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속 수도권 집값 이상급등
‘열 채 갖기 캠페인’ 투기 열풍
작년말부터 외지인들 삼삼오오
20평대 ‘전세낀 매물’ 싹쓸이
1만8000채중 1000채 거래돼
투기꾼 수도권 소형아파트 겨냥
“지금 아파트 거래 80% 갭 투자”
집값 뛰고 전셋값 상승 부추겨
‘열 채 갖기 캠페인’ 투기 열풍
작년말부터 외지인들 삼삼오오
20평대 ‘전세낀 매물’ 싹쓸이
1만8000채중 1000채 거래돼
투기꾼 수도권 소형아파트 겨냥
“지금 아파트 거래 80% 갭 투자”
집값 뛰고 전셋값 상승 부추겨
“‘내 집 열 채 갖기 캠페인’이라고 들어보셨어요?”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아무개(58)씨는 지난봄 다른 지역에서 아파트를 사러 온 일행을 안내하다 이 얘기를 듣고 자기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이씨는 “얼마나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인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요즘 분위기를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고 말했다.
20년 전 개발된 화정은 수도권 신도시 가운데 유독 집값이 안정된 곳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해 지난 9월 말 20평형대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50% 뛰었다. 전셋값은 상승폭이 더 커서, 집값의 90%를 돌파했다. 개발 호재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지각변동’이 시작된 시기는 낯선 이들의 무더기 출현 시기와 겹친다. 이씨는 “서너명이 택시에서 내려 사무실로 몰려 들어오는 일이 갈수록 빈번해졌다”며 “중개업자들은 그들을 ‘투자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외지인들은 20평형대로만 구성된 특정 단지에서 전세 낀 매물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그 뒤 20평형대가 섞인 다른 단지로 옮겨갔다가, 그마저 매물이 바닥나자 30평형대 단지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 지역 중개업소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0개월 사이 화정의 아파트 1만8000채 가운데 1000채 정도가 그렇게 거래됐다. 20평형대로만 구성된 단지는 2800채 가운데 600채(약 21%)나 된다.
일단 거래가 이뤄지면 ‘갭(Gap) 투자’의 공식이 충실히 적용된다. 갭 투자란 전셋값과 집값의 차이를 이용해 전세 끼고 집을 사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투자자들에 의해 매물이 마르니 집값부터 뛴다. 투자자들은 곧바로 전세 보증금을 집값의 90% 이상으로 올린다. 전셋값 상승은 다시 집값을 밀어 올린다. 투자자로서는 집 한 채 값이면 10채를 살 수 있고, 앉아서 돈도 버는 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이런 현상은 정도만 덜할 뿐 다른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인근 일산 후곡마을 32평형대에서 사는 김아무개(49)씨는 연초 3억원대 초반이었던 집을 지난 8월 외지인에게 4억원에 팔았다. 그러고는 매수자의 제안으로 같은 집에서 3억6000만원에 전세로 산다. 대전시 월평동의 22년 된 32평형 아파트에서 전세를 사는 김아무개(54)씨는 지난 7월 외지인으로 집주인이 바뀌면서 보증금을 1억7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올려줘야 했다. 매매가는 2억1600만원이었다.
이들 지역은 공통점이 있다. 지은 지 20년 안팎 된 소형 평형 아파트가 많은 수도권이나 지방 대도시의 주변부라는 점이다. 공통점은 투자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상당수가 부산·대구를 비롯한 영남지역 사람들이다. 일산 후곡마을에 사는 김씨는 “주말에 2~3명씩 조를 짠 ‘대구 아줌마들’과 ‘부산 아줌마들’이 잇따라 집을 보러 왔다”고 했다. 대전의 김씨도 “바뀐 집주인은 부산 여성이었는데 이 집을 산 뒤에도 여러 사람들과 몰려다니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했다.
경기 군포시 산본에서 중개업을 하는 안아무개(49)씨는 “그들은 한 지역만 하는 게 아니라 수도권을 한 바퀴 다 돈 다음 지방을 돌아 다시 수도권으로 올라온다”며 “집값도 계속 오르고 전셋값은 더 올라 한 번 다녀가도 얼마 뒤에 다시 ‘먹을 것’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만난 투자자들은 적게는 10채 안팎, 많으면 100채 넘게도 갖고 있다”며 “잔금을 치르기도 전에 투자금이 빠지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렇게 번 돈을 다시 투자해 몇 년만 꾸준히 사다 보면 100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이런 식의 투자는 부산의 한 부동산 경매학원이 효시였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화정의 중개업자 이씨는 “2013년쯤에도 외지인들이 몰려와 20평형대 집값이 20% 정도 뛴 적이 있는데, 처음엔 부산 사람들만 오다가 인근 김해나 창원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투자자들한테서 부산의 한 부동산 경매학원에서 컨설팅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서점에는 <나는 갭 투자로 300채 집주인이 되었다> 같은 제목의 책까지 나와 있다.
산본의 중개업자 안씨는 4년 전쯤 부산에서 찾아온 ‘투자의 달인’을 회고했다. “그분이 여러 사람과 함께 찾아와 지역과 매입 조건을 찍어 줘서 제가 현장 조사를 한 다음 동행을 했어요.” 그 뒤로 안씨는 수원시 영통과 90년대에 조성된 수도권 4대 신도시에서 갭 투자를 알선하고 직접 투자도 하고 있다. 처음 인연을 맺은 이들과는 지금도 인터넷 카페와 술 자리, 축구 경기장 등에서 꾸준히 우의를 다지며 투자 정보를 나누거나 함께 발품을 판다.
요즘 화정에는 영남권을 넘어 충청권에서도 투자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중개업자 이씨에게 ‘내 집 열 채 갖기 캠페인’이라는 말을 전한 건 서울 용산에서 온 30대 남성들이었다고 한다. 산본의 안씨는 “투자자들도 이미 전국화했고, 여기에 법인들까지 가세했다”며 “지금 거래되는 아파트의 80%는 갭 투자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광풍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산본의 안씨는 “금리가 크게 오르지 않는 한 앞으로도 먹을 것은 계속 생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면 화정의 이씨는 “다들 대출받아서 하는 투자여서 반드시 거품이 터지게 돼 있다”며 “세입자는 전세 보증금이라도 건지려면 부동산 경매라도 배워두라”고 권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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