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춘 전 케이스포츠재단 2대 이사장이 30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이정아기자 leej@hani.co.kr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독일 출국 두달여 만인 30일 전격 귀국하면서 그의 귀국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최씨의 귀국은 검찰이 이날 밤늦게서야 부랴부랴 소환 일정을 잡을 정도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이뤄졌다. 최근 수사 속도를 올리던 검찰로서는 허를 찔린 셈이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선 최씨의 귀국이 수사가 청와대로 향하는 걸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는 이날 밤 “31일 오후 3시 최순실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날 오후까지도 검찰 관계자는 최씨의 소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수사에는 단계와 절차가 있다. 막 점프하는 식으로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최씨에 대한 소환 조사를 서두르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가 밤늦게 소환 방침을 밝힌 것이다.
검찰은 ‘입국시 통보 요청’ 대상인 최씨가 런던에서 비행기에 탑승할 때 그의 귀국 사실을 알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최씨의 최측근인 고영태씨를 다시 소환하는 등 최씨 조사를 위한 준비 작업을 계속했다.
정동구 케이스포츠재단 초대 이사장이 30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고개를 숙인 채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잠행을 거듭하던 최씨의 조기 귀국은 검찰 수사가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지난 29일에 이어 이날도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며 청와대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수사의 흐름을 끊기 위한 전략으로 의심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최씨가 검찰에서 한 진술이 안종범 수석 등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에게 검찰 수사 대응 지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씨의 검찰 조사 내용을 토대로 관련자들이 말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최씨 쪽의 검찰 대응은 매우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핵심 당사자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도 두달여 동안의 중국 도피를 마치고 곧 귀국할 뜻을 밝혔고, 최씨의 또다른 최측근인 고영태 더블루케이 상무도 지난 27일 타이에서 귀국해 검찰에 자진출석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최씨가 유럽 도피를 계속할 경우, 모든 의혹에 대한 부담을 온전히 박 대통령이 짊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박 대통령과 공동의 운명체인 최씨로서는 지금 박 대통령을 구하는 게 본인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로 청와대가 무너질 경우 최씨는 국내에 보유하고 있는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정현식 전 케이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이 30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최씨는 현재 대통령 연설문과 인사자료 등 공무상 기밀을 사전에 전달받은 정황(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공무상 비밀누설죄)이 드러났고, 기업들을 압박해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내도록 한 의혹(포괄적 뇌물죄)도 받고 있다. 독일 등에 현지법인을 세워 재단 돈을 유용(횡령·배임)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이런 관련 의혹을 최씨는 정면 돌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연설문 사전 열람 사실 정도만 인정하고 청와대 보고자료 열람,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자금 유용 등 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한 바 있다. 안종범 수석이나 정호성 비서관도 얼굴도 모르거나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연설문 사전 열람에 대해서도 최씨는 “국정개입에 해당하는지 몰랐다. 순수한 마음으로 했다”는 핑계를 댔다.
최씨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재까지 언론에 보도된 것이 모두 사실은 아니지 않으냐”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사실이 인정될 것이다. 그런 절차를 밟아가겠다”고 말했다.
최현준 현소은 기자
haojune@hani.co.kr