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열 경북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1순위로 경북대 총장 후보에 추천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2순위였던 김상동 수학과 교수를 총장에 임명했다. 경북대 캠퍼스 자신의 연구소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이는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처사”라며 “정부는 왜 나를 배제했는지 당당하게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토요판] 뉴스분석 왜?
총장 1순위 후보였다 탈락한 김사열 경북대 교수 인터뷰
▶ 지난 21일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이상 공석이던 경북대 총장을 임명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총장임용추천위원회에서 뽑은 1순위가 아닌 2순위 후보였다. 대학의 의사는 끝내 묵살되고 말았다. 교육부와 청와대는 1순위 후보를 끝내 배제한 이유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1순위 후보의 정치적 성향을 청와대 비선에서 문제삼았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1순위 후보자 김사열(60·생명과학부) 교수를 26일 오후 대구 산격동 경북대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결국 정부가 대학이 추천한 1순위를 제쳐놓고 2순위 후보(김상동 수학과 교수·57)를 임명했다. 거부당한 1순위 후보로서 심정이 착잡할 것 같다.
“이 정부가 (경북대)교수회(의장 윤재석·사학과)와 총장 임명 문제를 놓고 대화를 시작하면서 순리적으로 풀겠다고 얘기했다. 그래 놓고 이런 결과를 내놓으니 굉장히 실망스럽다. 이것은 결과적 기만이고, 사기다. 교육부 관리들은 대화를 시작할 때는 이럴 줄 몰랐고, 청와대에서 그렇게 했다고 얘기할지 몰라도 그것은 무책임한 얘기다. 그건 자기들이 정권의 하수인이나 같은 패거리라는 얘기밖에 더 되나.” -정부는 2명의 후보 중 아무나 임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물론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 면에는 헌법과 법률에 명시돼 있는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게 있다. 다른 정부에서는 이 두가지가 잘 조화돼서 지켜져왔다. 이 정부에서는 대통령 임명권을 우선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2위 후보자를 총장으로 임명한 것이 벌써 다섯번째다. 총장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1위 후보를 배제하면서 이유조차 밝히지 않는 것은 불법은 아니더라도 매우 불합리한 조처다. 정치적 행위니까, 당신의 정치적 성향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당당하게 말하면 된다.”
경북대는 2014년 10월 학교 구성원(36명)과 외부인사(12명)로 구성된 총장임용추천위원회에서 김사열(29표), 김상동(19표) 교수를 1순위와 2순위 후보로 선출했다. 교육부는 그해 12월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총장 임명 제청을 거부했다. 교육부는 김사열 교수가 낸 ‘임용제청 거부 처분 취소’ 소송(1심)에서 지난해 8월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정치권력 눈치 보는 사법부”
-교육부와는 어떻게 대화가 이뤄졌나?
“총선 직후인 지난 5월에 부산대 총장 문제가 풀렸다. 직선제로 총장 후보를 뽑은 부산대에 대해 정부가 6개월 동안 임명을 안 하고 끌다가 선거로 지역의 정치지형이 바뀌자 1순위자를 받아들였다. 그다음에 남은 대학 중 큰 데가 경북대인데 교육부가 지난 6월 교수회에 대화하자고 제의해 시작됐다. ‘순리적으로 대화로 풀겠다’고 얘기가 됐다더라. 그래서 후보를 다시 선정하지 않고 2년 전에 뽑은 후보 2명을 재추천하는 방식으로 했다.”
-순리대로 하겠다는 건 1순위 후보를 지명하겠다는 뜻이었나?
“그렇다. 내가 교수회 의장한테 듣기로는 1순위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옛날에 직선제할 때도 무순위로 했기에 이건 문제가 안 된다, 순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순위를)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교육부 사람들이 얘기했다고 하더라. 그래 놓고 뒤통수를 쳤다. 대화로 풀자고 해놓고, 자기들 이득만 챙기고 가버리는 것은 사기꾼이나 하는 짓이다. 나는 교육부 관료가 사기꾼이라고 본다.”
-재판은 어떻게 돼 가고 있나?
“제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은 원래 벌써 끝났어야 한다. 2심(서울고법) 선고 전날 법원 인사가 있어서 연기됐는데, 그 후에는 아직 재판관조차 선정이 안 됐다. 변호사에 따르면, 이 재판은 제가 무조건 이기게 돼 있다. 왜냐하면 장관이 임명 제청을 거부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 것은 법적으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총장 임명으로 제 재판은 원인이 소멸됐기 때문에 결론도 못 내리고 끝나게 됐다.”
-1심 승소가 지난해 8월이었는데 지금까지 2심 재판부도 안 정하고 있었던 것은 문제 아닌가?
“제 변호사(장윤기 전 대법관)가 왜 재판이 안 되고 있느냐고 법원에 물으니까 ‘공주대와 방송통신대 재판에 대한 대법원 결정이 나오면 하겠다’고 하더란다. 법조인들에 따르면 두 대학 건도 원래 대법원에서 기각할 사안이라고 한다. 복잡하거나 법률을 재해석할 여지가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붙들어놓은 채 진행을 안 하고 있다. 이는 법원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비겁하다. 이런 일을 직접 겪어보니 우리나라가 아직 3권분립이 안 돼 있더라.”
-교수회에서는 2순위 임명을 수용한다는 입장이던데?
“교수회 의장은 저한테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더라. 제가 원칙대로 하겠다니까 나를 달래려고 하더라. 제 실수는 교수회가 권유하는 후보 재추천을 수용한 것이다. 2년 동안 총장 공백 상태가 계속돼서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정부한테) 기만을 당했다. 이런 잘못을 두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교육자로서 올바른 것이 아니다. 제가 총장을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대학의 자율성에 관한 문제다. 어제부터 교수 한분이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동조단식하겠다는 교수들도 있다고 들었다.”
영어영문학과의 손광락(57) 교수는 정부가 2순위 후보자를 총장에 임명한 데 항의해 25일 오후부터 경북대 본관 로비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손 교수는 “경북대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스스로 반성하는 차원에서 단식을 시작했다”며 “적어도 왜 1순위 후보를 거부했는지를 정부는 밝혀야 하며, 그 뒤에 대학은 2순위 임명을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 활동 문제삼은 듯”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조심스럽기는 한데 법률적인 것을 알아보고 있다. 그것과 별도로 대통령과 교육부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알리겠다. 또 총장 후보 무순위 추천의 문제를 공론화해 나갈 생각이다. 정부의 대학 길들이기를 바꾸려면 제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제가 총장으로 돌아가는 싸움보다 세상을 바꾸는 이런 일이 더 중요하다. 제가 총장을 하겠다는 것은 세상을 바꿔보려는 것이었다.”
-애초 추천될 때 학교뿐 아니라 사정기관에서도 1순위 후보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했다고 들었다.
“이번 결과를 사실 한달 전쯤에 알았다.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열렸는데, 대학을 담당하는 김용승 교육문화수석이 1순위로 올라온 사람을 임명하는 게 맞다고 얘기했고, 김재원 정무수석도 지역정서 등을 감안할 때 비정상적인 결론을 내면 더 어려워진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 우병우 민정수석이 강력하게 안 된다고 해서 2순위로 정리를 했다고 하더라. 2년 전에 추천 서류가 올라갔을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당시 경찰이나 국정원 등에서도 자기들 나름대로 저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분들이 그때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 잘될 것’이라고 나에게 알려왔다. 실제로 당시 청와대에서 김영한 민정수석이나 김기춘 비서실장도 나에 대해서 오케이했다고 간접적으로 들었다. 마지막에 비선 실세가 틀었다고 하더라.”
-제동을 걸었다는 비선 실세가 누구인지 아는가?
“비선이라는 단어는 들었는데 누군지 모른다.”
-왜 비선에서 틀었다고 보나?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정권에 줄대려는 사람들이 없는 얘기를 지어낸 게 아닌가 싶다. 음주운전을 했네, 동창회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공금을 횡령했네 등등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들이 나돌아 다니기도 했다.”
-현 정부에 반대하는 활동을 문제삼은 것은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무효 활동을 했다는 등의 얘기가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그런 일은 전혀 없다. 이 정부 들어서는 학교 일이 바빠서 바깥 활동을 못 했다. 과거 시민단체 활동을 할 때는 서명을 많이 했다. 참여정부 때 국가보안법 철폐라든가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서명 등 수백건도 더 했다. 그런 게 이유가 될 수 있나. 그런 서명도 안 하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다가 총장이 되면 무슨 일 하겠나. 그런 일 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노무현재단 운영위원 경력 등을 문제삼지 않았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시장과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던 어려울 때 알게 돼서 그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는 좀 도와줬다. 하지만 당선 뒤에는 권력 가까이에 간 적이 없다. 오히려 이라크 파병이나 국가보안법 철폐를 하지 않는 정책에 반대하는 글을 기고하는 등 비판을 했다. 어떤 권력이든 견제를 하는 게 지식인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이 돌아가신 뒤 재단을 만드는 데 도와달라고 해서 예비 모임에 한번 나갔다가 사람이 많길래 나는 안 해도 되겠다고 해서 다음부터는 빠졌다. 제 짐작에도 그런 경력을 문제삼은 것 같은데, 노무현재단에 이름 잠깐 낸 것이 무슨 죄가 되어야 하나.”
김사열 교수는 대구 계성고와 경북대 사범대 생물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귀국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객원선임연구원으로 있다가 2000년부터 모교인 경북대 교수에 임용됐다. 그는 대구 민예총 회장(2005~2009년)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대표(2007~2009년)를 역임하는 등 여러 사회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해왔다.
공주대는 32개월째 총장 공석
-많은 사회활동을 한 계기는 뭔가?
“대학 다닐 때 탈춤반을 만들어 회장을 하고, 졸업 뒤에는 극단을 만들어 대표를 맡았다. 공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니까 극단 활동을 계속하던 후배들이 ‘같이합시다’라고 하더라. 빚진 마음이 들어서 대구 민예총 회장을 맡는 등 자연스레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때는 좀생이여서 연극만 했지 사회현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하지도 않은 데모를 했다고 경찰에 잡혀가서 40일 구류를 살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철이 들고 인생의 배움을 얻었다. 이 정도 사회활동은 지식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장을 하면 어떤 일을 하려고 했나?
“총장이 되면 해보고 싶었던 첫번째 일은 청소부와 경비원, 주차관리원 등을 대학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경북대도 이런 일을 모두 외주를 줬다. 이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것은 총장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생협 멤버로 한다든지 해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학문 후속 세대에게 롤모델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대학이 이런 것을 바꿔야 한다. 둘째는 학생들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교수가 갑인데, 유럽은 학과 회의에 학생 대표가 들어온다. 그러면 대학 사회가 달라진다. 셋째는 경북대의 국제지수를 높여야 한다. 영어와 중국어 등 동시 수강과목을 만들고, 외국인 교수에게도 보직을 줄 계획이었다. 또 상주캠퍼스가 상당히 약해졌는데 상주시와 협력해서 살려야 한다.”
-이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권은 짧고 정의의 역사는 길다. 대학을 길들이려 하거나 정치권의 입맛대로 다루려는 시도는 다 실패했다. 역사가 보여줬다. 특히 나라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에서 불법적이고 불순한 행위, 합리적이지 않은 일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을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에 강요는 안 된다. 그것은 나라의 불행이고, 정권의 불행이고, 우리의 불행이다. 때로는 일시적으로 쇠퇴하고 머무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전진한다. 박 대통령은 정치를 당당하게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총장 후보자 임명을 거부한 국립대는 강원대와 경상대, 경북대, 공주대, 광주교대, 방송통신대, 부산대, 전주교대, 진주교대, 충남대 등 모두 10곳이나 됐다. 이 가운데 공주대(32개월째)와 광주교대(10일째), 방송통신대(26개월째), 전주교대(21개월째)는 여전히 총장 공석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대구/글·사진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손광락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지난 25일부터 경북대 본관 로비에서 정부가 2순위 후보자를 총장에 임명한 데 항의해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구시 산격동에 위치한 경북대 대구 캠퍼스의 본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