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서 ‘의제자백’ 개념 이용해 조목조목 문제점 지적
박찬운 한양대 교수
이제 의제자백을 적용할 때다.
(오늘은 현안문제에 대해 한마디 합니다. 그저 공부나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도저히 말하지 않고서는 책장을 넘길 수가 없습니다.)
의제자백이란 말이 있다. 소송상 용어인데 당사자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명백히 다투지 아니할 때 자백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소송의 원칙은 당사자 일방이 법률상 중요한 주장을 하면 상대방은 이에 대해 적절히 답변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해진 기간 내에 답변을 하지 않거나 변론기일에 참석도 하지 않으면 법원은 의제자백으로 간주하고 심리를 종결한다.
법률가 입장에서 요즘 돌아가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이제 사태는 임계점을 넘어 의제자백론을 적용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메가톤급 의혹사건이 아닌가.
지금 야권과 언론은 연일 최순실이라는 대통령의 최측근(수족이 아닌 오장육부라고 함)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순실이 청와대를 등에 업고 기업들로부터 수백 억 원의 삥을 뜯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을 만든 다음 사유화했다는 것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독일에서 승마훈련을 받는데 방 20개가 달린 호텔 전체를 얻어서 사용하고 재단 직원 10여명이 수행했다고 한다. 가히 국가원수급 예우다. 이화여대의 입학과 학사관리는 온통 의혹 덩어리다. 이대에 들어올 수 없는 친구가 들어왔고, 출석도 하지 않고, 시험도 보지 않고, 과제도 제대로 내지 않은 학생에게 학점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게 만일 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부당행위를 넘어 범죄행위이고 그 책임은 종국적으로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그 직을 유지할 수 없다. 내려와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면 대통령을 포함해 관련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대통령으로선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 모든 법적 절차를 동원해서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의혹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대통령을 괴롭힌 의혹 제기자들에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말이 없다. 청와대는 간간이 사실무근이라는 말만 할 뿐 어떤 유의미한 해명도 하지 않았다. 묵묵부답이다. 국회에선 야당이 최순실을 포함해 의혹의 핵심들을 불러 진상을 알아보자고 하는 데도 여당은 막무가내로 반대한다. 당사자인 최순실과 그 하수인 격인 차은택이란 친구는 지금 어디에 숨었는지 그 행방마저 묘연하다. 민족사학 이대 총장은 무엇이 그리 찔리는 게 있는지 국회엔 결코 나오지 않을 모양이다. 돈을 걷는데 집사역할을 한 전경련 부회장 이승철은 어디서 코치를 받았는지 국회에 나와선 수사 중이니 할 말이 없다는 말만 하고 돌아갔다.
상황이 이 정도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이제 의혹이 아니라 사실로 확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련자 모두가 사실상 자백한 거나 마찬가지다. 의제자백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관련자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 국가기관이 움직여야 한다. 검찰은 당장 수사를 해 관련자를 사법처리해야 한다. 국회는 헌법에 따른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어야 한다.
만일 이런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 결국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내년 대선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선거만으론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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