‘사람을 앉지 못하게 하려고 설치한 것 같다’고 건물 내 상인들에게 항의했었다”고 말했다.

ㅍ건물은 어쩌다 나사못 같은 게 박힌 도심 속 ‘흉물’을 설치하게 됐을까. 9층짜리 이 건물에는 지하 극장을 비롯해 귀금속 면세점, 치과, 보석 직업 전문학교 등이 들어서 있다. 건물 상인들은 “종로 일대를 찾는 노인과 노숙인들이 유독 이 건물 앞쪽에 몰려들어 술판이 벌어지거나 담배를 피워 손님들 발길이 뜸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할아버지들에게 성매매를 제안하는 ‘박카스 할머니’까지 찾아와서 건물 주변을 맴돌자 일부 상인들이 건물 입구에 차량 진입을 막는 쇠기둥을 설치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내놓았고, 결국 관리사무소가 석재볼라드를 설치했다.

귀금속 상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맞은편 건물에는 경비를 세워 노인이나 노숙인들이 가지 않는다”며 “얼마나 장사가 어렵고 피해가 크면 이렇게까지 했겠느냐”고 호소했다. 실제 맞은편 ㄷ건물에선 경비 노동자들이 수시로 입구 쪽 공간을 오가며 분주하게 공간을 정비하는 모습이었다.

시민들의 생각은 엇갈린다. ㅍ건물 인근에서 만난 정아무개(44)씨는 “장사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도 되지만, 노인과 노숙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 ‘혐오물’을 설치한 꼴”이라고 말했다. 종로에 사무실이 있다는 김아무개(36)씨는 “종로는 노인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는데다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상인들 어려움이 크다”면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설치돼 위험해 보이고, 한국 사회의 노년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ㅍ건물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관리용역업체 등과 소송에 휘말려 건물 내에 공실이 많고 어려운 상황인데, 상권을 활성화하려는 과정에서 임시로 설치한 조형물”이라며 “노인분들이 앉지 못하도록 하려는 조치는 아니었고, 이후에 상인들과 논의해 다른 조형물을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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