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와 전세버스 운전자는 운행 전 비상망치 등 안전장비 위치를 승객들에게 안내해야 한다. 한일고속 누리집 갈무리.
‘비상망치’만 찾았더라면….
13일 밤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 언양 분기점 부근에서 관광버스에 불이 나 승객 1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도로 중앙에 설치된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면서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았는데요, 하나밖에 없는 출입문이 가드레일에 막혀 열리지 않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습니다. 승객 9명과 운전자 등 생존자 10명은 운전석 옆에 있던 소화기로 유리창을 깨고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합니다.
평소 버스나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분이라면 좌석 위에 달린 ‘비상망치’를 기억하실 겁니다. 탈출할 때 유리창을 깰 수 있도록 차안에 비치한 안전장비인데요, 왜 이번 사고에서 ‘비상망치’는 무용지물이 되었을까요?
<연합뉴스> 등 언론에 보도된 생존자와 목격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사고 직후 승객들은 “비상망치가 어디 있느냐”고 계속 소리쳤지만 안내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버스 안에 전등이 꺼지고 연기가 가득차 시야도 어두웠습니다. 한 생존자는 “그나마 버스 앞부분에 탄 승객은 소화기로 창문 등을 깨고 탈출했는데,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숨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은 정원 16명 이상이면서 별도의 비상구가 없는 차량 안에는 반드시 4개 이상의 ‘비상탈출용 망치’를 비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상망치’가 달려야 할 위치까지 정해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탈출 방법 등을 적은 표지를 각각의 장구 또는 덮개에 붙이도록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차체가 긴 대형 버스는 중간 좌석과 뒷 좌석에 2개씩 총 4개를 비치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관광버스는 울산 태화관광 소속으로 47인승 대형버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울산 태화관광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버스 내부 사진을 보면 뒷좌석 위에 비상망치가 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울산 울주경찰서는 사고 버스에 실제로 비상망치가 달려있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승객 입장에서 자신의 좌석 가까이가 아니라면, ‘비상망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시외버스와 전세버스 운전기사가 운행 전에 승객들에게 사고 시 대처 요령과 비상망치·소화기 등 안전장치의 위치, 사용방법 등을 안내 방송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어길 땐 사업자에겐 과징금을, 운전기사에겐 과태료를 부과하게 됩니다.
과연 현장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 걸까요. 이번 사고를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4월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가 시에 등록된 전세버스 4000여대를 조사해보니 1083건의 불법 행위가 적발됐다고 합니다. 차고지 외 밤샘주차가 663건으로 가장 많았는데 아예 ‘비상망치’를 비치하지 않은 사례도 72건이나 됐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민간단체를 독려해 안전사항 안내방송을 대체할 동영상을 제작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11월 말께 전국적으로 배포가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부디 이번 사고처럼 ‘비상망치’를 애타게 찾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