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재활용업체가 2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용답동 아름다운가게 되살림터에서 선별 후 폐기하는 헌옷을 포크레인으로 수거해 가고 있다.
소비자들의 중고물품의 거래를 돕는 사회적기업 `마켓인유‘가 올가을 매입해 판매하는 재활용 옷들로 꾸민 화보.
추석 연휴가 끝난 19일 오전 ‘패스트패션’의 흐름을 주도하는 에스피에이(SPA) 브랜드(기획·생산·유통·판매를 모두 도맡아하는 업체) 유니클로의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인 서울 명동 중앙점에서 개점을 준비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평균 2주 단위로 매장에 도착하는 새로운 디자인의 옷들을 전시하고 기존 제품도 고객들의 선호도에 따라 진열 위치를 바꾼다. 이날 매장 곳곳에는 3일간의 반짝 세일을 알리는 사인보드가 내걸렸다. 판매도와 재고 등 세부 조건에 따라 할인 품목과 일정은 수시로 바뀐다. 최저가를 노리다 원하는 색상과 사이즈를 놓치느니 적당한 할인 가격에 “일단 확보하시라”는 홍보담당자의 조언이 이어졌다.
직원들이 `유니클로‘의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인 서울 중구 명동중앙점에서 가을 신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
점심시간을 이용해 매장을 찾은 직장인 한아무개(29)씨는 긴소매 레이온 블라우스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씨는 이 회사가 해마다 디자인을 조금씩 변형해 출시하는 레이온 블라우스의 고정 팬이다. 지난해 입던 비슷한 옷이 있지만 사용감이 느껴져 미덥지 않단다. 수십만원짜리 정장을 새로 마련하긴 어려워도 깔끔한 맵시를 위한 2만9900원의 지출은 어렵지 않다. “적은 돈으로 깔끔한 맵시를 갖출 수 있고 기분전환도 할 수 있어 자주 매장에 들른다”고 말하는 한씨의 답에 불황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에스피에이 브랜드의 성공 이유가 담겨 있다. 고객의 마음과 지갑을 열기 위한 치열한 구애가 벌어지는 매장 한쪽에는 재활용 옷들을 수거하는 하얀 상자가 놓여 있다. 지난해 유니클로는 국내 패션 시장에서 단일 브랜드로는 최초로 1조원의 매출을 돌파해 화제를 모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욕구와 필요에 부응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의 본분이라지만, 매출이 오를수록 더해지는 ‘쓰레기 유발자’라는 오명이 부담스럽지 않을 리 없다. 이 때문에 유니클로가 속한 그룹 ‘패스트 리테일링’은 유니클로 브랜드가 진출한 17개 나라 소비자에게 헌 옷을 수거해 세계 59곳 난민촌에 전하고 있다. 2006년 ‘전 상품 재활용’ 캠페인을 시작한 뒤로 수거된 헌 옷은 11년간 5천만벌에 이르니, 그저 흉내 내기에 그치는 사회공헌사업은 아니어도 담당자들은 한껏 몸을 낮춘다.
`유니클로‘의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인 서울 중구 명동중앙점에 고객들이 가져오는 헌옷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수거하는 재활용함이 놓여 있다.
패스트푸드는 열량을 남기고, 패스트패션은 쓰레기를 남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8년 하루 평균 161.5t(연간 5만4677t)이었던 의류 폐기물은 2014년 213.9t(연간 7만4361t)으로 32.4%가 늘어났다. 새 옷에 밀려난 헌 옷들은 동네 어귀 의류수거함에 버려지기 십상이다. 이 수거함들은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대행을 맡은 업체들이 운영한다. 수거함 내용물의 초기 분류에서 구제 의류 판매업자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옷들은 1㎏당 200~300원에 거래돼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에 수출된다. 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2만9900원짜리 레이온 블라우스는 그저 127g, 약 40원의 의류폐기물로 그 신분이 수직하강한다.
다양한 물품의 재활용을 돕는 시민단체 `아름다운가게‘의 서울 성동구 용답동 되살림터에서 7일 오후 직원들이 기증받은 헌옷 등을 분류하고 있다.
미국의 트렌드 분석가인 페이스 팝콘은 일찍이 21세기 대중의 소비 흐름을 지배할 트렌드 중 하나로 ‘작은 사치’를 지적했다. 이는 바쁘고 스트레스에 짓눌린 사람들이 손쉬운 만족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사치를 누림으로써 자기 보상을 한다는 경향을 일컫는다. 소비의 순간 분비되는 잠깐의 쾌감이 진정 나를 위로할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성탄 전야 미사에서 ‘본질을 보고 행동하라’고 강조했다. “소비주의, 쾌락주의, 부유함과 사치함, 외모지상주의와 자기애에 너무나 자주 취해 있는 이 사회”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소박하면서 균형 잡힌 태도로 무엇이 본질인지를 보고 행하라”는 가르침이다.
`아름다운가게‘의 서울 성동구 용답동 본점에 기증받은 헌옷 등을 재료로 다시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모양은 같으나 재활용 소재에 따라 색상 재질 등이 제각각이다.
`아름다운가게‘의 서울 성동구 용답동 본점에 기증받은 헌옷 등을 재료로 다시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모양은 같으나 재활용 소재에 따라 색상 재질 등이 제각각이다.
기사 들머리 화보 촬영에 쓰인 옷들은 모두 소비자들의 중고 물품 거래를 돕는 사회적기업 `마켓인유’가 올가을 매입한 헌 옷들이다. 아직 버려지기엔 아깝고 고운 옷들이 다시 자신의 매력을 뽐내며 카메라 앞에 섰다. 가을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당신의 옷장을 열어보자. 그 옷장에도 쓰레기가 되기에는 아직 억울한 어여쁜 옷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사진 이정아 김명진 기자 lee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