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운데)와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왼쪽), 이정미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가 5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백남기 농민 상설특검 요구안을 제출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 이후 가열된 부검과 사망진단서 논란이 사태의 본질인 ‘국가폭력’ 문제를 뒤덮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데는 시위진압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에 미온적인 검찰의 책임이 크다.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시위 현장에서 백씨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에 빠지자 가족들은 나흘 뒤인 18일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과 구은수 당시 서울청장 등 경찰 7명을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금까지 주요 피고발인들을 부르지 않고 있다. 고발 7개월 만인 지난 6월 현장 지휘관인 당시 4기동단장을 비롯해 4기동단 기동장비계장과 살수요원 2명 등 총 4명을 한차례씩 불러 조사했을 뿐이다. 검찰은 이번주 장향진 전 서울청 차장을 부를 예정이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당시 집회를 주도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수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당시 검찰은 사건 한달도 안 된 지난해 12월11일 한 위원장을 구속 기소했고, 그는 지난 7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훈시규정이라 강제성은 없지만, 형사소송법상 고소고발사건이 석달 내 수사를 완료해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게 되어있는 것에 견줘보면 유족 쪽 고발사건에 대해선 유난히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찰의 수사 태만에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지난달 2일 “수사가 지금과 같이 더디게 진행된다면 진상규명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유엔(UN) 인권이사회의 인권 특보 4명도 지난달 28일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완전하고 독립적인 수사를 촉구한다”고 검찰을 압박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사정이 있겠지만 아쉽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 수사엔 미적대던 검찰이 백씨가 숨진 뒤 부검집행엔 의욕을 보이자 유족들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10개월째 수사다운 수사 한번 하지 않다가 부검 ‘조건부 영장’이 발부되자 이제와 피고발인 소환계획을 내놓는 검찰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건 당사자인 경찰로 하여금 부검영장을 신청하게 하고 집행도 맡기고 있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변사 사건의 처리는 경찰이 집행하고 검찰이 지휘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특수한 경우에는 검찰이 직접 챙기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 하면서 유족의 불신을 키웠고, 이런 불신이 부검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법원도 경찰의 행위가 위법했다고 인정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데 검찰은 300일 넘게 수사를 안해 논란을 더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승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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