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페이스북 페이지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운영진 인터뷰
페이스북 페이지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운영진 인터뷰
강남역 살인사건(5월17일) 11일 전인 5월6일, ‘바람계곡의 페미니즘’은 태어났다. “성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여성의 현실을 드러낸다”는 그들의 존재 이유는 마치 비극을 예견한 듯했다. 그 후 여성 혐오와 이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이슈는 ‘메갈리아 티셔츠 인증과 넥슨 성우 교체 사태’ 등을 거치며 더욱 달아올랐다. 여성 혐오와 차별을 두고 벌어진 맹렬한 논쟁 속에서 바람계곡의 페미니즘은 “비난이나 혐오가 아닌 방식으로”(이나영 중앙대 교수) 2030과 소통했다. 페이스북 ‘좋아요’ 수 1만4000개. 이제 그들은 스스로를 “발언 권력”으로 경계하는 수준이 됐다. 기존 미디어들도 페미니즘 관련 이슈가 벌어지면 그들의 분석과 평가를 듣고 인용한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동안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너는 메갈리아인가’라는 질문을 넘어섰을까? 아직 그 질문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혹은 벗어날 수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메갈리아 논쟁(7월19일 넥슨 성우 교체로 촉발) 이후 3개월이 흐른 지금, 여성 차별과 혐오의 깊은 골짜기에서 울리는 바람계곡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보았다.
“추모 장소에서 그따위 짓거리 하는 거 자체가 범죄에 가까운 행위라는 점에서 볼 때, 오히려 솔직한 녀석들이죠. 걔들은 이미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현재적 범죄자니까요. 손뼉이라도 쳐주지 그러셨어요?”
“잠깐만요. 제가 맞춰 볼까요? 페미니즘이고 여성운동이고 다 좋은데, 왜 죄 없는 남성들까지 일반화를 하려 드는지 모르겠다고 했겠죠?”
강남역 살인사건을 경험한 여성들은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거리로 나왔다. 더는 남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다. “한번 다른 세상을 보게 된 여성은 결코 이전의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연합뉴스
“사실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사건 직후 남성들의 반응이 더 경악스러웠어요. ‘일부 남성’이라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남성들이 저마다 자기만은 결백하다며 ‘모든 남성을 일반화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었어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 지적하는 것은 남성들 모두가 범죄자나 다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밤거리에서 어떤 남성과 마주치든 일단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입장과, 여성을 폭행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남성의 입장은 애초부터 다르다는 의미인 거죠. 여성이 조심하지 않아서 강간당했다?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아서 살해당했다? 21세기인 요즘에도 너무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말들이잖아요. 여성을 상대로 작동하는 거대한 성차별 구조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왜 여성들이 이런 부당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어요. 그러나 남성들 대부분은 ‘나는 결백하다’에서 생각을 멈추죠. 생각을 멈추지 말고 더 고민하라고 요구하고 싶었어요. 고민하지 않으면 이 폭력과 죽음의 행렬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일상의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드러난 계기가 됐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인 추모 포트스잇을 모은 이주영 작가의 ‘강남역 10번 출구 포스트잇 아카이브’ 전시.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여성의 ‘불편함’ 풀어보려 개설
“나는 결백하다”는 남성들 향해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성찰 요구
5개월 만에 ‘좋아요’ 1만4000명 미디어 속 일상적 차별에 주목
“메갈리아는 혐오에 저항한 무기이고
영향 컸지만 거친 언어는 취향 아냐”
인신공격 두려워 메신저 인터뷰
“기자님도 메갈로 몰릴 각오 하셔야” 바람계곡의 페미니즘은 첫 게시물에 페이지의 지향을 이렇게 썼다. “모든 여성들이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엄하길, 모든 인간들이 인간이기 이전에 각자의 성(性)으로 존엄하길, 나아가 모든 존재들이 목적도 수단도 아닌 자신의 존재함으로 행복하길.” 운영자들은 이름도 직업도 밝히지 않는다. 페미니즘을 말하지만 자신들이 여성이라고 못박지도 않았다. 글이 주목받으면서 그들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끝내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여성혐오와 차별을 놓고 대논쟁을 거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일이 오히려 위험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전달한 인터뷰 요청에, 예상대로 직접 만나긴 어렵다는 답변이 왔다. 인터뷰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하고 질문지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그들이 누구인지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얻지 못했다. -페이지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다섯 운영자들 모두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이 세상 속 고통과 슬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주인공 나우시카의 이미지가 와 닿았어요. 바람 속에서 오롯이 서 있는 ‘바람계곡’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우리의 첫 마음가짐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기도 했고요.”
“모두 성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여성의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었고요. 메르스갤러리와 메갈리아 이용자들의 목소리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무엇보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이 예민한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즈음 온라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다고 말씀드릴게요.”
“신상정보가 노출되는 데 매우 민감해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는 밝히기 힘들 것 같아요. 다섯명 직업은 다 달라요.”
“저희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쪽 페이지 운영자들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여성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남초 커뮤니티 따위에 뜨면 성희롱과 인신공격으로 마구 능욕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어요. 트위터엔 그런 능욕을 하는 계정들이 많은데 경찰은 수사는커녕 뒷짐지고 방관만 합니다. 한마디로 두려워요. 대면 인터뷰는 물론이고 이메일 인터뷰도 하지 않아요. <한겨레>와는 페이스북 메시지라는 비교적 안전한 수단이 있어서 승낙한 거고요.”
“미디어 속 성차별적 요소들이 몹시 불편했어요. 그런 불편함을 드러내는 게 결코 예민하거나 까탈스런 행동이 아니라는 걸 메르스갤러리나 메갈리아를 통해 알게 됐죠.”
“‘분노한 남자들’(8월27일)이란 기사를 실었던 <시사인>은 정말 분노한 남자들 때문에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었어요. 아직은 페미니즘보다 여성혐오가 돈이 되는 시대예요. 운영자들끼리 농담처럼 이런 얘기도 했어요. ‘우리 답변이 마구 칼질돼서 나가면 인터뷰 전문을 아예 공개해버리자’고. 미리 말해두지만 이 인터뷰가 여과 없이 나가게 된다면 해당 기사 댓글창엔 여성혐오자들이 모여 난동을 부릴 겁니다. 기자님은 ‘메갈’로 몰릴지도 몰라요.”
“가끔씩 들어오긴 하는데, 철저히 무시해요. 우리는 메갈리안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몰라요. 그래서 “넌 메갈리아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어요. 그리고 그런 질문에 깔린 의도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넌 메갈리아인가?’라는 물음은 6·25 전쟁 시절 총부리를 들이대며 ‘넌 (남과 북 중) 어느 편인가?’라고 물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사상 검증’이에요. 남한과 북한 어느 한쪽의 체제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물음에 사상의 자유란 없어요. 마찬가지로 ‘넌 메갈리아인가?’라는 물음엔 메갈리안이 되든지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서든지, 이 두 경우의 수 말고는 없어요. 물음을 가장한 낙인인 거죠.”
“메르스갤러리와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이 책 속에서만 있는 지식이 아니라 여성의 생생한 일상 속에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줬어요. 두 곳은 할 말 많은 여성들의 사랑방이기도 했지만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겨누는 무기를 만들어내는 대장간 역할을 했어요. 저희는 그런 움직임에 크게 감화를 받은 사람들이고요.”
여성을 향한 위협은 현재진행형
미러링은 컴퓨터만 끄면 끝난다
“혐오로 대응하지 말라는 말은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외침
1년 전엔 상상 못한 진전
온·오프 여성운동 연대 고민중
“계속 바위에 달걀을 던지면
바위가 있다는 사실 깨닫겠죠” -메갈리아나 메르스갤러리와는 무엇이 다른가요?
“둘 다 인터넷 커뮤니티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데 그들 중엔 차분한 사람도, 흥분한 사람도 있어요. 저희는 분노한 여성들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긍정할 수 있었어요. 거칠지 않은 언어로 분노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언어는 저희 취향은 아니에요. 메르스갤러리나 메갈리아가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이들이라면 저흰 그 바위가 왜 달걀을 맞아야 하는지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쪽이에요. 저희는 미러링을 하지 않아요. 나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불의에 맞선 저항이 항상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 묻고 싶네요. 동학농민운동이든 3·1운동이든 4·19든 5·18이든 6월항쟁이든 광우병 촛불집회든 민중총궐기든 그들에게는 죄다 폭도들의 난동일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폭력이 실제로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를 겁니다. 왜냐면 폭력이 실제로 있었으니까. 시민군이 공수부대와 시가전을 벌인 5·18도,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난무한 6월항쟁도, 경찰 버스를 부순 민중총궐기도 전부 불법 폭력 집회일 겁니다. 왜냐면 폭력이 실제로 있었으니까요.”
“폭력이 벌어진 사회적 맥락을 따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불의에 맞선 저항을 폭력이라 부르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폭력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것들이 전체주의적 권력 집단에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 위에 있었기 때문이죠. 오직 가장 큰 폭력의 편에 선 존재들만이 폭력을 ‘허용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구분하는 ‘폭력’을 휘두를 수 있어요. 국가 폭력의 편에 선 사람들은 정부에 맞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저항을 얼마든지 폭력으로 낙인찍을 수 있어요.”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페미니즘의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애초에 혐오 대 혐오라는 구도 자체가 틀린 겁니다. 둘은 동급이 아니에요. 여성혐오는 현실 속에서 다양한 차별과 폭력의 형태로 여성을 억압합니다. 그러나 미러링은 컴퓨터만 끄면 벗어날 수 있어요. 여성은 강간당할까 두려워 밤거리를 다니지 못하지만 미러링이 두려워 컴퓨터를 켜지 못하는 남성은 없어요. 미러링은 이미 적잖은 학자들이 지적했듯 남성 중심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폭로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니 남성 중심 사회가 부여한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은 남자들에게 미러링은 적잖이 불편할 것이고 ‘폭력’으로 느껴지겠죠.”
“사실 그들이 느끼는 건 불편함이 아니라 ‘괘씸함’입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을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실제로 저희에게 ‘여성 인권의 성장은 남성 권리가 줄어든 것과 같다’는 메시지를 보내온 남성도 있었어요.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내 어머니의 인권이 증가해도 내겐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인권마저 제로섬 게임이라는 경제 논리로 받아들이는 거죠. 당연한 얘기겠지만 인권은 윈윈 게임이지 제로섬 게임이 아니에요. 여성 인권의 신장은 남성의 인권 신장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요.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일은 남성에게도 명백한 이득입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그걸 몰라요. 일부러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가부장제 사회가 남성에게 부여한 기득권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아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드네요. 왜 성범죄 가해자의 대부분은 남성일까요? 왜 성구매자의 대부분은 남성일까요? 왜 고위급 공무원과 기업 임원은 대부분 남성일까요? 왜 남성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하지 않아도 비난받지 않을까요? 여성은 남성의 신체를 멋대로 품평했다간 엄청난 비난에 휩싸입니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했다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난받는 여성을 기억하시죠? 그런데 남성은 얼마든지 여성의 신체에 등급을 매겨 품평할 수 있고 그걸 당연하게 여겨요. 이른바 젠더 기득권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겠어요? 자기 손에 든 떡을 빼앗아 먹으려는 불량배쯤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여자가 어딜 감히 남자한테 대들어?’라고는 말 못해요. 시대가 변했거든요. 그래서 대신 이렇게 말해요.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지 말라.’ 성차별이고 뭐고 그만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예요. 그래야 자신의 기득권이 무사하니까.”
“정말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겼다면 일단 페미니즘이란 어려운 단어 자체는 잊어버리세요.”
“어머니도 좋고 배우자도 좋고 누나나 동생도 좋아요. 먼저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세요. 여성의 일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놀라움의 연속일 거예요. ‘몰카 때문에 공중화장실에 갈 때마다 주변을 꼼꼼히 수색한다고요?’ ‘살면서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다들 한번씩은 있다고요?’ ‘몸에 붙는 옷을 입으면 남자들이 뚫어지게 바라본다고요?’ ‘택시에서 내릴 때 카드로 계산하려고 하면 거부당한다고요?’ ‘화장 안 하고 출근하면 예의 없다는 소릴 듣는다고요?’ 등등등.”
“충분히 들은 다음엔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요.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한다든가, 성매매를 하지 않는다든가, 성희롱과 다를 바 없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든가, 성폭행 피해자를 ‘꽃뱀’이라 부르지 않는다든가…. 전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죠? 당연해요. 페미니즘은 어려운 이론일 수 있지만 그것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거든요.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겼다면 인간답게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물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질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남성에게 부여된 젠더 기득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생존의 문제예요.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 여성혐오 범죄로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무분별한 성적 대상화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취업 시장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여성들에겐 페미니즘이 필요합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강남역 살인사건과 메갈리아 티셔츠 사태를 겪으며 한국사회는 페미니즘을 두고 유사 이래 가장 맹렬한 논쟁을 벌였다. 페미니즘이 ‘지식시장의 핫한 아이템’이 되는 동안 혐오와 차별은 존엄과 존중으로 옮겨갔을까.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갈무리.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예요. 그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일 수도 있고 세상을 변혁하는 실천일 수도 있어요. 인류의 절반이 여성인데,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고서 무슨 운동을 하겠다는 걸까요? 노동운동이든 인권운동이든 환경운동이든 어떤 소수자운동이든 페미니즘적인 관점이 없으면 반쪽짜리 활동에 지나지 않을 거예요.”
“1년 전과 비교해보세요. 메르스갤러리나 메갈리아를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뒤덮은 이후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지 않았나요? 17년 동안 방관만 하던 경찰을 움직여 소라넷이라는 음란 사이트를 페쇄시킨 건 변화의 일부분에 불과해요. 진짜 변화는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현장에 나와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외친 여성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났어요. 더는 남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하지 않아요. 한번 다른 세상을 보게 된 여성은 결코 이전의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어요. 그것만으로도 지난 1년 동안의 성과는 대단히 커요.”
“물론 가부장제와 성차별 구조가 단시간에 사라지진 않겠죠. 그렇지만 역사는 인간이 파악하기엔 너무나 느린 속도로 진보해요. 수천년 가부장제의 역사를 뒤엎는 데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바위에 달걀을 계속 던져야 해요. 바위를 더럽히기라도 해야 사람들이 저기에 바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에요.”
“운영자들 각자의 생활이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페이지를 운영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단순히 게시물 올리는 것을 넘어 더 큰 틀의 연대를 구성해보고 싶은 고민은 있어요. 기존 여성주의 운동 진영과 메갈리아 또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등장한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의 연대, 즉 온·오프라인 진영의 연대 없이는 지난 1년 동안의 진전이 흐지부지될지도 몰라요.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아직 답을 찾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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